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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sang is ainm dom May 21. 2016

Fáilte Ireland

2015.04.03의 기억 - 굿 프라이데이, 여행자들의 강제 금주일.

 밥시와 코니의 더블린에서의 마지막 날. 내 기침소리에 내가 놀라 여덟시 정각에 기상해 이불을 둘둘 두르고 뒹굴거리다, 샤워를 하고 시티센터로 나갔다. 오전과 낮에는 각자 쇼핑을 하고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는데, 둘은열한시가 넘도록 연락이 없었다. 바람맞은 건가. 싶어 서운했지만 일단 배가 고파 점심을 먹기로 했다.

슈퍼맥에서 샌드위치와 수프 세트로 점심을 먹은 후, 둘의 연락을 기다리다 더블린에 온 후 처음으로 세인트 스타븐 공원까지 걸어갔다. 멍한 표정으로 식빵을 뜯어 뿌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 식빵을 받아먹는 비둘기와 갈매기와 백조들. 해만 비치면 여유롭고 평화로워 보일 그 풍경이, 든든하고 따뜻한 배에도 쓸쓸하게 느껴졌다. 분명히 세일해서 1유로에 산 발열 티셔츠도 입었고, 스웨터에, 자켓 위에 보드복도 입고, 스카프도 해서 춥지는 않은데. 몸이 계속해서 으슬으슬 떨렸다. 그래도 공원은 이뻤기에. 스케치나 할까 하고 태블릿을 꺼내들고, 핸드폰 테더링을 켠 후 핸드폰은 가방에 넣고 벤치에 앉아 스케치를 하는데, 손도 얼어붙었는지 선이 계속해서 뭉개졌다. 태블릿 펜을 다시 집어넣고 음악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알람이 울렸다. 바브라였다.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 내가 깰까 봐 메세지를 안 했다고. 점심 먹으러 와서 메시지를겨우 보내는 거란다. 세 시간 쯤 후에 둘이 묵는 호텔 근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딱히 가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어 공원 벤치에 앉아서계속 이어폰을 꼽고 오들오들 떨며 음악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해가 비쳤다. 하늘 가득 낀 먹구름 사이로 내려온 한 줄기 햇살에, 갑자기 온몸이 따뜻해졌다. 정말 신기했다. 햇살이 이렇게 좋은 거였다니. 하늘을 보니 잠시 후 또 해가 비칠 것 같아, 이번에는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 아예 벤치에 앉아 하늘만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먹구름 사이로 내려온 햇살 한 조각은, 내 시선을 태블릿 화면에서 바로 앞의 공원 풍경으로 돌려 주었다. 커피를 들고 걸어가며 이야기하는 사람들, 나처럼 이어폰을 꼽고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는 사람들. 이어폰을 꼽고 걷고, 달리는 사람들. 저 귀에 꼽힌 이어폰에선, 무슨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을까.

그렇게 햇살을 받으며 두 시간쯤 앉아 있다가, 또 먹구름이 가득 몰려와 코니와 밥시가 묵는 호텔 근처로 향하기로 했다. 구글맵을 보며 길을 따라가다가, 길을 두 세번 정도 잃고 난 후에야, 겨우 운하를 발견하고 길을 따라가 호텔 근처에 도착했다.

호텔 앞에 도착해 메세지를 보내니, 이제 들어왔다며 근처 카페에서 만나자는 밥시. 이름부터 체인점스러운 카페, 인썸니아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기다리다 보니, 나름대로 멋을 부린 둘이 도착했다. 나를 보자마자 수줍게 노란 포스트잇을 내미는 밥시. 서로 나눠쓴 메세지가 적혀있는 포스트잇엔 레프리컨이 그려진 사탕이 하나 꽂혀있었다. 

내가 무슨 투어가이드냐며 셋이서 낄낄대며 멋쩍게 웃다가 사탕은 백팩 안 주머니에, 포스트잇은 다이어리 안에 꼭 붙인 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미리 검색해 둔 근처에 있던 펍으로 향했다. 트립 어드바이저에 나온 리뷰를 보여주며 가격도 코니에게 적당한지 확인까지 하고 도착한 펍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며 셋이서 펍의 문을 두드려도 보고, 펍에 전화도 해 봤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트립 어드바이저 앱을 이용해 근처에 있는 평이 좋은 다른 펍도 들어가려 해 봤지만, 모두 문이 닫혀있었다. 결국 헤메다 아이리쉬 음식을 포기하고, 근처에 있던 다른 평이 괜찮은 중동 음식점으로 향했다.

가게로 들어가자, 웨이트리스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예약하셨나요?] [아니요, 혹시 자리가 없나요?] [네. 오늘이 굿 프라이데이라서 예약이 다 차 있어요.] 아. 성 금요일이었다. 아일랜드에서 주류 판매가 금지된다는, 성 금요일, 굿 프라이데이. 그래서 주변의 펍이 다 닫혀있었나 보다. 그런데 이미 충분히 식당을 찾아 헤멘터라, 나와 코니가 동시에 배가 고파 까칠해졌을때 발생할 사태가 너무 두려웠다. 그렇다고 우리의 마지막 식사를 패스트푸드점이나 체인 카페에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저... 죄송한데, 제 친구들이 내일 새벽 비행기로 오스트리아로 돌아가는데 주변 펍이 다 닫혀있더라구요. 굿 프라이데이인줄을 몰랐는데, 불편해도 괜찮으니깐 세 명 앉을 자리가 아예 없나요?] 웨이트리스는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한 뒤, 잠시 후 돌아와 말했다. [8명 예약이 잡힌 테이블이 있는데, 2시간 후 예약이에요. 그래서 그 전에 일어나주셔야 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배가 고프고, 어딘가 앉고 싶었던 우리는 입을모아 대답했다. [네!] 그렇게 오스트리아 여인네들의 아일랜드에서의 마지막 외식은, 중동음식이 되었다. 나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k로 시작된 것 같은 양고기 메뉴를 시켰고, 코니와 밥시는 팔라펠을 시켰다. 식사가 도착하자 웨이터에게 부탁해 사진을 찍고, 두 오스트리아 친구들과의 아일랜드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저녁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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