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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sang is ainm dom Apr 20. 2016

Fáilte Ireland

2015.04.02의 기억

내 기침소리에 놀라 일어나 시계를 보니 아침 9시였다. 뜻하지 않게 일찍 일어난 나는 밥시에게 메세지를 보내기 위해 페이스북 메신저를 열었다. 페이스북 메신저를 보니 바브라가 4시에 접속했었다고 나와있었다. 그때까지 놀았나. 싶어 11시쯤 되어 일어났냐고 메시지를 보냈더니이제 일어났다며 12시 30분에 트리니티 칼리지켈스서 전시장 앞에서 보자고 메시지가 왔다. 트리니티 칼리지는 원래 나중에 보려고 아껴두던 관광지였지만, 그냥 가기로 했다. 켈스서(Book of Kells)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고 소문이 나있고, 아일랜드인들도 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았다. 입장료를 10유로나 받는걸 보면.

하지만 가는 날이 좋지 못했던지, 10분쯤 늦은 바브라와 코니와 함께 본 켈스서는 그저 책이었다. 코니는 켈스서를 보자마자 입이 댓발만큼 튀어나와서는, 우리를 기다리지도 않고 혼자 다음 전시실로 올라가버렸다. 실망할 만 했다. 그 예쁘다던 켈스서는, 사진에 나오던 휘황찬란한 금박은 없고, 그저 붉그죽죽하고 시퍼런 색이 칠해진 그림책 같았다. 책장은 일정한 기간마다 넘겨가면서 전시가 된다고 해서, 바브라와 함께 날을 잘못 잡아 돈을 버렸다며 궁시렁대며 구 도서관인 롱 룸으로 올라가자 마자, 그 말이 쏙 들어갔다.

높은 아치형 천장그리고 따스한 채광. 양 벽면을 꽉 채운 책장들과, 그 책장들을 꽉 채운 채 세월에 낡아가는 책들. 그리고 퀴퀴하면서도 들큼한 오래된 책 냄새. 관광객들로 가득 찬 그 공간에, 꼭 혼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서관 중간에는 신화와 문학 컨텐츠에 관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고, 전시를 지나쳐 도서관 끄트머리에 늘어서 있는 벤치에 앉았다. 벤치 머리맡에선 따스한 공기가 올라왔다. 바브라가 옆에 걸터앉았다. [여기뜨거운 바람이 나와책들 습도 조절하려고 이러나 보다.] [아니야아마 이건 공중화장실에 연결되어 있을 꺼야사람들이 변을 보면 …] [그까지 해. 으이구 미친 여자야.] 아침부터 엉뚱한 바브라와, 아침부터 저기압인 코니와 함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나와서, 코니의 기분을 업 시키기 위해 샌드위치+수프 세트를 오브라이언에서 5.7유로에 사 먹었다.
여태껏 매일같이 20유로짜리 양도 작은 음식만 사먹었는데 너무 싸고 맛나다며 좋아하는 코니. 다시 기분이 업된 둘을 데리고 아일랜드 국립도서관으로 향했다.


 내 세대들은 굳이 영문학을 전공, 혹은 부전공한 게 아니라면, 예이츠라는 이름에는 친숙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이라면 모두 예이츠의 대표적인 시에 나오는 섬에는 익숙할 것이다. 이니스프리예이츠는 아일랜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사랑을 받는 시인 중 하나이다.
팝페라 가수 임형주도 불렀던 Sally Garden 노래의 가사도 예이츠의 시에서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고맙게도더블린에 위치한 아일랜드 국립 도서관에서는 관광객들이 굳이 예이츠가 묻힌 아일랜드 북서쪽 슬라이고까지 갈 필요 없이, 2015년 예이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도서관 지하에서 예이츠에 관한 전시를 상시로 하고 있다. 거기다 공짜. 가이드 투어도 정해진 시간에 진행된다. 도슨트에게 내 전 세대 분들은 예이츠의 이니스프리의 호수섬을 외우고 다니고, 다른 저항시도 많이 안 걸로 알고 있다고. 한국도 아일랜드만큼 길게는 아니었지만 다른나라의 지배를 받았기에 예이츠가 인기가 많았던 걸로 알고 있다며. 한국에 이니스프리라는 화장품 브랜드가 있다고 하니, 가이드가 고맙다고. 나중에 써 먹어야겠다고. 정말 좋아하더니 나를 예이츠의 소장품 중 하나로 데려가더니, 작은 일본 검을 가리키며 이거 어떻게 읽느냐고. 밑에 영어로 이름이 있는데 당최 어떻게 읽는지를 모르겠다고 물어보고는, 계속해서 고맙다고 나를 따라다니며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와서 물어보라며 감사를 표했다.

여기서 예이츠에 대해 몰랐던 예를 들어 그가 한참 어린 여자와 결혼했다거나, 현실의 장벽에 막혀 좌절하다 가톨릭은 싫어서, 자신만의 마법, 오컬트에 의존하고 마법 단체에 가입했다는 등의 역사도 알게 되어, 귀신이야기와 마법을 좋아하는 둘이 좋아하겠다 싶어 데려갔더니, 의외로 코니는 좋아하고, 밥시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도둑맞은 아이’라는 시 낭송을 듣고 나서야, 그제서야 으스스하다며 좋아하는 밥시. 으이구.

둘의 시티투어 버스 이용권이 오늘까지였기에오후에는 서로 다른 일정을 보내기로 하고 전시실을 나서다, 갑자기 밥시가 놀라며 나를 불렀다. [이것 좀 봐! 한국인이래!] 밥시의 손가락 끝을 따라 그녀가 가리킨 것을 보고그저 욕밖에 할 수가 없었다.

전시실 왼편에는 자신이 읽은  중 가장 흥미로운 책을 적으라며 일종의 게시판이 마련되어 있었고, 거기 붙일 종이와 펜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어떤 인간이 그 종이에 좋아하는 책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라고 적고, 국적은 한국인이라고 적어뒀다. 그래그까진 좋다 치자취향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 오스트리아에서 왔다는 한 사람은 좋아하는 책이 페이스북이고, 그 이유가 내 친구들을 볼 수 있어서. 라고 적어놓기도 했으니.

 놈인지, 년인지는 그 종이를 전시실 오른편의 기부금 모금함에 넣어두었다. 5유로, 10유로 지폐가 들어있는 곳에전시에 고맙다고 1유로, 2유로 동전이라도 넣지는 못할 망정몇 년 전부터 희화의 대상이 되고, 문학 작품으로써의 가치에 대한 논란이 일던, 아마 영화가 나오기 전에는 알지도 못했을 포르노그래피를 가장 인상 깊은 책이라고 적고. 당당하게 한국인이라고 밝히기까지 하고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전시 기부함에 그 종이를 넣어두었다.

예이츠는 한국으로 치면윤동주와 같은 위치의 저항 시인이자, 애국 시인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아니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사랑하는 시인의 전시에 그런 짓을 하다니. 한국인이라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한국을 싫어하는 재특회 회원이 그런 거라고. 스스로 생각해 봐도 가능성이 없을 것 같은 생각까지 했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어쩌면 돈은 아깝고, 기부함에 뭐라도 넣고 싶고, 수백 장의 종이가 붙어있는 게시판에 붙이는 것보다, 기부함에 넣는 게 자신의 질 나쁜, 하지만 본인이 보기엔 재치 있는 개그를 더 잘 노출시킬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인은 이렇게 재치 있는 민족이야! 라고 말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아닌 건 아닌 거다. 나 역시 무슨 일을 하기 전 망설여질 때마다 (뭐 어때, 여기는 더블린인데.) 라고 하고 저지르긴 했지만, 그 일의 최대치는 무단횡단이고, 여기서는 경찰들조차 잡지도 않고 자기들도 맨날 하는 게 무단횡단이다. 다른 최대치는 보드복을 사서 입고 다닌 거다.

해외에 나와서 일탈을 꿈꾸고추억을 만들고, 같은 순간에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도시에, 흔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 행동 하나하나가 한국은 커녕 아시아 국가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국가에서는, 한국이라는 국가의 이미지가 되는 건데.

종이 쪼가리 하나에 기분이 너무 나빠져 히스테리를 부리기 일보 직전이었기에이미 코니때문에 충분히 힘든 바브라에게 짐이 되기 싫어 둘을 버스정류장으로 데려다 준 후 버스가 오고 나서 바로 나도 홈스테이 집으로 돌아갔다.

홈스테이로 돌아가자디가 빨래를 건네주었다. 그런데 가방은 빨지도 않고, 내가 아끼는 나이키 런닝장갑도 빨지 않은 채 오른쪽 장갑만 남겨져 있었다.

[음… 디?] [윤상. 왜?] [빨래는 괜찮은데, 장갑 한 짝이 안 보여. 파란색이랑 검정색이 섞인 나이키 장갑인데, 한쪽은 없어져있고, 한쪽은 안 빨려있어. 가방도 안 빨려있고] [오나는  가방 안 쓰는 줄 알았어.] [그 가방 내가 맨날 메고 다니던 건데… 장갑 혹시 못 봤어?] [응 봤는데. 빨지도 않아서. 찾아보고 말해 줄께.] 그깟 장갑 얼마나 한다고. 그깟 종이쪼가리가 뭐라고. 가방에 요거트도 다 말라서 털어내고 섬유탈취제 뿌리니깐 냄새도 안나는데. 그 사소한 것들에 기분이 나빠져서, 저녁을 먹을때도 그저 말라빠진 닭가슴살처럼 퍽퍽한 켈스서 이야기만 하다가, 감기약을 타먹고, 옥수수 쉰내나던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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