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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Dec 02. 2022

매달려야 보이는 것들도 있다.

가끔 삶의 어느 틈 사이에서 간신히 매달려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들, 남편, 사위, 선배님, 팀장님... 나이를 먹을수록 남들이 나를 지칭하는 이름들이 점점 늘어났다. 장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나는 다른 이름표를 달고 그 자리에 나간다. 가슴팍에 어떤 이름표를 붙였는지에 따라 내 행동과 심지어는 성격도 바뀌는 듯하다. 그 이름표 뒷면엔 내가 수행해야 하는 미션이 적혀있기 때문이다. 몇 글자 안 되는 이름들이 무게는 상당하다. 아침마다 집을 나서기 전, 오늘 짊어져야 하는 이름들은 몇 개인지 확인하고 발걸음을 무겁게 옮긴다.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주어지는 이름표의 수는 늘어나지만 줄어드는 일은 드물다. 내가 지고 가야 할 무게는 점점 더 늘어난다. 이름표의 방향들은 제각각이라서 이름표들끼리 충돌하는 경우도 생긴다. 무엇하나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이름표가 우선인지 판단할 수도 없다. 혼란에 빠진다. 어떤 이름표는 심지어 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름표가 늘어나는 만큼 다음 발을 어디로 내디뎌야 하는지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아진다. 조금만 발을 잘못 디뎌도 그 무게에 못 이겨 떨어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도 생긴다. 사람에겐 감당할 수 있는 일들만 주어진다던데 내게 맡겨진 이 이름들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긴 한 걸까. 그렇게 떨어질 듯하지만, 아직 떨어지진 않은,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상태가 된다. 생각이 복잡해질 때 나는 실내 클라이밍장으로 향하곤 한다.


클라이밍장에서 주로 하는 건 볼더링이다. 클라이밍 종목 중 하나인 볼더링은 일종의 수수께끼이다. 단 몇 개의 주어진 홀드만 잡고 시작점에서 마지막 점까지 어떻게 갈지 풀어내야 한다. 벽에 붙기 전에 눈으로 경로를 따라가며 여러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한다. 어떤 각도로 발을 딛고, 어떤 면을 무슨 손으로 잡을지. 이런 사소한 행동들에 의해 성패가 결정된다. 빠르게 여러 가지를 계산하다 보니 머릿속에 가득했던 걱정들이 조금 덜어진다. 남아있던 고민도 벽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말끔히 사라진다. 일단 벽에 오르기 시작하면 머릿속엔 어떻게든 떨어지지 않으려는 '생존'하나만 남기 때문이다. 짧지만 하루 동안 유일하게 머릿속이 비워지는 순간이다.


TV 프로그램 유퀴즈를 보다 보면 인터뷰 말미에 퀴즈가 나온다. 퀴즈의 난이도는 아슬아슬하다. 그래서 조금은 알 법한 문제가 나오면 맞추려고 머릿속에서 사력을 다한다. TV 속 인물처럼 정답을 맞힌다고 해서 100만 원을 받는 것도 아니지만 어떻게든 정답을 입 밖으로 꺼내고 싶어진다. 운 좋게 문제를 맞히면 남들이 알아챌 수도 없을 아주 작은 성취감이 생긴다. 그 작은 성취감 하나에 다음 문제를 기다린다. 볼더링도 마찬가지다. 여러 차례의 도전 끝에 문제를 풀고 나면 짜릿한 성취감이 생긴다.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듯한 하루에도 ‘이거 하나는 이뤘구나!’하는 자신감도 생긴다. 곧바로 좀 더 난도가 높은 문제에 도전해본다. 일상에서도 성취감은 행동의 원동력이 된다. 그 성취가 인정받는 것일 수도, 나만의 만족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어떤 일을 하든 작지만 잦은 성취감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부러 여러 단계로 과제를 쪼개본다. 잘게 쪼개진 미션들을 수행해낼 때마다 작은 성취감들이 모인다. 더 큰 문제에 도전하는 용기가 생긴다.

오늘은 운 좋게도 암장에 사람이 적다. 암장에는 절대적인 룰이 있는데, 사람 간의 충돌을 피하고자 한 벽에는 한 명씩만 오를 수 있다. 앞서 오른 사람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 때문에 사람이 많을 땐 대기 시간이 운동 시간보다 길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사람이 없으니 쉼 없이 시도할 수 있다. 어려운 문제도 눈치 보지 않고 여러 번 시도하여 풀어낸다. 성취감이 더 빠르게 쌓인다. 더 신나서 문제가 보이는 족족 홀드를 잡았다.


새로운 문제 앞에 섰다. 하지만 어렵지 않은 난이도라 이번에도 금방 풀 듯하다. 빠르게 문제를 스캔하고 시작 홀드를 잡았다. 그때였다. 한 뼘 더 위에 있는 홀드를 잡는 순간, 썩 좋지 않은 느낌이 왔다. 홀드를 잡아도 근육이 버틸 수 없을 거라는 게 분명히 느껴졌다. 그대로 힘이 풀려 홀드를 놓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런 느낌이 들면 아무리 쉬고 팔을 마사지해도 더 이상 회복되지 않았다. 근육에 과부하가 온 것이다. 나의 템포를 잊게 될 때 동력을 잃는다. 쉼 없이 하면 여러 문제를 단시간 내에 해치울 수 있었지만 오래 할 수는 없었다. 오래 하지 못하는 만큼 운동도 덜 됐다. 직업이든, 역할이든 어떤 일을 오래 하는 사람을 볼 때가 있다. 각자마다 그 속도는 다르지만, 일정한 박자가 느껴진다.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여유를 갖는다는 건 물리적인 휴식만을 뜻하진 않았다. 일을 일정한 거리에 두고 일의 현재 모습은 어떻고 나의 모습은 어떤가 돌아볼 마음의 상태였다. 많은 종류의 일들이 현장에서 벗어나도 머릿속에 잔류한다. 더 이상 고민해도 달라질 것이 없는 일들도 계속해서 고민하고 걱정한다. 마음에 과부하가 생긴다. 끝내 그 일을 포기하는 대참사가 벌어지기도 한다. 잠시 일을 놓을 방법이 필요하다.


다음에 풀 문제도 정하지 않은 채 바닥에 앉아 잠시 모든 걸 멈췄다. 내 앞에선 사람들이 벽에 붙어 저마다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고 있다. 저기로 갈 땐 발을 저 홀드에 올려야 하는구나, 저 문제는 점프해야 하는구나 보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멈춘다는 건 단순히 쉬는 것만이 아니었다. 내 문제만 보고 있던 시야를 잠시 거두고 다른 사람의 경로를 볼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매몰되지 않아야 했다. 시야가 좁아지면 주변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시도해도 안 되는 문제들도 척척 풀어내는 사람들도 있다. 앞서가고 있는 사람들의 방법들을 보며 나는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생각도 해본다. 그 방법들을 기억했다가 따라 해보기도 한다. 물론 저마다의 신체적 차이로 풀리지 않을 때도 있지만 나의 경로를 설정하기에 좋은 지침이 된다. 잠시 아무것도 안 할 틈은 오히려 여러 유익을 준다.


쏟아부은 내 힘들은 상의를 흥건하게 적신 땀으로 남았다. 운동복을 벗고 다시 이름표가 달린 옷으로 갈아입었다. 암장을 나선다. 들어올 땐 불안함만이 가득했던 머릿속이 다른 것들로 채워졌다. 작은 성취감들이 용기를 불어넣어 줬고, 급하게 하던 걸 멈췄더니 더 오래 움직일 힘과 앞서간 이의 자취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집으로 돌아가며 무겁기만 했던 이름표들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매달려야 보이는 것들도 있다. 나는 삶에 간신히 매달려 있단 생각이 들 땐 벽에 매달린다. 언젠간 가파르기만 한 삶의 경계도 가뿐히 넘고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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