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중생활자

이중생활자의 꿈

by 이중생활자 홍원표

나는 이중생활자다


‘이중’이라는 단어는 대체로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내 글을 읽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 차원에서 이 단어를 글의 간판으로 쓰는 것은 교묘한 상업적 선택일 수 있겠다. 하지만 이 단어 말고는 현재의 내 삶을 설명한 길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이중생활을 하면서 한쪽 사람들에게 나의 다른 쪽 삶에 대해 얘기하면, 어느 쪽에서건 그 반대쪽을 전혀 납득하지 못하니까.


“니가?”

“에이, 딱 봐도 아닌데 뭐.”


마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실제 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 않냐는 반응들. 이럴 때마다 나는 기분이 나쁘기보다 오히려 작은 쾌감을 느낀다. 남들이 쉽게 엄두 내지 못하는 삶의 방식을 내가 살아내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노래를 한다.


‘어? 노래를 한다고? 가수인가? 그럼 내가 들어본 노래가 있겠네.’라고 생각하고 찾아보는 사람들의 수고를 미리 덜어드린다. 그런 히트곡은 없다. 무명 가수, 그것이 내 이중생활 중 하나이며 첫 번째이기도 하다.


앞으로 음악이 내 꿈이자 인생의 절반이라고 말할 참이지만, 나는 그럴 만큼 노래를 잘하지 못한다. 솔로 가수가 가져야 할 타고난 감성과 색깔을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일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음악은 악기 없이 사람의 소리로만 연주하는 음악, 아카펠라다.


나는 십 대부터 노래하는 인생을 열병처럼 꿈꿔왔다. 하지만 이십 대 후반에 그 꿈을 포기했다. 이후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한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음악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은 순간이 찾아왔다. 그 간절함에 몸이 달아 있던 시기에 우연히, 아니 운명처럼 만난 음악이 아카펠라다. 결국 나는 아카펠라그룹 아카시아라는 밴드를 만들었고, 함께 노래할 사람들을 찾았으며, 노래를 만들고, 오랜 시간 연습했다.


지나 보니 어렵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그러다 한 경연대회에서 상을 받았고, 그것에 힘입어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도 노래한다.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활동들을 해와서인지 어떤 사람들은 아카시아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아카펠라 1세대 중 하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건 사람들이 알아주든 못 알아주든 아직도 내가 노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아주 감사하고 행복하게.

삽입_대지 1 사본.png


나는 강의를 한다.


이쯤 되면 ‘이 사람은 무명가수라며 도대체 어떻게 먹고살까.’라는 궁금증이 생길 것도 같다. 음악을 포기했을 때, 그때까지 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것을 온전히 걷어내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 날 수갑 채우듯 끌고 간 현실은 다름 아닌 취업이라는 지상과제였다.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운 좋게 모 호텔 공채로 입사하게 됐다.


호텔에 입사해서는 영업부서인 판촉팀에서 일했는데, 그곳에서 전혀 생각지 못하게 내게 영업의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됐다. 어차피 음악도 포기했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돈이라도 벌어보자고 생각한 마당이었다. 모르던 재능을 발견한 것이 화근이었을까. 월급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일하는 만큼 돈 주는 곳에 가면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주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보험회사의 영업직으로 전직했다. 보험설계사가 된 것이다. 하지만, 가자마자 당연히 예정 수순일 거라고 생각했던 아름다운 성공의 상상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생각지도 못한 어려운 영업 현실에 한 달에 백만 원도 못 버는 상황이 벌어졌다.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은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최악이었다. 당시 나는 음악도 영업도 모두 패배자였다. 최종 승리자들의 성공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 주는 뒷배경의 이름 모를 패배자.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방법은 하나, 정면돌파뿐이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시커멓게 높은 패배의 벽 앞에서, 매일 아침 울음과 같은 좌절을 겨우겨우 삼키며 일 한지 일 년여, 책 한 권을 다 채워도 모자랄 만큼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러나 나는 조금씩 적응했다. 조금씩 성장했으며 작은 성공들을 얻었다. 결국 12년간의 보험회사 생활이 이어졌다.


이런 굴곡 있는 내 영업의 시간이 궁금해서였는지, 어느 날 모 보험회사에서 신입 설계사들의 교육 시간에 내 이야기를 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잘했던 사람보다 못했던 사람이 할 말이 더 많다는 걸 그때 알았다. 교육에서 한풀이하듯 신나게 내 어려웠던 시간을 비워냈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은 프리랜서 기업교육 강사로서 여러 기업에서 사람들의 성장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이것이 내 이중생활의 두 번째이다.

삽입_대지 1.png



나는 노래하며 강의한다.


내 이중생활은 두 개의 영역이 남들 앞에 선다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전혀 연관이 없다. 최근 나의 일상을 소개하자면 아카시아의 콘서트를 위해 새로운 곡의 가사를 쓰고 노래연습을 하고 콘서트를 하는 와중에, 모기업으로부터 중간관리자들의 리더십 교육을 요청받아 내용을 준비하고 강의했다. 하는 일이 두 개이고 서로 다르니 더 바쁘고 더 집중해야 하는 일상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여러 군데에서 수입이 생긴다. 이런 나를 누군가는 ‘N잡러’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내가 썩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다. 왜냐하면 내 이중생활은 여기저기서 돈을 벌기 위해 벌려 놓은 재테크의 일환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이중생활을 선택했다. 나이 들어 많은 가능성들을 상실한 상태에서 애달픈 위시리스트에 음악을 올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노래만 하고 살기엔 그만큼의 재능과 능력, 용기가 부족했다. 먹고살아야 했다. 한 우물을 파야 성공한다는 세상의 말에 비춰보면 이런 나는 꽤 비겁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에는 그 절반만을 좇는 셈이다. 그러나 내 탓, 세상 탓하면서 소중한 꿈을 저 구석 어딘가에 고이 접어 놓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 아닐까. 많은 시간이 흐른 뒤 한숨 섞인 술잔 기울이며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 한탄하는 것보다는 덜 궁색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쓴다. 자신의 꿈을 이루고, 원하는 일을 하며 사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다수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아직도 접어둔 꿈을 그리워하고 가끔 꺼내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나는 이런 글을 쓸 것이다. 자신의 꿈을 포기했던 사람이 어떻게 꿈을 지탱해 가는 지를, 이렇게 사는 것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최고의 방법은 아닐지라도 이렇게도 할 수 있다고.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