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꿈의 서막

이중생활자의 꿈

by 이중생활자 홍원표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강당을 가득 메운 여학생들. 무대 앞에서 누구보다 큰 데시벨로 자신의 애정을 보여주겠다는 듯한 그들의 비명에 가까운 환호 소리. 그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뿜어내는 밴드의 생생하고 강렬한 사운드. 고등학교 1학년 가을, 우리 학교 축제에서 나는 2학년 선배들로 결성된 록밴드의 연주에 압도되고 말았다.


인천에서는 꽤나 유명했던 우리 학교 축제의 마지막 순서였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자유분방한 시대가 아니었다. 군인들의 권력이 세상을 옥죄던 시기였다. 남학생들은 공부 외에 다른 관심은 모두 싹둑 잘라내야 한다는 듯 머리를 군인처럼 짧게 잘라야만 했다. 이성 문제는 더 했다. 남녀 고등학생이 공식적인 곳 이외에서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남들의 불편한 이목을 받았다. 이런 시대에 도시의 모든 여학생들이 모인 것 같은 강당에서 그들의 환호를 받고 있는 저 밴드와, 그중에서도 저 보컬은 누구란 말인가. 어느새 내 마음속 무대 위 보컬은 나로 바뀌어 있었다.


내 손짓 하나하나에 관객들이 일렁인다. 감성 넘치는 노래의 마지막 여운 뒤로 무너지는 듯한 환호와 박수가 터진다. 나는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그들에게 화답한다. 나의 손짓에 다시 한번 관객들은 무너져 내린다.


그래, 저걸 해야겠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어렸을 때부터 노래 좀 한다는 얘길 듣지 않았나. 초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께서 음악시간에 새 노래를 배우기만 하면 나를 일으켜 노래를 시키셨다. 잠자고 있던 그때의 자부심과 자존감이 걷잡을 수 없이 활활 타올랐다.


이듬해 봄, 봄볕을 무색하게 만드는 찬란한 밴드의 오디션 공고가 붙었다. 이 소식에 2학들생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들썩였다. 특히 노래 좀 한다 하는 친구들은 빠짐없이 반년 뒤에 있을 가을 축제에 자신을 주인공으로 상상하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이기기 위해선 연습을 해야 했다. 그런데 노래 연습을 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집에서 연습을 하자니 도대체 무슨 일인가 엄마의 관심이 집중될 게 뻔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오디션에 참가해서 밴드 활동을 꿈꾼다고? 엄마의 불호령을 부르는 수순이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대여할 수 있는 연습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노래방도 없는 시대였다. 결국 선택한 마지막 장소는 학교 교실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학생들이 모두 하교하고 선생님들도 모두 퇴근한 밤 9시부터 노래 연습을 시작했다.


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교실 문을 꼭꼭 닫았다. 게다가 늦은 시간 컴컴한 학교에서 교실 하나에서만 불이 켜져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불도 껐다. 무서운 줄도 몰랐다. 흔히 보는 공포 영화의 배경이 늦은 밤 불 꺼진 학교의 교실과 복도 아닌가. 하지만 지금 내 기억 속 그 밤의 교실과 복도는 전혀 어둡지 않았다. 축제에서 주인공으로 받을 빛나는 박수와 환호의 상상으로 가득 차 있던 곳. 그저 밝고 행복할 뿐이었다. 훗날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노래연습을 하던 시각, 도서관에 남아 공부하던 몇몇의 학생들이 공포에 떨며 서둘러 가방을 쌌다고 한다. 매일 9시가 넘으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끊어질 듯 말 듯 기이한 노랫소리 때문에.


이후 나는 친구들에게 유령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그렇게 몇 주간의 시간이 흐른 뒤 오디션 날이 찾아왔다. 한 명 뽑는 보컬 오디션에 수십 명이 응시했다. 친구들은 자신의 순번을 기다리며 너 같은 놈이 여기 왜 왔냐고 서로 비아냥거리며 낄낄거렸다. 시덥지 않은 농담으로 서로의 긴장을 날리려 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비장했다. 그리고 자신 있었다. 드디어 내 순서가 됐고, 나는 마치 어두운 밤의 공간을 도도하게 유영하는 유령처럼 준비했던 노래를 편안하게 불렀다.


1차 오디션의 최종 결과, 나는 2차 오디션에 응시할 수 있는 최종 2명 중 한 명으로 뽑혔다. 선발된 또 한 명의 친구는 내 입장에선 안타깝게도 노래도 잘하는 데다 키도 크고 잘생긴 친구였다. 넘기 어려워 보였다. 드디어 마지막 2차 오디션. 3학년이 된 밴드의 마스터 선배는 최종 후보 2명을 자신의 반으로 불렀다. 그리고 그 반 앞에서 최종 오디션이 시작됐다. 일종의 대중 평가였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그 해 축제를 빛낼 밴드 보컬로 최종 선발됐다.


내가 보컬이라고? 내가 주인공이라고? 내가 그 무대에 선다고? 거짓말과 같은 결과를 수백 번도 넘게 스스로에게 되물어도 그건 온전한 사실이었다. 상상이 현실이 된 것이다. 전날까지도 어두운 교정의 밤을 떠도는 유령은 이제 밝게 부풀어 찬란하도록 푸른 하늘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친구들은 부러워하면서도 너 나 할 것 없이 축하해 줬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모자랐다. 길에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마저 멈춰 세우고 나의 일을 자랑하고 싶었다.


이런 마음이 너무 과했던 걸까. 스스로 다짐했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버렸다. 엄마가 알면 한창 공부할 시간에 음악을 한다니 반대할 게 뻔했다. 엄마에게 얘기가 새어 나갈 수 있으니 가족들에게도 이 일을 절대 얘기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랑할 사람이 모자랐던 나는 그만 누나한테 말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누나는 너무나 흥분한 내 모습이 걱정스러웠는지 이 사실을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전했다.


나는 아직도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엄마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지금 대학 포기하고 딴따라가 되겠다는 말이냐? 좋은 말 할 때 그만둬!”


지금이야 많은 부모들이 내 아이들에게 공부 외에 다른 재능이 있다면 그걸 지원해 주고 응원해 줄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대학 진학만이 세상의 이치에 따라 잘 사는 유일한 길처럼 여겨지던 시대였다. 반대로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딴따라’라는 말로 평가절하되기도 했다. 요즘 들어 내가 그때의 엄마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고민은 좀 됐겠지만 나도 엄마처럼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때 난 십 대였다. 엄마의 말은 나에게 사형 선고와 같았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단절시키지만 거부할 수 없는 종말의 명령. 그토록 꿈꿨던 자리를 얻었는데 내가 스스로 포기해야 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물론 가을까지 축제를 준비한다면 학업에 영향이 생기는 건 자명했다. 그러나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긴 시간 동안 이런저런 말로 엄마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모두 허사였다. 엄마가 생각하는 미래를 위한 아들의 현재는 너무나 명확했다.


결국 거기까지였다. 놀라웠던 선배들의 축제와 그로 인한 오디션 도전의 결심, 최선의 연습, 최종합격, 친구들의 축하, 그리고 눈부시게 펼쳐질 것 같았던 나의 축제까지. 이 모든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없던 일이 되어야 했다. 내가 도대체 뭘 그토록 잘못한 것일까.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었다. 끝내더라도 이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말했다.


“알았어요. 너무 속상하지만.. 그만둘게요. 하지만 전 대학에 가면 무조건 노래를 할 거예요. 그때는 절대로, 절대로 말리지 마세요.”


나의 축제는 이렇게 끝이 났다. 그때 엄마는 알았을까. 이 약속이 바꿀 내 미래의 모습을.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