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20대 대선 공약 요구안 총론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수정 발표될 예정입니다.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 혁명, 미국의 독립혁명을 ‘3대 시민 혁명’이라고 부른다. 대한민국의 4.19혁명은 아시아 최초의 민주주의 ‘시민혁명’으로 손꼽히며, ‘촛불시민혁명’으로 이어졌다. ‘시민(市民)’은 ‘도시의 구성원’이라는 의미에 머무르지 않는다. 아테네에서 시민은 정치에 참여하는 주권자였다. 시민은 자신이 나라의 주권자임을 자각하고, 공공성을 추구하는 주권자로서 행동하고 책임지는 사람이다. 광장의 촛불을 통해 ‘군주와 국가의 시간’이 끝나고 바야흐로 ‘시민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촛불을 든 시민들의 각성이 삶의 경험으로 이어지는 일은 드물다. 광장이라는 특수한 장소에서 민주주의를 주장하지만,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면 그대로다. 일터에서 민주주의가 작동되는 경우도 드물다. ‘시민권력’은 설 자리를 잃었고, ’시장권력’에 자리를 내놓은 국가는 개인들을 향해 스스로를 보호하라고 말해왔다. ‘불평등’을 양산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질서는 여전히 삶의 모든 영역에 시장적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3월 국제통화기금(IMF)의 ‘아시아의 불평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현재 45%로 아시아 국가 가운데 최고다. 1995년 29%에서 16% 상승한 수치다.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5% 늘어난 12%로 2위였다. 1995년 OECD 평균에 미치지 않던 자살률이 현재 OECD 평균의 3배에 이르게 된 압도적인 증가폭과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보고서는 소득불평등이 심화되면 성장의 속도와 지속성에 해가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소득불평등이 급격히 확대될 경우 성장률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개혁에 대한 정책지지도가 약화되고, 정부가 정치적 안정성을 해칠 위험이 있는 포퓰리즘적 정책을 도입하게 하는 유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소득 상위계층의 소득점유율이 늘어나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중기적으로 감소하는 반면, 소득 하위계층의 점유율이 높아지면 고성장을 불러온다고 덧붙였다.
경제학 분야에 반향을 일으켰던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역시 세계적 위기의 근본원인이 소득 불평등에 있다고 진단했다. 일찍이 前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라구람 라잔(Raguram Rajan)과 노벨경제학자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등도 불평등 해소가 경제 위기의 해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지 오래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내의 불평등・양극화 해소에 대한 정책대안들은 기업투자 활성화를 통한 규제 완화, 고부가가치 사업에 대한 획기적인 규제완화, 성장촉진형 노동시장정책, 부동산 경기 정상화 등의 아젠다에 몰려 있었다. 주로 소득 상위계층의 소득점유율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정책들이다. ‘경쟁력’과 ‘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지배적이고 독점적인 기업과 개인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정책의 근거를 제시하는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은 경쟁이 낳은 결과가 아무리 불평등해보여도 그것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복지국가 확대를 통해 소득을 재분배해야 한다는 주장은 상대적으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는 이제 복지국가를 건설하지 않으면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는 단계라며, 소위 ‘선별적 보호’를 통해 불평등을 줄이는 시스템 역시 한계에 봉착했다고 진단했다. ‘선별적 보호’는 규제를 통해 강자들의 행동을 규제하고 경제적 약자들을 보호해서 시장이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를 제한하는 것이다. 대규모 소매점을 규제해 영세상인을 보호하고, 자금지원과 기술지원을 통해 중소기업을 돕는 방식이다. 하지만 경제적 강자에 대한 억제도 체계적이지 못했다는 진단이다. 일례로 중소기업 고유업종이라는 정의가 애매하기 때문에 비슷한 사업이라도, 어떤 사업에는 대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고 어떤 사업에는 진출 못하게 되어 있다. 게다가 소농・소상인・중소기업에 보호가 집중되어 있는 방식은 자기 사업이 없는 은퇴한 노인이나 장기실업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보호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헌데, 이러한 논의를 사회적경제로 끌고 오면 이야기가 사뭇 달라진다. 사회적경제의 사업 방식은 사회적・경제적 약자 스스로 사업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수혜자가 되기도 한다. 사회적경제 활성화 자체가 사회적・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고, 마을주민의 자치적 삶을 지지하고, 시민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일과 연결된다.
사회적경제는 단지 비즈니스의 경쟁력을 확보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관계재를 생산하는 사회적 활동을 중심으로 시민의 공공성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치역량을 기르는 일에 집중할 때 성공할 수 있다. 즉, 시민권에 기초한 복지국가 확대로 나아가는 길목에 사회적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보호하는 일은 사회통합의 메세지를 담아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요약하면, 불평등과 격차에 대한 정책대안으로 시민이 주체가 되는 시민경제, 시민경제의 동력인 사회적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 시민경제학의 탄생>의 저자 루이지노 브루니와 스테파노 자마니는 시민경제는 시장 동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바로잡아 공공 이익과 공동선을 위해 일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엄정한 조건 아래서의 사회적 지출이 소득 불평등을 줄일 수 있고, 동시에 장기 성장세를 강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서 엄정한 조건이란, 수혜자의 역량을 높이는 방식으로, 그리고 부차적으로 수혜자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보건・교육・사회안전망을 아우르는 경제복지 프로그램을 설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흔히, 사회적경제를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며 민주적 운영원리를 가진 호혜적 경제조직의 집합’으로서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 몇몇 사업형태로 치환해 설명한다. 하지만, 실제 사회적경제 영역은 지역 및 시민사회 등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작동한다. 단지 몇 개의 기업형태로 국한하는 설명은 사회적경제에 대한 이해를 왜소하게 만든다. 지역사회와 함께 더불어 사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주민 자치 활동이며,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이 사업의 주체이자 수혜자가 된다. 산업 자체가 공공선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사업방식을 혁신하고, 빈곤문제나 복지사각지대, 환경문제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미션으로 삼는다. ‘자유와 경쟁’ 만이 아니라, 노동과 나눔의 가치를 중시하며 호혜와 협동을 경제질서의 핵심원리로 삼는 영역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제2항은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회적경제는 헌법 제119조 제2항을 실현하는 가치와 원리, 방법론을 제시하는 사업방식을 지니고 있다. 사회적경제 활성화는 이들 헌법 가치를 구현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이에 촛불시민혁명의 시대정신을 이어갈 대한민국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는 불평등 해소와 사회통합을 위한 시민경제의 동력으로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제안한다. 사회적경제 영역의 존재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경제와 소농・소상공인・중소기업 등 사회적・경제적 약자들과의 긴밀한 연대를 기반으로 추진되어야 할 일이다. 이를 위해 시민이 생산자나 소비자 어느 한 쪽의 정체성에 머무르지 않고, 더불어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연대할 수 있는 정책기반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헌법 제123조는 ‘농・어촌의 종합 개발과 중소기업의 보호・육성’에 관한 조항들로 구성되어 있다. 제2항 ‘국가는 지역간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 제5항 ‘국가는 농・어민과 중소기업의 자조조직을 육성하여야 하며, 그 자율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시기의 차이가 있지만, 후보들마다 대선 이후 개헌 논의를 본격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자체적으로 자조조직의 성격을 지닌 사회적경제 기업(조직)을 헌법 제123조에 포함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지역순환경제에 기반한 협동조합이나 커뮤니티 비즈니스 등은 지역경제 육성의 구체적 사례와 방법론을 제공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은 ‘호모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즉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해 자기를 경영하는 인간을 상정한다. 시민경제는 공공성과 공동체를 고려하는 경제질서를 지지한다. 사회적경제가 상정하고 있는 ‘호모레시푸로칸(Homo reciprocans, 상호적 인간)’은 사회적 결속이 경제적 삶을 형성할 수 있다는 패러다임에 근거하고 있다. 공감과 연대, 협력과 나눔의 가치를 기반으로 시민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에 대한 열망이 정치로 구현되기를 기대한다.
조현경 gobog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