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그런 게 아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 아니 꽤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나만 뒤쳐지고 있다는 자괴감에 사로잡힌다. 한가로이 걷는 게 좋다는 말하는 사람도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엔 나보다 어딘가 앞서가고 있는 듯한 사람과 나를 비교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정제된 일상과 글이 나를 주눅들게 만들고, 타임라인을 흐르는 이슈에 어울리지 못할 때면 중요한 일이 아닐 것이라 애써 외면한다.
이 글을 써내려가는 이 순간에도 나는 자괴감에 빠져있다. 적절한 열정이 버무려지면 어떤 추동력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뒤쳐진다는 자괴감은 늘 '상대적'인 일이라 끝이 없는 길을 걷는 셈이다. 끊임없이 못난 나를 자책하면서...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는 것이 훨씬 고귀한 일이라 말들 하지만, 사람들 속에 뒤섞여 있다 돌아오는 길엔 거의 어김없이 고개를 떨군다. 회한과 두려움이 밀려든다.
그래서 방법을 생각해봤다. 만나는 사람을 바꾸거나 주제를 바꿔보는 것이다. 나보다 못난 사람들을 만나라는 게 아니라 어울렁더울렁 삶을 향유할 줄 아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다. 지금 현재 그런 모임이 있는 사람들은 복되다. 그런 면에서 나도 복되다.
주말 아침, 기타 연습을 한다고 만나 끊어진 기타줄을 가지고 함께 씨름한다. 그러다가 기타줄 교환엔 실패하고, 그저 노래하다가 돌아온다. 사는 이야기 나누며 그저 즐겁다. 셋이서 모여 그런다. 우리는 밀양의 선생님 선산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 예정이다. 관객은 산새들과 벌레, 하늘과 바람. 그리고 선생님이다. 나의 복이다.
특히 부모들의 모임은 아이 비교에 대한 강박으로 가득차기 일쑤다. 내 아이만 뒤쳐지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들볶는다. 부모 모임에 나가지 않는 현명한 부모들이 주변에 몇 있다. 나는 이들을 응원하는 데 여념이 없다.
숲을 바꾸는 일 외에 뾰족한 묘안을 찾기 어렵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에 만족하라는 원론도 빠지면 안 된다.
난 오늘 나의 자괴감을 위로하기 위해 일필휘지 새벽공기를 마시며 이 글을 써내려간다. 내일 아침 후회할테지만 용기를 갖고 포스팅할 생각이다. 이 와중에도 여전히 내가 못났다는 자괴감이 나를 휘감고 놓아주기를 꺼려한다. 썩 물러나라 이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