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현경 Feb 21. 2017

[책갈피]어른동화

당신을 위한 생각수업 <어른동화>. 심규진 지음

아침 8시 20분. 사무실에 도착해 불을 켜고, 어제 퇴근 전 씻어놓은 머그컵에 집에서 내린 커피를 붓고, 책을 집어드는 시간이다. 그로부터 약 1시간. 다른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까지 온전히 나에게 선물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업무시간을 침범할지언정 업무시간이 이 시간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애쓴다. 복직 이후 만들고 있는 리추얼이랄까.

다만 아쉬운 것은 귀하디 귀한 이 시간마저도 '상품독서'에 할애한다는 점이다. 최근엔 <혁신교육 존 듀이에게 묻다>(서용선 지음)라는 책을 천천히 읽고 있다. 서울시 아카데미 사업용역과 관련해 '시민교육'을 주제로 글을 쓰기 위함이다. 목적이 어떻든지간에 참 좋은 시간이다.

지난 주 대학원 후배로부터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청년 소셜벤처의 임원답게 주변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친구다. 남다르다 생각했지만, 자신이 쓴 책이라며 건넨다. 무엇보다 한 손을 채우지 않는 얇은 두께와 넉넉한 여백이 눈에 들어왔다. 부담없이 읽어보자고 펼쳐들었는데 책 읽는 시간이 업무시간을 잡아먹었다.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데자뷰 같았다. 때론 아기자기한 디테일에 손이 오그라질 때도 있지만, 읽는 내내 코 끝이 시리다. 역시 최고의 위로는 처지와 입장의 동일함인가보다. 곳곳에 유사한 경험들... 나이 차이가 있다 생각했는데 같은 시대였나 싶다. 다만 이 모두 본인의 이야기였을까 궁금해하며 읽어내려갔다.

허망하게도 답은 '에필로그'와 책의 뒷면에 적혀있었다.

"'어른 동화'에 담긴 글은 소설도 수필도 아니다. 그저 내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을 나열했을 뿐이다. 생각의 파편에는 내 과거가 묻어 있고, 넘쳐나는 상상들이 춤추고 있다. 완전한 사실도 완전한 거짓도 없다. 그냥 '생각'이다."

과거가 묻어있지만, '상상'을 양념친 게 분명하다. 때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래서 책제목이 '동화'다. 상상이 베이스가 되었건 양념이었건간에 공감의 힘이 느껴진다. 아픔이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라도 작가의 몸을 통과하면 그만의 이야기로 내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허지웅 작가의 글을 읽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허지웅 작가의 글이 좀 더 농익었다고 해야 할까. 허지웅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른동화> 역시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른동화>는 '자유, 비유, 소유, 치유'를 주제로 29개의 짧막한 에피소드를 담았다. 여러 편의 이야기 속에 개인적 공감들이 있지만, #6 행복마트 편이 눈에 띈다. '나'라는 주인공의 읖조림에 이 책의 전반적인 기조가 담겨있다. 마트에서 일하는 '나'는 이 곳 '행복마트(상호)'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 비슷한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행복감을 느끼는 일상이었으면 좋겠다는 따뜻한 소망이 엿보인다. 천상 '소년'이다.


조현경 gobogi@hani.co.k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