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셨다고 확신하는 홍차는 레몬홍차와 복숭아홍차였다. 우리나라에서 홍차는 즐겨마시는 차가 아니다. 영국은 에프터눈티로 홍차를 마실 정도로 홍차를 즐긴다. 우리는 대신 녹차를 즐겨 마시는데, 사실 홍차와 녹차는 같은 잎으로 다르게 만든 차다.
예전 영국 사람들은 홍차를 먹고 싶어서 스리랑카의 산들을 홍차밭으로 바꾸어버렸다. 인도와 스리랑카를 식민지배하던 영국은 인도의 타밀(Tamil)족을 스리랑카로 강제로 이주시켰다. 그래서 지금도 타밀족 여성의 대부분은 찻잎 재배업에 종사하고 있다. 독립 후에도 스리랑카 차 산업은 영국인이 장악했다. 영국 업자들은 차를 스리랑카 밖에서 가공해서 판매했으므로 부가가치 없이 원료의 형태로 수출한 스리랑카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참 적었다고 한다. (2013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안규미의 <스리랑카의 차산업 동향> 참고)
스리랑카에서 홍차 밭을 보기 위해 내린 곳은 하푸탈레(Haputale)였다. 하푸탈레는 정말 작은 동네다. 이곳에서 툭툭(오토바이를 개량한 이동수단)을 타고 홍차밭을 둘러보기로 했다.
툭툭타고 산을 오르면 보이는 바깥
나를 데리고 올라가 준 툭툭
툭툭타고 올라와서 본 하푸탈레와 마을. 내려올 땐 여기서 해가 지는 걸 찍었다.
스리랑카는 곳곳에 홍차밭이 있다. 굳이 여기로 홍차밭을 보러 오는 이유는 여기서는 산을 통째로 홍차밭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푸탈레 근처 산 꼭대기에는 우리나라 편의점에서도 볼 수 있는 음료 브랜드 립톤(Lipton)의 창업자인 립톤(Thomas Johnstone Lipton, 1848~1931)씨가 앉아서 차를 마셨다는 자리, 립톤 씻(Lipton's seat)이 있다. 여기까지 툭툭으로 올라가면서 밖을 구경했다. 내 툭툭 드라이버는 시크했지만 멋진 자리가 나올 때마다 차를 세워서 구경하게 해줬다.
온 산이 초록색 찻잎으로 꽉차있었는데 산 만한 사람이 초록색 후리스를 입고 있다면 이렇게 보일 것 같았다.
사진으로 담기 부족할 정도로 높고 가파르고 깊은 산이었다
햇빛을 받아 예쁘게 빛나는 찻잎
이곳에 사는 아이들
립톤 씻에서 홍차를 한 잔 마셨다.
립톤씻이다. 이곳이 굉장히 높아서 아래 산들이 낮게 보인다. 저 멀리 남쪽으로는 넓은 평야가 있다고 들었다.
정상에서 마신 홍차
앉아서 차를 마시며 볼 수 있는 전망
차를 마시고 그냥 내려가기가 아까웠다. 집에 가기 위해 타야하는 기차시간까지 3시간 정도가 남아서 올라온 길을 걸어내려가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도로를 따라 걷는 것도 아쉬울 것 같아서 길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길로 가로질러 내려갔다. 걷다보니 도로가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예쁘고 아늑한 곳에 내가 있었다.
사진 중간에 돌로 만든 길. 저런 곳으로 내려가보았다.
꽤 많이 내려왔다고 생각해서 구글지도를 켰는데 위치가 정확하게 나오지 않았다. 좀 더 걸어봤는데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사방이 초록색 차밖에 없고 사람도 없고 집도 없어서 가는 길을 물어볼 수도 없었다. 이대로 있다간 기차 놓치는 건 물론이고 차밭에서 웅크리고 자야할 거 같았다. 걷다가 우연히 이곳 주민을 만나서, 통하지 않는 언어로 상황을 설명한 뒤에 그분의 댁에 하루 묵으면서 추억을 쌓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았지만 혹시나 잘못 걸려 외국인 차밭 노예로 남게 될 거 같아서 얼른 내려온 길을 더듬어 립톤씻으로 올라갔다.
툭툭을 타고 하푸탈레로 내려왔다. 내려오니 해가 지고 있었고 노을빛을 받은 타밀족의 집이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초록색 후리스를 입은 산도 노란 빛을 입었다. 호튼 플레이스 근처로 보이는 고산지대에 걸쳐있는 해가 정말 예뻤다. 좋은 카메라였으면 더 잘 찍었을텐데, 내 폰에 담긴 사진은 핵폭탄이 터지는 장면을 찍은 것 같았다.
툭툭을 타고 내려와서 찍은 해질녘의 마을
사진에서 3시쯤에 보이는 곳이 하푸탈레 역 근처. 그 뒤로 보이는 높은 산들이 아담스피크(Adam's peak)와 호튼플레인스(Hotton Plains)쪽이랬다.
점심을 먹었던 식당에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여기서 두끼를 먹기로 하고 가방을 맡겨 두었었다. 스리랑카 시골은 가로등이 많지 않다. 그래서 아주 깜깜한데, 정전도 되어서 몇분동안 별빛만 보이는 곳에서 밥을 먹었다. 기차를 기다리면서 네덜란드 형제랑 놀았고, 맥주도 조금 얻어 마셨다.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하늘을 보았다. 공기도 맑고 주변에 빛도 없는 덕에 정말 많은 별이 보였다. 보고 있을수록 더 많은 별빛이 보였고, 더 선명해보였다. 별빛이 쏟아진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카메라로 담고 싶었지만 역시 핸드폰으로는 담을 수 없었다.
핸드폰 카메라가 담은 건 이정도지만 실제론 이보다 별이 백 배 많이 보였다.
수도인 콜롬보까지 돌아가는 기차는 9시간이 걸렸다. 환승 없이 돌아갈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푸탈레와 그 주변은 고산지대라서 밤엔 정말 추운데 기차에 출입문이 없다보니 달리는 동안 너무 추웠다. 갖고 있는 옷을 다 입고, 덮고 오돌오돌 떨면서 자다보니 콜롬보에 도착했다.
스리랑카에 와서 부모님이 말하는 부모님의 어릴적 동네가 어떤 모습인지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도시에서도 볼 수 있는 포장되지 않은 골목, 맨발로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 옆으로 지나가는 고급 승용차, 내전으로 몸의 일부를 잃은 사람들, 위생은 중요하지 않은 식당. 콜롬보를 벗어나면 기찻길 옆에 토굴같은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좀더 순박하고 착하고 계산하지 않고 대해주는 사람들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하푸탈레는 스리랑카 깊숙한 곳에 있는 시골 마을이었다. 그리고 타밀족들이 사는 홍차밭은 그곳보다도 더 깊숙한 곳이었다.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콜롬보엔 엄청 큰 통유리 빌딩도 있고 검정고무신에서 본 집들도 있고 집 같지 않은 곳들도 있다. 콜롬보에서 비행기를 타면 서울에 도착한다. 스리랑카랑은 전혀 다른 세상이지만 나는 비행기를 타고 그 두 나라를 다녔다. 따로 보면 전혀 같은 시대일 것 같지 않은 두 나라가, 완전히 분리된 공간이라고 생각될 만큼 다른 모습인 두 나라가 사실 오갈 수 있는 하나의 공간에 있다. 서로 다른 모습을 한 곳을 떼어 놓고 보면 이해가 되지만 온 세상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공간인 걸 생각하면, 그리고 이런 세상을 모르고 차밭을 뛰어다니는 타밀족 아이들을 보면 나는 아직도 이상한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