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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스티스 Apr 24. 2024

우아한 육아하시는 분

저는 허덕이고 있습니다만

어떤 날에는 미친 듯이 거리로 달려 나가 길 가는 행인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혹시 우아한 육아하시는 분 아시나요?”


우아한 육아는 내 목표가 아니다. 나의 현실은 그것과 너무나도 멀리 있어서 우아함은커녕 허덕이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하루하루 바란다. 내 바람은 그저 허덕이지 않는 육아이다.

요즘 내 삶은 매일 허덕임 속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살면서 이렇게 허덕여본 적이 있을까. 대학입시를 준비할 때도, 취업을 위해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닐 때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첫째를 낳은 지 18개월 만에 브런치를 시작했고 이제 아이는 만 세 살이 됐다. 매주 한 편씩 글을 쓰는 것이 목표였으나 둘째가 곧 돌을 앞두고 있는 지금 5개월째 한 편도 쓰지 못했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둘째와 돌아서면 유치원에서 감기를 달고 오는 첫째를 보느라 글쓰기라는 사치는 허락되지 않았다. 지난겨울 내내 온 가족이 감기에 절절매다가 겨우 봄이 되어 콧물 소리가 잦아들 때쯤 코로나가 찾아왔다. 전 세계가 코로나에 앓아누울 때도 끄떡없던 우리 가족이었다.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고 사흘간 열이 끓어오르던 첫째를 돌보고 나니 내 몸이 아파왔다. 아픈 아이를 돌보는 일도 힘들지만 아픈 내 몸을 일으켜 아이를 돌보는 일은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힘든 시간이었다.


어느 날 정말 오랜만에 욕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2주 넘게 정리하지 못해 제 멋대로 자라 버린 눈썹과 혈색 없이 누렇게 뜬 피부, 하얗게 부르튼 입술에 퀭한 눈이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코로나 후유증 탓인지 유난히 말썽을 부리던 두 아이에게 말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인지 일주일째 목이 잠겨 쉬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나는 또 욕심이 많은 엄마다. 집도 깨끗하고 깔끔하게 유지하고 싶고,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싶으며, 외출할 때 아이들과 나 모두 단정하고 예쁘게 꾸미고 싶다. 틈나는 대로 글도 쓰고 영어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싶다. 일에 허덕여 하루 걸러 하루를 굶고 다니는 남편을 위한 아기자기한 도시락도 싸주고 싶다. 친구를 만나 차 한잔 마시며 수다도 떨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나라는 자원은 한정돼 있으니 나는 좌절하면서 너덜너덜해진 채로, 허덕이며 아이들을 돌본다.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이 일들 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라다.


그래서 가끔은 SNS에 우아한 육아 일상을 전시하는 게시물들을 보면서 맥이 풀릴 때가 많다. 정보를 얻기 위해 계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잃는 게 더 많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세계에서 내가 본 부모들은 아름답게 꾸민 집을 늘 깔끔하게 유지하고, 아이도 본인도 예쁘게 꾸민 모습으로 외출을 한다. 이유식은 매일 다르고 다양한 메뉴로 준비하고 아이는 그걸 앉아서 잘 먹는다. 그들은 주말마다 여행을 떠나고 주변 ‘찬스’로 아이를 맡기고 데이트를 즐긴다.


육아를 돕는 주변 자원과 자본이 많아야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떤 에너지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육아도 잘하고 스스로도 잘 돌보며 삶을 활기차게 구성해 보겠다는 의지의 에너지말이다. 물론 그들의 실생활도 사진 속 모습과 동일한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의 그런 에너지는 내게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않는다. 그 모습들이 내게 주는 울림이 있다면 나는 허덕이는 육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일뿐이다.


한때는 그 모습이 너무 반짝여보여 우아한 육아를 꿈꾸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남편은 매일 출장을 떠나고, 낯선 땅에서 누구의 찬스도 없이 홀로 아이 둘을 돌봐야 하는 나의 현실을 직시하기로 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머리를 이틀에 한 번이라도 감을 수 있으면 호사인, 그러나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 옆에 언제든 있어 줄 수 있는(그 또한 누군가에겐 호사일 수 있는) 그런 지금의 엄마가 되기로 다짐한다. 그게 아니면 내게 남는 건 자책, 우울 그리고 그런 내 옆에 남겨진 아이들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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