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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Apr 27. 2019

<문영>

말의 의미

<문영> 포스터


문영(김태리)은 말이 없었다. 술에 절어 고함치는 아빠에게도 지하철에서 장승배기 역을 어떻게 가냐고 묻는 이에게도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답답함이 밀려오면 수화인지 모를 몸짓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곤 했다. 문영은 말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순간을 캠코더로 찍을 뿐이었다. 자신이 두 발로 서 있는 세상조차 먼 발치서 바라보는 관찰자였다.  


희수(정현)와의 만남도 먼 발치 떨어진 곳에서 시작됐다. 문영은 전남친에게 찾아가 꼬장을 부리던 희수의 모습을 몰래 캠코더로 찍었다. 그 장면이 발각돼 육탄전(?)까지 벌였지만 그래서인지 둘은 가까워진다. 문영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계속 희수를 만난다. 희수는 부모 없는 자신에게 전남친이 애인이자 가족이었다 말한다. '개새끼' 아빠와 자란 문영이 희수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을 게다. 그 역시 희수를 친구이자 애인이자 가족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문영과 희수의 관계가 깊어지며 대화의 양상도 달라진다. 누가 말 걸어도 답하지 않거나 수화로 자신을 드러냈던 문영은 희수의 질문에 문자로도 대답을 하기 시작한다. 종이에 글을 쓰거나 하는 방식으로. 영화에서 말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문영은 의사소통 수단으로 여러 행위를 동원한다. 수화라든지 표정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는 않았다.


문영은 영화에서 딱 두 번 말을 한다. 자신이 엄마라고 생각한 사람을 지하철에서 만났을 때 그를 붙잡고 한 번, 희수에게 엄마를 만났다고 말 할 때 두 번. 자신의 삶에서 철저하게 관찰자를 유지해오던 문영이 말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피상적으로는 자신이 마음을 열은 상대에게만 말을 한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마음을 열었을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상대들이 관찰자였던 문영을 주체로서 존재하게 만들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영화는 문영이 캠코더에 담은 영상으로 시작해 문영의 말로 끝난다. 한 시간 가량의 서사는 언어 행위의 변화를 통해 문영이 관찰자에서 주체로 변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 밖에서 생각해보면 사실 말보다 비언어적 행위가 더욱 정확한 의사소통 수단일 경우도 많다. 에도 불구하고 가장 보편적인 의사소통 수단은 언어다. 말의 중요성은 부인할 수 없다. 하루에도 우리는 말을 통해 수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 중 본인이 주체인 순간은 얼마나 되는가. 영화가 내게 던진 마지막 물음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희수가 벙어리 행세를 하는 문영에게 "너, 그거 면죄부 아니다"라 꾸짖은 말이었다. 하지만 이를 중심으로 영화를 바라보기엔 너무나 지엽적인 맥락이었다.

**퀴어 요소도 눈에 들어왔다. 본 영화를 만든 김소연 감독은 맥스무비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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