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한 해의 중심을 기점으로 책을 손에 잡지 않았다. 평일이면 집에서 무언가를 할 시간이 마땅치 않았고 주말이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활동적인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책은 내 우선순위 밖으로 밀려났다. 대학생 때부터 취업 준비생 시절까지 재미, 지적 갈망, 호기심 등 갖은 이유를 붙여가며 유지하던 일상이었는데 말이다.
책이 잡히지 않은, 그러니까 내가 책을 잡을 수 없던 이유는 아마도 일 때문일 게다. 일을 시작하고 2주에 한 번 씩 부서를 바꿔 돌아다녔다. 2주마다 새로운 업계와 그곳의 이슈, 그리고 사람을 맞닥뜨려야만 했다. 모르는 분야를 파악해보려 머리를 굴리고, 조직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이로서 선배를 대할 때마다 머리를 굴리다보니 더 이상 머리를 쓰기가 싫었달까. 그러니 머리를 쓰지 않으며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일에 마음이 갔던 것 같다.
완전한 단절이었다. 책과 나 사이의, 일을 하기 전후 사이의. 보통 우리는 일을 시작하기 전과 후의 삶에서 여러 변화를 겪는다. 유쾌한 변화도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을 수 있다. 책을 포함해 어떤 사회학적 문장을 몇 줄 읽다 쉽게 지쳐버리게 된 내 모습은 후자에 속하는 변화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나를 바라볼 때 마음 속에서 올라오는 일종의 죄책감(?)도 점점 무뎌지는 듯 했다.
그러다 오늘, 뜬금 없이 책을 집었다. 부서를 떠도는 생활이 익숙해져서일까. 이유야 어찌됐든 나로서는 반가운 시도였다. 처음에 역사 관련 책을 펼쳤다. 몇 줄 읽다 재미 없어 놓아버렸다. 술술 읽히는 글이 필요했다. 몇 년 전, 머리맡에 두고 자기 전 야금야금 읽으려 샀던 고종석의 <도시의 기억>을 꺼냈다. 책은 머리맡 책장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책갈피가 책 중간에 꼽혀있었다. 절반밖에 읽지 않은 책이 내 마음에서 떠난 건 언제였을까.
'부다페스트' 편에서 고종석은 "부다페스트는 확실히 서울보다 볼 만했다. 하기야 유럽에 서울만 못한 수도가 어디 있으랴. 서울에선 도대체 과거를 읽을 수 없지 않은가. 역사를 지워버린 600년 고도가 서울이다. 부다페스트에선 적어도 과거와 현재가 함께 숨쉬고 있었다"고 썼다. 확실히 나도 교환학생 시절 유럽의 도시에 푹 빠졌었다. 서울보다는 유럽의 도시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 불과 5개월 전이지만 당시의 과거를 현재와 이어보려 한다.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는 삶을 꾸리기 위해. 삶이야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지만 잃지 말아야 하는 것도 분명 존재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