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자친구도 아닌데 왜 내 걱정하는 전화를 해요?"
당돌한 저 한마디가 팽팽했던 긴장을 깼다. 이후 그녀가 종일 숨겨왔던 감정을 털어놨다. 우리는 그날부터 연인이 됐다. 뿌옇게만 보였던 상대의 마음이 화살로 변해 날아와 내 심장에 박혔던 적은 없었다. 저 말을 듣는 순간 정말 가슴 안쪽이 저릿했다. 기뻤다.
이전까지 연애에서는 누가 먼저 고백을 했든 서로 확신이 있었다. 아, 이 사람은 나를 좋아하는 구나, 우리는 연인이 되겠구나. 그러다보니 공식적인 연인이 되는 통과의례 또한 자연스레 지나갔다. 서로의 감정을 더 본격적으로 드러내는데서 오는 희열은 있었으나, 예상가능한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감정이 절제됐다.
그녀와의 시작은 내 기준에서 당연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또 그가 한번도 제대로 연애를 해 본 적 없다는 맥락에서 저 한 마디는 내 마음 속 깊숙이 들어왔다. 너무 풋풋한 상황이라 생각했다. 고등학교 2학년 첫 연애 이후 이렇게 풋풋한 적이 있었을까. 항상 순수를 추구한다고 입으로만 떠들었지 실제로는 그것과 멀어지고 있다고만 여겨왔는데 말이다.
실제로 그와의 연애 행태도 순수하고 풋풋했다. 문제는 당시 내가 그 순수를 사랑하면서도 답답해 참을 수 없어한다는 것이었다. 순수한 사랑이 여물기까지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오늘 본 영화 <클래식>에서도 준하와 주희는 만남도 자주 않고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보기에도 너무나 아름답고 소중한 만남이었지만 나는 그 사랑에 걸맞지 않는 사람이었다.기 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변했다는 문장이 더 적절할 듯하다.
그렇게 1년 정도 그녀와 만나다 헤어졌다. 아름다운 이별은 아니고 몇 번을 헤어졌다 만났다 반복하다 지쳐 서로 나가 떨어졌다. 나름 1년 간 그 순수함을 깨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애를 썼던 연애는 처음이었다. 어쨌든 그 연애는 깨졌다.
투박한 배경과 부자연스러운 목소리톤, 부모가 이루지 못한 사랑을 자식이 이룬다는 설정 등 촌스럽다면 촌스러운 <클래식>은 그랬기에 더욱 순수하게 느껴졌다. 몇 년을 되뇌었던 질문이지만 또다시 내게 묻는다. 나는 앞으로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순수한'이 뜻하는 바가 바뀔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