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후트리 Mar 04. 2021

소중한 나의 박종수 씨.

아빠에 대한 몇 가지 짤막한 이야기들.

<수어그림 _ 아빠>




소중한 나의 박종수 씨.



팟캐스트 <책 읽는 라디오>의 코너, [센티멘탈시티 그리고..]에 방송되었던 대본.




설명 : 한 가정의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형제로서 언제나 든든한 역할을 했던 남자. 신정을 맞이하여 가까운 형제들과 가족들과의 모임을 위해 새벽 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난다. 그 소식을 접해 들은 가족들은 오열하지만 유독 한 여자 아이만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소녀가 가슴 아픈 사실을 받아들여가는 과정들을 회상하는 장면입니다.


캐스팅
: 여자 성우 님 ( 여자 주인공은 내성적이지만 똑 부러지는 아이, 가녀리지만 강한 소녀의 느낌을 표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체적인 대사는 상실감으로 가득 찬 사실을 부정하는 말투였으면 좋겠고요. 끝으로 갈수록 점점 사실을 인정하고 슬퍼하는 마음을 잘 표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겨울바람이 유난히도 차갑게 느껴졌던 1998년 1월. 택시운전기사였던 아빠는 새벽녘쯤 업무를 마치고 가족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할머니 댁으로 오던 길이었어. 어둠으로 뒤덮인 도로변을 따라 액셀을 밟던 그 순간 마주 오던 차에 부딪혀 모든 것은 공중으로 떠버렸고, 이내 다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지. 온몸은 붉은빛으로 물들어 버렸고 정신이 혼미해졌어. 응급실로 실려가는 구급차 안에서 아빠는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어. 응급실에 도착한 아빠는 수술을 받기 위해 급하게 옮겨지고 있던 순간이었어. 평소에 병원 출입을 하지 않았던 아빠의 형이 응급실을 나오다 이상한 기분에 사로 잡혀 얼굴도 모르는 환자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어. 형이 서 있던 그곳엔 자신이 동생을 위해 사주었던 구두 한 짝을 발견하게 되었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어. 이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지만 하는 수 없이 가족들에게 전화를 해주었어. 아빠를 기다리던 엄마가 자꾸만 전화를 받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던 형은 결국 사실을 알려주고 말았어. 집안은 온통 울음으로 가득 찼고, 세상모르고 자고 있던 내게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어. “ 얘, 네 아비가 죽었단다.. “ 눈물을 훔치시며 나를 흔들어 깨우셨어. 내성적인 내게 가장 포근하고 자상했던 단짝의 숨결을 더 이상 느껴볼 수 없단 사실을 난 너무 받아들이기 싫었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고, 내가 정신을 차리고 서 있던 그곳은 장례식장 안이었어. 듣기 싫은 울부짖음들.. 보기 싫었던 아빠의 영정사진.. 나의 시선은 방향을 잃어버렸어. 눈물을 쏟아내지 않던 내게 사람들은 독하다고 했어. “ 지 아비가 죽었다는데 울지도 않네, 독한 년.. “ 내가 울어버리면 아빠가 다시는 내 곁에서 웃어주지 않을까 봐 난 두려웠어.. 나? 라도 나만이라도 울지 않으면 아빠가 살아 돌아올 것만 같았거든.. 모든 순간을 부정한 채 먹지도 잠들지도 않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어. 그런 내 모습이 가여웠던 형은 큰 결정을 내린 비장한 얼굴을 하고 어떤 문 앞에서 나에게 오라며 손짓을 했어. 내가 들어선 그곳엔 네모난 상자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아빠가 누워 있었어. 가족들 모두가 네모난 상자를 둘러싸고 있었고, 아빠의 머리맡에 있던 엄마는 내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어. 가까이 가면 갈수록 흐릿해지는 누군가의 얼굴. 내 눈엔 눈물이 맺혀 있었어 눈물 한 방울이 툭 하고 떨어지자 엄마는 말했어. “ 아빠가 너희들 보고 가려고 아직 눈을 못 감으셨나 보다. 네가 눈 감겨드려.. “  머리를 감싸던 흰 붕대 아래로 희미하게 보이는 아빠의 눈동자 양쪽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어.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는데,,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아빠에게 내가 해줄 것이라곤 “ 잘 가.. “라는 영원한 작별의 인사뿐이었어.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아빠를 느낄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난 아빠의 눈을 감겨줄 수가 없었어. 내 손은, 내 눈은 아빠를 모든 곳을 훑기 시작했지. 오랫동안 간직하려고, 누군가의 추억에서 꼭 살아가라고, 기도하면서 말이야. 이제 정말로 아빠를 보내줘야겠다 싶었어. 아빠 닮아서 차가웠던 내 손은 그날따라 유난히 따뜻하더라. 더 이상 아빠의 눈동자를 볼 수 없는 그 순간.
왼쪽 뺨을 타고 흘러내리던 아빠의 눈물 한 방울.. 이제 영원히 안녕..





오랫동안 이 글을 찾았었다.


아무리 찾아도 찾아지지가 않았는데, 내 메일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었다.


이 글은 <책 읽는 라디오>라는 정부지원 사업금으로 운영되는 팟캐스트에서 방송되었던 글이다.


라디오 작가를 모집한다는 공고 글을 보고, 아빠의 이야기를 적어 합격이 된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내려 갔고, 결국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빠와 나와 우리 가족의 시간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공감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눈물도 났었다.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 올라와서 처음으로 타인에게 진심으로 인정받는 기분도 들었다. 그게 벌써 2013년 3월의 일이다.


이제는 아빠가 나와 함께해준 시간보다 함께할 수 없는 시간들이 더 길어져 가고 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내게 많은 시선을 남겨주고 가셨다.



첫째, 아빠가 택시운전기사 이셨기 때문에, 청각장애인 운전기사님들이 운행하는 고요한택시의 외관 디자인을 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협업할 수 있었다.


둘째, 추억하고 기억하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했다. 난 아빠와 항상 함께이기 위해 몇 년 전, 왼쪽 발목에 아빠를 ‘추억’하는 수어그림을 타투했다. 왼쪽에 한 이유는 단순한 이유다. 아빠가 왼손 잡이셨기 때문이다.


셋째,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를 만들어주셨다. 아빠는 꽤 잘생긴 외모이셔서, 첫째인 나는 아빠 외모를 좀 많이 닮았다. 잠자는 버릇, 먹는 음식, 걸음걸이, 체형, 외모 등 판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난 몇 개월 후쯤이었나, 내가 잠자는 모습, 홍시 먹는 모습을 보고, 엄마는 아빠랑

너무 똑같이 행동하는 나를 보고선 아빠가 돌아온 것 같다며 소스라치게 놀라셨다고 말해주었다.


아빠는 언제나 보고 싶다.

그래도 내가 아빠의 많은 부분을 닮은 사람이라 위안이 된다.


소중한 나의 박종수 씨.

수고했어요.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


매거진의 이전글 서로의 정체성 존중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