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이 많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장담할 수 있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엄마의 친동생인 우리 기표 삼촌은 노래 부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노래방에서도 부르지만 노래방이 아닌 곳 어디에선가 노래가 흘러나오며 흥얼거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삼촌은 내게 종종 피아노를 쳐줄 것을 요구했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노래를 부르기 위함이었다. 우리 집에 오면 초인종을 누르며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문을 열어주면 입장과 동시에 "피아노 좀 한 번 쳐봐 지후야~"라는 말을 항상 달고 살았다.
내가 왜 피아노를 삼촌에게 쳐주게 됐는지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친구 따라 강남을 잘 가는 타입의 나는 같은 아파트에 살던 친구가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됐다며 내게 이야기해 줬다. 그다음 주부터 친구와 함께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됐다. 생각보다 행동파인가 싶다. 바이엘부터 소나타, 체르니 까지. 초등학년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과정을 알차게 띄엄띄엄 다 배우게 됐고 친구는 마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었지만 나는 계속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됐다. 그러다 보니 교회 집사님이셨던 피아노선생님의 권유로 일요일 교회 반주도 하게 됐고 심지어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열심히 모았던 용돈과 엄마의 조그마한 자금을 합쳐 영창피아노를 구매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내 소중한 1호 보물이 되었고 우리 집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게 피아노였다. 삼촌이 피아노 앞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아빠가 일찍 하늘에 별이 되고 집안에 남자 어른이 없다 보니, 나와 내 동생이 쓸쓸하지 않게 삼촌이 자주 집을 드나들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의 동시다발적인 체크사항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피아노를 열심히 치고 있는지, 조카가 밥은 먹고 잘 지내고 있는지, 새로운 신곡을 연마하지는 않았는지, 외할머니가 보내온 반찬들은 잘 먹고 있는지, 소프라노 조수미 씨가 대단한 공연을 하는데 kbs에서 방영을 해주니 반드시 녹화를 해둬야 한다며 당부를 하러 온다던지 등등을 확인하고자 했을 것이다. 삼촌이 언제 들이닥쳐서 노래를 부르고자 할지 몰라 피아노를 치는 것을 게을리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노래를 부르다가 조금이라도 멈추는 순간이 생기면 나는 삼촌의 눈치를 보며 옅은 미소를 띨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삼촌 이거는 조금 어려운 곡이니까 좀 더 연습할 테니 티브이 좀 보고 있어 봐. 연습 다 끝나면 연주에 맞춰서 노래 부를 수 있게 해 줄게."
삼촌은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고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그는 내 연습이 끝날 때까지 안방에서 티브이를 보며 거실로 나오지 않아 줬다. 내가 어느 정도 연습을 끝낸 것 같다고 느꼈던 삼촌은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안방 문을 열고 화장실에 잠시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말했다.
" 조카님 이제 노래 부를 수 있나? "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눈빛을 교환했고 나는 반주를 그는 노래를 불렀다.
눌러야 할 플렛이 많은 곡을 선택한 삼촌 덕분에 한동안 내 피아노실력은 일취월장이었다.
베사메무쵸부터 시작해 다양한 악보를 구매하였고 틈날 때마다 연마해 삼촌의 노래 부르기를 위한 조카의 연주는 계속되었다. 삼촌의 못 말리는 음악 사랑이 내리사랑으로 이어져서 음악에 맞춰서 몸을 흔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고, 지금은 퍼포머, 그림 작가로 예술종사자가 되었다. 삼촌의 흥이 제대로 된 영향을 주었기에 문화를 대하는 태도가 겸허하고 겸손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온기가 가득한 작업들을 보여주겠노라고 다짐 또 다짐한다.
고마워! 훌륭한 기표 삼촌 멋쟁이!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