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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후트리 Oct 22. 2024

사과 내밀면서 사과하지 마

수어그림 <미음> / 지후트리 / 2017 



사과 내밀면서 사과하지 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해 상대방에게 사과하지 않고 상처를 주는 일은 경범죄와 비슷하다는 의견이다. 나도 겪었고 주변에도 여럿 보인다. 관계에 균열은 사소한 문제로부터 출발한다. 어렸을 적부터 주변의 시샘을 많이 받으며 자라왔는데 내가 잘났던 것도 집이 부자였던 것도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내게 둘러싸여 있던 환경들 중에 그들이 부러워할만한 인물들이 있었다는 정도 일뿐이었다. 특정한 인물과 친해져 어떤 권력을 가지고 싶어 나를 음해하고 배신했다. 그을려 지워지지 않는 일화가 하나 있다. 중학교 1학년 새 학기 초쯤이었다. 선생님이 배정해 준 곳에 청소를 하고 교실로 복귀 중이었는데 저 멀리서 학급친구가 황급히 달려오더니 말했다. 


" 무서운 언니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너 있냐고 누구냐고 찾는데 지금은 교실로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아!!"

" 누군데? "

" 모르겠어. 근데 진짜 무섭게 생긴 언니들이야 어떤 언니가 화가 많이 나보였어. "


그 친구와 조심스럽게 교실 근처 별로 다가가 숨어서 그 무리 언니들이 서 있는 장면을 바라봤었다.

정말 위협적이었고 곧 끌려가 한대 맞거나 욕을 한 바가지 먹을 것 같아 심장이 요동쳤다. 우르르 몰려온 언니들은 족히 10명은 되어 보였다. 내가 아무리 키가 커도 1:10은 좀 무리이지 않나 싶었다. 얼굴 하나하나를 둘러보는데 유독 낯익은 얼굴 하나에서 내 시선이 멈췄다. 교습학원에서 친하게 지내던 언니었다. 


' 언니가 왜 저렇게 화난 얼굴을 하고 있지? 우리 제법 잘 지내왔는데? ' 


정말 의문이 들었다. 언니가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난 얼굴을 하고 나를 찾고 있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다. 청소시간이 끝나고 7교시가 시작되는 종소리가 울리자 언니들은 돌아갔다.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교실로 들어간 내게 친구들은 걱정 어린 시선으로 쳐다봤고 그녀들이 남기고 간 말을 전해줬다.


" 어떤 언니가 너 조심하래. 뭐라더라? 네가 뒤에서 그 언니 욕을 엄청 하고 다녔다고 그러더라고. 

근데 넌 그럴 애가 아닌데 무슨 오해가 있는 게 아닐까? 아는 사람이라면 잘 이야기해 봐. "


나중에 알고 봤더니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면서 친하게 지내왔던 친구 2명이 나를 배신한 것이었다. 소위 말해서 잘 나가는 무리의 일원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언니는 공부를 잘하면서 노는 친구들과 무리 지어 다니는 언니 었는데 성격이 털털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는데 조금 다혈질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초등학생 때 학원에서 우연히 알게 된 언니 었는데 알고 보니 큰아버지가 다니는 회사 직원의 가족이었고 그런 교집합적인 관계를 계기로 언니는 내게 항상 친절하게 잘해줬고 중학교에 들어오면 연락하라는 말이 든든했었다. 그런데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찾아온 것일까. 변명을 할 시간도 없이 중학교 3학년 내내 그 언니들을 피해 다니느라 혼자 급하게 하교하는 일이 잦았다. 


'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집에 도착했네 '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이 올라갈 때쯤 배신했던 친구 중에 한 명이 대뜸 쪽지로 사과를 요청해 왔다. 얼굴 보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조금 괘씸했다. 이미 가시밭길 하나가 있는 학교 생활에 불편한 여정을 더하고 싶지 않아 어영부영 사과를 받아줬지만 균열이 난 관계는 다시 이어 붙어지기 어려웠다.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었고 관계적으로 하루 살이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아직도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어떤 특정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인상부터 찌푸려지곤 한다. 사과를 받을 사람이 진짜 사과라고 느끼는 게 진정한 사과인 것이다. 미사여구 붙일 필요도 없이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만 해줬다면 내 어린 날의 시간들을 더 빛나고 찬란하게 보낼 수 있었을까. 



먹는 사과 내밀면서 사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상대방과 보내온 시간들이 부정당한 기분이 들기 때문에 그럴 땐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이 맞다 본다. 우리 모두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상처받을 수 있다. 용기 내어 사과한다면 그 관계는 조금씩 회복할 수 있다. 어쩌면 누군가가 당신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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