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무언가에 몰두해 본 적이 있는지 기억을 더듬어 봤다. 어느 시절에 제일 즐겁게 미쳐있었을까 난.
어린 시절엔 예술만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거려서 앞뒤를 재볼 요량 따윈 없었다. 앞만 보고 달리는 한 마리의 야생마였다.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은 대한민국에서 서울이 제일이라는 판단에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내딛는 걸음 한 걸음마다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것들 투성이었다. 때로는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여정마저 설렘을 안겨다 주었다. 온갖 홍보포스터, 간판, 지하철 버스 광고들까지 영화를 보고 전시를 관람하는 것처럼 눈에 담았고 글이던 그림이던 창작물의 형태로 기록했다. 노력의 시간들이 쌓아 올려져서 글을 써도 술술술 그림을 그려도 아이디어가 술술술 파티를 기획해도 기획이 술술술. 아마도 이때는 에너지 대폭발의 시대가 아니었나 싶다.
성과라고 할만한 것들이 피부로 체감이 된 이후 언제부터인가 뒤로 물러나 망설이고 주저하는 사람이 되었다. 두려움과 긴장감이 내 온몸을 감싸 안았다. 타인에게 주목을 받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니라 스스로가 격려하고 만족하고 이루고 싶은 목표지점에 천천히 가고 싶은 마음이 첫 번째여서 그랬던 것 같다. 불편한 마음을 끌어안고 나를 돌보지 못한 채 화려한 성과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선택과 집중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했다.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다가는 다 놓아버릴 것 같아 질서를 찾는 연습이 필요함을 직시했다.
지향하는 것과 지양하는 것들을 분류해 기록했다. 나름의 기준들을 만들어두면 보호능력이 생기지 싶어서였다. 꽤 건강한 방법들로 위기를 헤쳐나갔다. 홀로 당일치기 여행, 주 3회 10km씩 걷기, 개러지밴드로 리듬일기 쓰기, 주 3회 웨이트 운동하기, 책 읽고 마음에 드는 문장 필사하기, 친구들에게 뜬금없는 날 칭찬하는 톡 날리기, 아침일기 쓰기, 심리상담센터 가서 기질 검사 해보기 등
스스로가 매니저가 되어 일정을 케어해 줬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듦을 알기에 건강과 내면을 채우는 것에 집중했다. 물질적인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소모되고 소비되지만 내가 지닌 내면의 자산들과 건강은 절대로 누군가 뺏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건강한 행복감이 천천히 차올랐다. 즐거웠고 고마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이었고 인내심이 강하고 포기를 모르는 스스로에게 미쳐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정말 미쳐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를 돌아보고 돌보는 일. 멈추지 말고 천천히 나아가려 한다.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