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식 자의식 자이식 자이식 자-식.
자의식은 못나도 버릴 수 없다는 점에서 마치 자식 같다. 물론 자식을 낳아본 적은 없지만 우리 엄마가 가끔 그런 기분이지 않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무럭무럭 물만 줘도 자라는 콩나물처럼 어두운 비닐 봉지에 가두어 놓아도 내 자의식은 쑥쑥 자란다. 놀라울 지경이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자라난 것들이 으레 그러하듯 아무리 솎아내도 결국 손이 부족하다. 제 맘대로 자라난 콩나물 같은 자-식을 어디 내다 버릴 수도 없고, 난감하다. 가족이란 건 누가 안 볼 때 변기통에 처넣어 내려버리고 싶은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하지만 나는 어엿한 문명인이므로 자식을 그렇게 대하고 싶지 않다. 나에겐 변기통 대신 여러 글쓰기 도구들이 있고, 일기부터 시작해 인스타그램, 글쓰기 스터디를 넘어 마침내 내 글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는 플랫폼에 글을 쓰기에 이르렀다(자의식이 폭발하는 듯하다).못난 자식이라도 알리고 싶은 이 마음. 자식이 인정 받았으면 하는 그 갸륵한 마음. 부모 마음이 이런 걸까 싶다.
예전에는 자의식 과잉이라는 말을 들으면 불편했다. 그래서 한동안 자의식을 없애보려고도 했지만 늘 결과는 미진했다. 그리하여 이젠 지병처럼 늘 데리고 살아야한다고 마음을 고쳐 먹게 됐다.
그러니까 나는 못난 자식 같은 나의 자의식에게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좀 가져주십사, 하는 지극한 부모심정으로 오늘부터 글을 쓰려 한다. 경상북도 산구석 어디쯤에 있는 개방형 변기를 이용하는 기분이라 아직까지는 뭐, 일기 같긴 하지만 언제가 되건 누군가 한 명쯤 내 자의식을 읽어줄 생각을 하면 벌써 마음 한 구석이 은근해진다.
지적 허영과, 갬성이 떡칠된 나의 자-식.
오늘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