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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쟤와 별 Jan 24. 2022

거울 거울 엘리베이터는 길쭉하지요

박준과 이원하의 시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취향이 왜 그렇게 후져? 하고 말할 여러 사람들의 입술이 방울방울 떠오른다. 내가 류시화나 하상욱의 시를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는 사람들을 보는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취존은 꽤 어려운 일이다(물론 취준이 더 어렵다). 몇 년 전 한 좌담에서 서효인은 말했다. 솔직한 자신의 말을 쓰자니, 이게 정말 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자신의 동력은 생활의 보수성과 마모되어 점점 보수적으로 변한 것 같다고, 어떤 시가 미학적인가 하는 질문에 자신은 아직도 답을 모색하고 있다고.


참여시와 서정시를 가로지르는 선은 문질러진지 꽤 오래되었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비평공간에는 사회학적 시선이 본격적으로 개입되었고, 미학성과 정치성 간의 줄다리기가 시인과 시인 사이가 아니라 구절과 구절 사이에서 벌어졌다. 근대문학의 종언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그 비판을 몸으로 부수어가며 전진하고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간 전위성이 없다는 이유로 혹은 언어의 불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관심이 없어보인다는 이유로, 조금 멀어져 있었던 '윤리적 재현'의 소설이 적극적으로 호명되었다. 어젠다를 제시하지 못하는 문학은 엔터테인먼트로 전락했다는 고진의 뼈아픈(누가 아팠는지는 모르겠지만) 지적에 마치 고진감래인 것처럼, 여러 젊은 평론가들이 정체성 어젠다를 끌어왔다. 성공적으로 '체질 개선'을 유도해낸 대표적인 평론가로는 신형철이 있고 그의 글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평론가의 글치고는 이례적으로 많이 팔렸고 팔리고 있고 팔릴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문학 대부분은 잘 팔리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소설과 시를 읽고 코멘트하는 대가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만든 잡지에서 알게 되었다. 대략 메타비평이라는 제재를 붙여 자신들의 존재의의를 증명하는 글을 써서 존재하는, 존재하기 위해 존재하는 그런 글이라고 할까. 본질보다 아주 일찍 선행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사르트르적이었다. 잡지는 너무 무거워서(그럴 돈이 없기도 하고) 대학교와 계약이  학술논문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했고, 과외하러 가는 지하철에 앉아 아이패드로 그들의 글을 읽었다.  많은 동네에서 대강 농담 따먹기로 수업의 대부분을 채우며(버릇처럼 휴강하는  교수의 휑한 정수리가 떠오른다), 어차피  많은데 이정도 모럴 해저드쯤이야 뇌까리던 농담에 정말 나조차 착각할 만큼 이입된 감정으로 수업준비도 하지 않고, 가끔은 00년대 소설  무기력한 인물에 스스로를 대입하는 나르시시즘적인 상상을 하며,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기 위해 뻣뻣하게 굳을 때까지  숙인 고개로 아이패드 위로 마스크를 마스크 위로 표정을 묻었다. 이런 미세먼지 같은 순간들이 쌓여, 성찰을 부르짖는 문학에 호응하는 독자가 된다면 그런 독자 뿐이라면 모두 까만 터널 속에 버려두고 떠나야 하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지이이잉- 진동이 울렸고 입금이 되었다.


온건한 자들은 대개 축복 받은 자들이다. 급진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은 혹은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지만 결국 실패'하는 자들은 슬퍼하지 말라. 잘 태어난 덕분이다. 잘 사는 동네에서 알바하다 보니 알게 되었다. 잘 살수록 이 악물게 없으니까 젠틀맨이 될 수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동네로 출근하는 동안 중고책이 아니라 아이패드로 글을 읽고, 스크린을 너무 많이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스크린타임까지 걸어놓으며 디지털 디톡스를 떠올리는 내가 계급을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묻는 거울은 지겹다. 아니다, 어쩌면 겨울이 지겹다. 스테인리스 난간이 없다면 나는 나와 하루에 한 번도 마주칠 일이 없을 텐데. 나는 나의 실패가 무능에서 비롯되었다는 행운을 누리며, 오늘도 출근한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지겹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기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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