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친구와 유명한 소설가와의 북토크를 갔다. 아주 아주 아주 잘 팔리는 소설가였으므로,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였더랬다. 소설가는 쓰는 소설보다 조용했으며, 단단해 보였다. 하지만 처음엔 호감이었던 인상이 점점 뭐랄까... 찐득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바싹 말라갔다. 아마도 소설가 지망생이 대부분일 이 청중들 중에서 몇몇은 자신이 소설을 쓴다고 밝히며 문학이라는 지난한 일에 대해 당위와 동기를 보여주며 어떻게든 소설가로부터 한 마디의 말이라도 듣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소설가는 그리 특별하지 않은 - 사실 진부하게 짝이 없는 이야기를 내놓았고 만족하지 못했을 테지만 은유적으로 전달되는 진리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듯 그 청중은 고개를 미세하게 주억거리며 무언가를 캐치해내려 애썼다. 그러니까 이게 종교랑 뭐가 다를까. 사실 소설가와 청중의 자리에 종교인과 신도를 치환해도 아주 아주 아주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소설가가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도 탈권위적이었다. 그렇지만 권위는 추종자를 통해 배태되는 법이다. 예술가라는 단어의 자리에 다른 그 무엇을 놓아도 상관없다. 다만 나는 예술뽕을 맞은 자들이 주로 더 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예술 예술 입에 달고 입에 담을 예술도 없는 날에는 술만 담는 그 입으로 세계를 왕따시키는 듯 스스로 연민하는 그 태도가 너무 너무 너무 보기 싫었고 내가 그 청중 가운데 37번 청중 쯤 된다는 게 매우 불쾌했다. 심지어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곳에 몇 명은 있을 텐데, 나나 그들은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그런 생각을 하며 타인을 경멸하는 것인가, 까지 생각이 미치자 미쳐버릴 것 같았고 북토크는 마쳐 있었다.
"싸인 안 받을 거야? 눈도장 난 콱 찍고 왔지."
소설가가 꿈인 나의 친구는 그 많은 청중들 가운데 단연 돋보였고, 한 가득 싸온 소설가의 책을 꺼내놓으며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나중에 만나자고 얘기 나눴다는 친구의 눈이 반짝였고, 삐딱한 내 표정을 본 친구는 한숨을 쉬며 "너 그거 질투야."라고 말했고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렇게 납작하고 시니컬하게 축약되는 감정일까. 물론 질투가 섞였겠지만, 그래서 누군가를 롤모델로 삼는 사람들에게 냉소하는 내 모습에도 냉소를 보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고 말하기엔 내가 너무 후져보여서 쿨한 척 동의했지만... 쿨하지 못해서 여기에 쓴다. 언젠가 누군가 아, 솔직히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은데 라는 말을 하며 읽어주기를 기대하면서.
햄버거도 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