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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쟤와 별 Apr 22. 2022

예술뽕과 종교성과 질투 같은 것

언젠가 친구와 유명한 소설가와의 북토크를 갔다. 아주 아주 아주 잘 팔리는 소설가였으므로,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였더랬다. 소설가는 쓰는 소설보다 조용했으며, 단단해 보였다. 하지만 처음엔 호감이었던 인상이 점점 뭐랄까... 찐득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바싹 말라갔다. 아마도 소설가 지망생이 대부분일 이 청중들 중에서 몇몇은 자신이 소설을 쓴다고 밝히며 문학이라는 지난한 일에 대해 당위와 동기를 보여주며 어떻게든 소설가로부터 한 마디의 말이라도 듣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소설가는 그리 특별하지 않은 - 사실 진부하게 짝이 없는 이야기를 내놓았고 만족하지 못했을 테지만 은유적으로 전달되는 진리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듯 그 청중은 고개를 미세하게 주억거리며 무언가를 캐치해내려 애썼다. 그러니까 이게 종교랑 뭐가 다를까. 사실 소설가와 청중의 자리에 종교인과 신도를 치환해도 아주 아주 아주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소설가가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도 탈권위적이었다. 그렇지만 권위는 추종자를 통해 배태되는 법이다. 예술가라는 단어의 자리에 다른 그 무엇을 놓아도 상관없다. 다만 나는 예술뽕을 맞은 자들이 주로 더 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예술 예술 입에 달고 입에 담을 예술도 없는 날에는 술만 담는 그 입으로 세계를 왕따시키는 듯 스스로 연민하는 그 태도가 너무 너무 너무 보기 싫었고 내가 그 청중 가운데 37번 청중 쯤 된다는 게 매우 불쾌했다. 심지어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곳에 몇 명은 있을 텐데, 나나 그들은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그런 생각을 하며 타인을 경멸하는 것인가, 까지 생각이 미치자 미쳐버릴 것 같았고 북토크는 마쳐 있었다.


"싸인 안 받을 거야? 눈도장 난 콱 찍고 왔지."


소설가가 꿈인 나의 친구는  많은 청중들 가운데 단연 돋보였고,  가득 싸온 소설가의 책을 꺼내놓으며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나중에 만나자고 얘기 나눴다는 친구의 눈이 반짝였고, 삐딱한  표정을  친구는 한숨을 쉬며 " 그거 질투야."라고 말했고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렇게 납작하고 시니컬하게 축약되는 감정일까. 물론 질투가 섞였겠지만, 그래서 누군가를 롤모델로 삼는 사람들에게 냉소하는  모습에도 냉소를 보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고 하기엔 내가 너무 후져보여서 쿨한 척 동의했지만... 쿨하지 못해서 여기에 쓴다. 언젠가 누군가 아, 솔직히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은데 라는 말을 하며 읽어주기를 기대하면서.


햄버거도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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