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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동재 Apr 26. 2024

삼성 '임원 주 6일 근무’가 위기극복에 도움이 될까?

오늘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삼성 임원(보도 내용에 따르면 임원이지만 개념상 이사회 멤버가 아니므로 이하, 경영리더라는 표현을 쓰겠습니다.) 주 6일 근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알려진 것처럼 삼성그룹은 지난 17일부터 ‘자발적으로’ 주요 계열사 임원들이 주 6일 근무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자발적’이라는 표현과 ‘결정’이라는 표현이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이런 흐름은 곧장 삼성 계열사 전체로 확대되었고, 나아가 산업계에도 영향을 미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토요일 출근을 하니 ‘1100명에 달하는 임원 이름 옆에 초록불(접속 중을 의미)이 들어와 있어 긴장감이 돌았다’고 합니다. 일종의 비상경영을 선언한 것이고, 경영리더의 시간을 통제함으로써 그룹 전체에 위기감을 공식화하는 상징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라는 해석들이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습니다. 언론 보도들을 보면서 전략의 대가인 리처드 루멜트가 2013년 한국에 한 강연에서 삼성에 대해 언급했던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삼성전자가 명령을 내리면 모든 구성원들이 그 명령을 따르지 않나? 다른 나라는 이렇지 않다. (중략)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못한다. 한국은 다르다. 그것이 기업문화인지, 국가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삼성처럼 똑똑한 직원들이 명령받는 대로 일하는 기업은 다른 나라에는 없다. 굉장히 신기하다.”

어찌보면 삼성의 이번 조치는 리처드 루멜트가 본 삼성의 조직문화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다른 곳에서 많이 다루는 삼성의 위기에 대해 다루지 않겠습니다. HR의 관점에서 경영리더의 주 6일제가 위기를 극복하는데 효과적인 방식일지, 이 같은 대안을 검토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점들은 무엇인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위기를 공유하기에 앞서 점검해야 할 체크리스트


지금 우리 조직이 위기를 선언하고자 한다면 먼저 네 가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 우리 조직은 경영계획(미션, 비전, 과제, 전략, 목표)을 수립하고, 리뷰하는 프로세스가 존재한다.
✅ 우리 조직은 경영계획을 리뷰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환경분석 즉 센싱기능이 작동하고 있고, 그 내용을 경영계획을 업그레이드, 튜닝하는데 반영한다.
✅ 우리 조직은 일상적으로 대시보드(dash board) 성격의 KPI를 운영함으로써 전략이 잘 실행되고 있는지에 대해 모니터링(평가 목적이 아님)하는 기능이 있다.
✅ 우리 조직은 전략 수립 이후 그 내용과 맥락을 충분하게 구성원들과 커뮤니케이션함으로써 구성원들이 기여해야 하는 조직의 성과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고, 상위 단위조직과 하위 단위조직의 경영계획, 단위조직 경영계획과 구성원 개인 성과계획 간의 정렬(align)을 지원하는 프로세스와 도구들을 갖추고 있다.


위 네 가지 항목 중에서 3가지 이상이 충분히 경영활동에 반영되고 있지 못하다고 판단된다면 위기를 선언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위기는 갑자기 찾아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위기의식’이 갑자기 다가올 뿐입니다. 위기의 징후는 언제나 가까운 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위기임을 선언해야만 조직 내 긴장감을 조성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은 기존에 과제해결을 위한 전략수립과 실행을 위한 기본적인 기능들(위 체크리스트의 항목)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기능들이 충분히 잘 작동하고 있는지를 먼저 점검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기능들이 잘 작동한다면 경영리더의 주 6일제를 결정하지 않더라도 구성원들은 자발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들을 스스로 모색하고, 공유할 것이기 때문이겠죠. 전직 삼성전자 임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표를 향해 다 같이 뛰는 조직 문화의 장점도 있지만, 그 전에 회사가 목표와 비전을 직원들과 잘 공유하는 게 먼저여야 하는데 삼성은 그게 부족하다” 많은 조직들과 마찬가지로 삼성 역시 삼성이라는 배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위기만 외치기 보다는 ‘전략’의 해상도를 높이고,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야


당연하게도 단순히 위기라는 것만을 강조해서는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불이야”와 같은 구호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구성원들은 ‘위기’의 본질과 맥락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에너지가 소진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래서 어떻게?’ 입니다. 삼성전자는 2024년 신년사에서 초격차를 위한 기술력 확보와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조직문화를 강조했습니다. 아쉽지만 이 내용에는 ‘희망사항’만 있을 뿐 구체적인 전략이 보이진 않습니다. 조직 내부 구성원들에게 전략에 대한 어떤 커뮤니케이션들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많은 회사들이 위기상황을 커뮤니케이션 할 때 문제에 대한 표피적인 분석과 희망사항을 나열하면서 전략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기를 공식화하고자 한다면 위기만 외치기 보다는 구성원들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기여해야 하는 맥락을 충분히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위기라고 인식하게 된 장애물(bottleneck)이 무엇이었는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명확하고, 구체적이며, 일관된 행동지침이 필요합니다. 전략은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입니다.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일수록 전략의 해상도는 더 높아져야 합니다.


경영리더의 시간을 통제한다는 것은 구성원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로 다가올까?


삼성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결정이 꽤나 부담스러운 결정이었을 수 있습니다. 경영의 트렌드가 ‘지시와 통제’에서 ‘자율과 책임’으로 이미 전환되었는데 이 같은 결정이 자칫 구성원들에게 경직된 조직문화를 상기시키는 장면으로 오랫동안 잔상이 되어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경영리더의 시간을 통제한다는 것은 지식노동자로서 스스로 시간을 관리하는 자율적인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듯 한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흔히 말하는 ‘워라밸’도 워크와 라이프의 기계적인 균형이 본질이 아니라, 밸런스의 주체를 구성원 스스로 갖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성원들의 입장에서는 경영리더 조차 시간에 대한 통제를 받는데 구성원인 내가 자율성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이죠. 블라인드를 잠깐 살펴보더라도 이와 관련된 삼성전자 직원들의 반응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체로 이런 반응들입니다. “임원들만 출근해서 일을 할 수 있겠나, 결국 최소한 부서장급들도 출근을 해야 할 것이고, 다음은 중간관리자라고 봐야 한다”는 반응들입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향후 세대 간 인식의 격차 확대, 채용경쟁력 약화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블라인드> 제목 : 삼성 주6일 실화야?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이 중요해질수록 ‘지시와 통제’의 경영과 과감하게 결별해야


글로벌 인사·컨설팅 조직인 '콘 페리'가 수십 년간 조사한 결과, 조직풍토가 조직성과에 미치는 영향은 30% 수준이며 리더십이 조직풍토에 미치는 영향은 70% 정도라고 밝힌바 있습니다. 여기서 조직풍토는 ‘조직의 분위기’를 말합니다. 조직풍토의 측정 지표로는 명확성, 유연성, 혁신성, 공정성, 리스크 감당, 자율성, 허용, 조직미션에 대한 이해, 일체감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표들이 골고루 높게 나타날수록 각 구성원이 일터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 조직의 조직풍토와 리더십스타일을 조사하고 인터뷰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명확성’(조직 공동의 목적과 각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을 추구한다는 미명하에 ‘지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조직일수록 구성원이 자신의 생각대로 자율적이고 혁신적으로 일할 수 있는 ‘유연성’이 훼손되고,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잃는다는 것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의 기업들이 예전처럼 벤치마크를 통해서 성장하는 패스트팔로워가 아니라 이제는 남들이 안한 것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구성원 개개인이 조직의 성과창출에 효과적으로 기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변화를 위한 트리거를 만들어내려면 어떤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지를 두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더 높은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 업무활동(activity)을 세부적으로 관리하고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더 흔하게 직면하는 것은 명확하지 않은 미션, 과제, 전략과 같은 일의 ‘목적’과 ‘의미’에 대한 부족한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삼성에서 이번에 조치한 경영리더 주 6일제는 ‘관리의 삼성’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이 조치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효과적일지, 그렇지 않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경영은 더 심플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넷플릭스는 ‘구성원을 어른으로 대하라’고 말하면서 휴가에 대한 규정을 없앴고, 테슬라의 직원용 핸드북(‘Anti-handbook Handbook’)은 고작 4페이지에 불과합니다. 쉬운 대안은 멀리갈 수 없고, 좋은 대안은 지금 당장 결과를 얻지 못한다 해도 그 과정에서 꽤 멀리 혹은 다른 차원으로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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