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영화를 보고 함께 글을 쓴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한 편의 영화'를 보고, 각자의 '빛이 닿는 각도에 따라' 보이는 모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들의 네 번째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1998)는 어떤 모양의 달들이 빛나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저도 조심스럽게 제가 본 달의 모양에 대해 말해 볼게요. 가을날 저녁 모닥불을 앞에 두고, 영화 속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요.
이번 영화는 놀라웠어요.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이렇게 따듯하게 풀어낼 수 있다니. 생이 끝나고 사후세계로 가는 길목이 영화의 배경이에요. 영화에는 표현되지 않지만, 삶과 죽음의 다리와 같은 이 세계를 '림보'라고 부른다고 해요. 사람들은 림보에서 7일간 머무르면서 사후 세계로 가져갈 단 하나의 추억을 고르고, 림보에서 일하는 이들은 그 추억을 듣고 재현해주게 되지요.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하루하루 지나가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인생에서 가져가게 될 단 하나의 기억을 회상하게 돼요. 전차맨 앞에 앉아 열린 운전석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은 기억, 전쟁이 끝난 후 행방불명된 연인과 다리 위에서 우연히 만났던 기억, 좋아하는 그 애의 가방에 달린 방울 소리를 듣는 순간 등등 언 듯 사소한 것 같지만 소중한 찰나를 듣는 일은 영화를 보는 내내 좋았어요.
모치즈키,사오리, 가와시마 등 림보에서 일하며 사람들의 추억을 들어주는 이들의 다정한 모습도 인상 깊었어요. 이야기를 잘 꺼낼 수 있게 무릎을 꿇고 같은 높이에서 눈을 맞추기도 하고, 추억을 찾는데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거든요. 그 순간 친밀하고, 부드러워지는 공기를 스크린 밖에서도 느낄 수 있었어요. 그중 가와시마의 이야기는 오래 마음에 남아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할머니 곁에 가서 그는 물어요. "벚꽃 좋아하세요?" 그리고는 "저도 벚꽃을 아주 좋아해요."라고 말하며 가슴에 품고 다니는 사진을 꺼내요.가와시마가 어린 딸 사쿠라코를 보며 미소 짓는 사진이에요. 4월에 태어난 예쁜 아이, 3살에 아버지를 떠나보낸 아이 사쿠라코.
영화 <원더풀 라이프>(1998) 중에서
사진을 보며 그는 다시 말해요. "여기 온 지 3년이 됐으니까 지금 6살이겠네요. 할머니가 키우고 있는데 걱정돼 죽겠어요. 추석 때 말고는 보러 갈 수 없거든요. 스무 살 성인식까지는 지켜보려고요. 앞으로 14년 남았네요. 그때까진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려고요. 그래서 여기에 있는 거예요. 내가 죽었을 때 3살이었는데..." 그는 단 하나의 기억을 선택하지 못했어요. 그러면 떠나야 하고, 떠나면 더 이상 딸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봐 줄 수 없거든요.
영화의 중반쯤에 나오는 이야기예요. 이 장면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어떤 추억을 가져갈까 고민하면서, 아이들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되짚었어요. 콩알만 한심장 소리를 듣던 날, 품에 처음 안았던 날, 바닷가 여행에서 방파제를 등지고 엄마를 부르며 달려오는 아이들의 모습까지 떠올려봤어요.그런데 가와시마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알았어요. 저 또한 한 가지 기억만을 안고, 떠나지 못할 거라는 것을요. 가와시마처럼 다른 이들의 추억을 재현하는 일을 도우며, 매년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봐 주게 되겠지요. 그게 엄마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거니까.
오늘 밤도 달이 참 예쁘네요. 빛의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달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볼게요. 실은 영화 속에 나온 대사였어요. 수수께끼 같은 대사를 저만의 방식으로 풀어봤어요. 눈치채셨겠지만, 이 영화에서 저의 빛은 가와시마에게 닿았던 것 같아요. 몇 년이 흘러 다시 영화를 보게 된다면 또 다른 모양의 달을 보게 되겠죠? 당신은 어떤 모양의 달을 보셨나요? 이제 들려주세요.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눈 맞출 준비가 다 되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