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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수 Apr 20. 2021

어느 날 갑자기, 온라인 괴롭힘 사건의 피해자가 됐다

고소 과정이 어렵다는 것, 저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2월 온라인 괴롭힘 사건의 피해자가 됐고, 지난주 고소장을 넣었다. 수사 진행이 어찌 될는지 알 수 없으나, 우선 할 수 있는 건 해보자는 차원에서...


내게 벌어진 사건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어느 유명 작가가 자신의 글을 구독 신청한 독자들에게 메일로 전송하는 '메일링 서비스' 진행했다. 지난 2020 12 해당 작가가 전송한 메일에는 '친족 성폭력 가해자' 트위터 아이디를 알파벳 단위로 쪼개어 문단마다 넣어놓았다고 한다. 여성 피해자에게 연대하는  목적이었다는데. 문제는,  알파벳들을 모두 조합하면 나의 트위터 아이디가 나왔다는 것이다. 내게는 여성 친족이 없다.


2020년 12월 15일경 나의 트위터 계정에 "너 친족 성폭력 가해자라던데 진짜냐"라고 묻거나, 욕설과 조롱 등을 담아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내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타임라인에서 나를 두고 '친족 성폭력 가해자'라고 말하며 모욕하는 글을 작성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검색하다 보니 이런 글들이 작성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새벽까지 잠을 못 자고 검색을 통해 사건의 발단을 찾아가다 보니, 어느 작가가 발송한 메일이 근원지였다는 게 드러났다.


다행히 반려인이 해당 작가의 연락처를 알고 있었기에, 반려인을 대리인 삼아 그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1번의 통화만으로 작가의 착오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게 밝혀졌다. 실제 가해자의 트위터 닉네임, 프로필 사진과 나의 트위터 닉네임, 프로필 사진이 '비슷'했다나?


작가는 곧 사과문과 사실 정정의 내용을 담아 독자들에게 다시 메일을 발송했고, 트위터에도 사과문이 게재됐다. 나와 같은 사례가 다시 나오지 않게끔 '교차검증 강화'와 '재발 방지'를 약속해달라고 했지만, 이 부분에 대한 반응은 다소 아쉬웠는데... (어쩌다 '실수'가 벌어졌을 뿐 고의적인 잘못이 아니라는 식의 변명이 돌아왔다) 모욕적 게시글들을 접한 후 심리적 피로감이 커서 어지간하면 상황을 더 끌지 않고 끝내고 싶었다.


그런데, 작가의 사과문 이후에도 계속 나와 반려인, 나를 도와준 지인들까지 조롱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허위사실이 정정됐지만 태도를 바꾸지 않은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여성 피해자에 연대하는 여성 작가의 발목을 잡으려고 한다'며 작가를 두둔하면서 나를 향한 모욕 게시글을 더 작성했다.


증거를 pdf 파일로 확보하려고 보던 중, 나를 조롱하던 가해자들 일부가 며칠 몇 주 뒤에 대상만 바꿔서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 기혼 여성, 장애인을 조롱하는 걸 목격하기도 했다. 나에게 누적되는 피해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을 향한 혐오발언도 막고 싶었다.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고소를 결심하게 됐다.


괴로운 일이었지만, 배운 점도 있다. 이번 사건은 내게 상처만 남긴 것이 아니라, '성범죄 가해자로 지목됐을 때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를 하지 않으며 나를 방어하기'에 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나를 잘못 지목한 작가의 행동을 비판하면서도, 실존하는 친족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언급은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사건 자체를 의심하거나 피해자의 의도를 추궁하지 않으면서 나의 무고함을 밝히려고 했다.


물론 애초에 내가 실제 가해자가 아니기에, 그리고 나와 실제 가해자의 연령대 등 신상이 꽤 달랐기에 가능했던 일일 수도 있다. 다만 '내가 가해자로 지목될지 모른다'는 공포를 거론하며 성범죄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제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길은 있고, 그 길로 가려고 노력해야 한다'라고.


내가 서울서부지검에 지난주 보낸 '사이버 모욕죄' 고소장은 며칠 내에 접수됐고, 담당 검사가 배정됐으며, 현재 관할 경찰서로 이송됐다. 수사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부터는 그러려니 하면서 지내야겠다. 재판까지 치러본 경험을 돌아보자면, 사건이 내 일상을 갉아먹기 시작하면 너무 피곤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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