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부고 기사는 인생여행자 정연님의 유언에 따라 평어의 서간문으로 쓰였음을 미리 밝힙니다.
정연, 이렇게 너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불러보는 마지막 편지가 될 거라는 생각에 한 글자 한 글자 쓰기가 어렵네. 네가 나에게 부고 기사를 부탁했을 때 사실 좀 망설였어. 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쓰기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무엇보다 평생 널 사랑해 왔기 때문에 혹여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진 이야기를 쓰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어. 그럼에도 이 부고 기사를 쓰기로 마음먹은 건, 정연 (바로 내가) 이 글을 가장 잘 쓸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야.
만 팔십오 년의 인생여행을 마치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기 직전에 네 얼굴을 생생하게 기억해. 얼굴 한가득 웃음을 머금고 있었지. 뭐가 그리 좋을까, 행복할까 묻고 싶을 정도였다니까. 이 세상을 떠나면서 크게 아쉬운 것 없이 잘 살았다 싶고, 내세를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미루어 짐작할 뿐이야. 그 얼굴이 지금도 눈앞에 선해.
네 나이 서른일곱에, 장인어른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하늘나라로 떠난 사건을 마주하면서 네 인생이 크게 바뀌었다고 했었지. 황망한 마음으로 애도 기간을 보내면서, 그의 죽음의 문제가 나의 죽음의 문제로 바뀌고, 그건 다시 ‘어떤 삶을 살아갈까?’라는 질문으로 치환되면서 삶의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이야기, 네 목소리와 함께 깊게 마음에 남아있어.
그 이후로, ‘What Do I Want?'에 응답하면서 살아왔다고 했지. 오랜 시간 타자의 시선과 기대에 부합하고자 살았다면,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너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았다고 힘주어했던 말이 생각나.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십 년 동안 HR Professional이 되겠다고 회사와 일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았는데, 일보다도 더 중요한 가족, 친구와의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잖아. 그리고, 일 외에도 글쓰기와 강연, 요가와 명상, 코칭과 카운슬링과 같은 삶의 또 다른 기둥들을 세워나가면서 더 튼튼하고 건강하게 살아나갈 수 있었다고 했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성서의 이 문장을 마음속 깊이 품고 살게 되었다고 했었는데, 네 삶을 되돌아보면 그 ‘사랑의 실천’의 삶이었던 것 같아. 커리어를 시작하고 20년 동안 인사, 인재개발, 조직문화 업무를 하면서 쌓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자에게 경영철학을 글과 말을 통해서 조언하기도 하고, 후배 HR 담당자들을 코칭하기도 하면서, 함께 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노력했던 그 시간이 곧 사랑의 실천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돼. 거기에 더해, 누구든지 어려움에 처해 고민하고 있을 때 귀를 쫑긋 세우고 잘 들어주고 나긋나긋한 신뢰 가는 목소리로 이야기 나눴던 그 모든 시간 역시 사랑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감히 말해본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만난 아내와 아이에 대해서도, 각자의 자기다움을 인정해 주고 경계를 건강하게 세워나가면서도, 가족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맨발로 달려 나가서 도와주는 네 자세와 노력에 아내와 아이 모두 고마워하고 있어. 네가 가장 힘들고 외로울 때 두 팔 벌려 안아준 가족에게 네가 고마워하는 것처럼 말이야.
2024년에 네 앞으로의 삶을 회고의 기법으로 되돌아보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못해봤다고 아쉬워할 게 있다면 바로 지금 시작하자.’라는 마음에 다짐으로 시작했던 일들도 한번 되짚어보며 꺼내본다. 물 가까이 가지 말라고 늘 말씀하시던 할머니 덕분에(?) 수영은 네 평생 과제였는데, 사십 대 중반에 다시 도전해서 결국 ‘물개 중년’이 되기도 했고. 가방끈에 대해 크게 아쉬워하지 않다가 네가 하고 싶어 하는 코칭과 진로심리 영역에 들어가기 위한 ‘입장권’이란 생각이 들어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결국 학위까지 받았지. 전문성을 바탕으로, 조직에 있을 때나 조직을 떠나서도 다른 전문가들과 연대하며 창조적인 일을 해왔던 네가 자랑스러워. 네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며 주저할 때,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길 잘했다 싶지?
아내의 조언도 잊지 않고, 부동산 투자와 노후 재무계획도 잘 세워놓고 노력해 온 덕분에, 노후에도 조금이나마 베풀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걸 네가 참 감사했다는 게 떠올라. ‘손주가 놀러 왔을 때 큰 부담 없이 용돈을 쥐어쥘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갖자!’라는 게 소박한 목표가 아니라는 걸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꼈잖아. 그걸 해낸 네가 대견해.
에세이집도 세 권 출간하고, 단편소설집이랑 시집도 내고, 동화책까지 냈을 때 네 주위 사람들이 다들 놀랐지. 언제 시간을 내서 책을 그렇게 썼냐고,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게 됐냐고 말이야. 그때 넌 “그냥 제 안에 있는 이야기들을 길어 올렸을 뿐이에요.”라고 엷게 웃으며 답했지. 코칭과 진로심리 분야로 출간한 전문서적도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는 네 고백도 생각나.
요가, 수영 그리고 피트니스까지, 두루 꾸준하게 운동해 온 덕분에 이 세상 여행을 마칠 때 많이 고생하지 않고 방긋 웃으며 'Say Goodbye' 할 수 있었지 않나 싶어. 이 생을 마무리할 때 의식 없이 몽롱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떠나는 게 싫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해왔잖아. 지난 사십 년 동안 꾸준하게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가꿔온 네가 자랑스러워.
생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인생여행의 변곡점에서 만난 친구들, 특히 평어를 쓰면서 더 깊고 더 넓게 서로 알아갈 수 있었던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씩 하나씩 떠올랐다고 했지.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면서 말이야. 이 친구들 이름을 하나씩 불러본다.
마지막으로 이 편지글의 제목을 뭐라고 붙일까 깊이 생각해 봤어. 고민 끝에 붙인 제목은 이거야.
‘감사함(Gratitude)을 깨우치고 사랑(Love)을 실천하며 살아온 사람’, 인생여행자 정연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