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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Oct 11. 2021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기’

아름다운 보통의 날들




나는 그럴 때가 참 즐겁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는 데 에너지를 쓸 때가.

세상사에서 좋은 점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결국 본인의 환경을 더 나은 것으로 여기게끔 한다. 좋은 환경 속에 나를 놓아두면 나는 거기서 에너지를 얻어 좋은 것을 더 많이 발견하고 칭찬하게 되므로 선순환이 일어난다. 내가 다니는 길가에 꽃씨를 뿌리고 비료를 주는 것과 같다. 그건 결국 나를 위한 일이 아닐까? ​

김하나, <말하기를 말하기> (문학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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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말하기를 말하다>(문학동네, 2020)의 소주제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기’에서 김하나 작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브랜드나 제품뿐만 아니라 책이나 사람에게서도 재미있고 좋은 점을 찾아내는 능력이 카피라이터로서도 팟캐스트 진행자로서도 재미있게 오래 일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했다. 하나의 현상은 해석하고 바라보기에 따라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 연장선 상에서, 이 책은 나에게 덧붙이는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들었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기’라는 문장이 내 마음의 어떤 톱니바퀴에 턱 하고 맞물리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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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책이나 사람에게서나 비판 거리보다는 좋은 점을 발견하려는 성향의 사람이다. 그런데 칭찬거리를 찾아내는 것과 무언가를 드러내어 좋아하고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다른 영역에 속했다. 나는 어떤 것에 너무 깊이 빠지거나 하나에만  빠져 열성적으로 좋아하게 되는 마음을 경계하며 살아온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무엇 때문에 주저했을까. 대상을   알아야만 사랑할  있는 것은 아닌데. 좋아하는 마음이 식었다고 뭐라  사람도 없는데. 실망할 일이   많이 생길 수는 있겠지만, 그뿐인데... 마음을 아껴둔다고 모아두었다가 한꺼번에 퍼줄  있는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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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각자의 연예인을 마음속에 품고 살던 고등학교 시절, 서태지(‘태지오빠 불리던) 좋아한 친구가 있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에도 ‘서태지와 아이들 (사진을 올림픽 공원에다가 그저 전시할 뿐인) 사진전까지 쫓아다녔고, (서태지도 본인도 아니고) 팬클럽 회장이 남기는 음성사서함을 꼬박꼬박 확인하고 녹음해두기까지하는 열성을 보였. 나에게  시절 가장 좋아했던 누군가를 꼽아보라면, 아마도 농구선수 이상민 정도인  같다. 그렇다고 농구장을 쫓아다닐 만큼 좋아한 것도 아니었다. 하나를 좋아하면 다른 수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후회하고 실망하는 일이 두려웠을까, 단순히 성향의 문제인 걸까. 답은 모르겠지만 (그게  의지가 개입한 결과라면) 마음을 아껴 사랑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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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갑자기 어느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의 팬이 되어 ‘덕질의 세계에 입문하시더니 이를 계기로 새로운 직업의 기회까지 붙잡은 나의 은사님과, 북토크에 다녀오더니 그중  소설가에게 반했음을 선언하며  작가의 모든 (나아가  작가가 좋아하는 작품들) 섭렵하기 시작한 나의 친구에게 나는 무엇보다 부러운 마음을 느낀다.  순수하고 애정 어린 마음과,  빠질  있는 열정과,  마음이 생활에 불어넣는 활력,  모두가 부러웠다. 진짜 좋아하는 마음은 그 자체로 멈추지 않는다. 좋아서 무언가를 계속 파고들다 보면 문득 낯선 다른 지형 속에 도착했음을 알게 되고, 이것은  누군가의 관심, 그들의 역사, 그들의 스토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다가  많은 아티스트, 몰랐던 문학작품 속으로 내 세계가 넓어지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삶을 확장해나가는 (연애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방식이 아닐까. 좋아하는 마음은 그렇게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이끄는 매혹적인 문이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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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은 한 시절이 지나면 슬며시 사그라들기도 한다. 그건 내가 염려했던 것처럼 슬픈 일도 아니고 무언가를 부질없게 만드는 일도 아니다. 그저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마음은 변하고 시절은 지나가지만, 좋아했던 마음은 단순히 좋아하는 마음으로 끝이 아니다. 더 성심을 다해 좋아하고 마음을 줄수록 우리는 알 수 없는 어딘가로 이끌려가고 뜻하지 않게 낯선 무언가와 연결되며 새로운 문 앞에 선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사랑으로 하는 일에는 실패가 없다.’ 최근 무루 작가님이 라디오에서 하신 말씀도 이곳으로 연결되었다. 진심으로 사랑해서 했던 일은 후회가 있을 수 없다. 모든 기쁨은 사랑하는 동안의 과정 속에 있었으므로 기대하는 결과 같은 게 따로 있을 리 없고, 사랑한 만큼 우리는 이미 전과 다르게, 넓어져 있을 테니 말이다. 진실로 사랑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세상에 많지 않다는 걸 안다. 헤어짐에 있어서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사랑한 대상이라야 기쁘고 홀가분하게, 그리고 애틋하게 헤어질 수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어떤 한 시절을 내가 좋아했던 누군가 혹은 무언가로 기억하는 일, 그만한 낭만도 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아무런 두려움도 거리낌도 없이 좀 더 의외의 것들을 깊이 좋아하고, 좋아한다고 더 많이 말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것이 ‘덕질’이든 ‘삽질’이든, 또 다른 이름은 분명 ‘즐거움’이고 무언가와의 ‘연결’ 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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