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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Sep 01. 2022

똥고집을 사랑하기

어린이의 세계 | 떼쓰는 어린이의 진짜 속마음


#1



그런 날이 있다. 어린이가 유난히 떼를 쓰는 날이.


태권도장 앞에서 오빠를 기다리는데, 승아는 매우 장난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의자 위에 길게 누워서 엄마한테 기대고 볼을 만지며 장난을 거는 어린이한테 “바르게 앉자”라고 했다가 호되게 원망을 샀다. 내게서 등을 돌리고 앉더니 한참을 삐져 있었다. 처음엔 동그랗게 웅크린 등이 귀여워서 지켜만 보았다. 태권도가 끝날 시간이 되어 아이를 달래려고 안아서 무릎에 앉히고 토닥이며 말을 걸었을 땐 아이의 원망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야단친 게 아니라고 설명하고 달래어도 눈물을 펑펑 쏟았다. 집에 갈 시간이 되었는데, 내 생각엔 이미 한참이나 사과를 했고 한참이나 달래주었는데도, 승아는 도장 앞에 서서 고집을 부리며 꼼짝 않고 서 있었다. 하필이면 도장 안쪽을 바라보면서 (그래야 엄마한테 등을 돌리니까). 엉엉 울면서. 어젯밤 아빠가 비눗방울이 자동으로 나오는 장난감을 사다 주었다. 아이는 집에 돌아가 당장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싶었다. 우리는 오빠를 데리러 가는 중이었고, 폭염경보인 날의 낮 두시였다. 승아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무얼 먼저 할까 즐거운 상상 중이었다. 엄마랑 마트에도 가고 싶고 비눗방울 놀이도 하고 싶고 빵도 사러 가고 싶었다. 그 순간 추임새를 넣은 내가 잘못일까. 지금은 너무 더우니까 비눗방울은 저녁 무렵에 나가서 하는 방법도 있다고 알려줬다가 그만, 어린이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 엄마가 비눗방울 놀이 못하게 했다며. (내가 언제 ㅜㅜ)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걸 그냥 알려준 거뿐이라고, 네가 원하는 걸 선택하면 된다고 고쳐 말해도 아무 소용없었다. 아이는 차에서 울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엄마의 잔소리는 길어지고 아이의 서운함도 깊어지는 것 같다. 나 역시 뭔가 억울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속이 상한다. 이런 일들이 거의 매일 반복되고 있었다. 속상한 마음으로 하교하는 큰 아이를 만났다. 울다 잠든 동생 옆에 앉은 오빠에게 나는 육아상담을 요청했다. 어디 달리 하소연할 데도 없고, 요즘 승아의 억지를 참아내야 한다는 점에서 우린 동지니까. “승아가 요즘 자주 떼쓰고 울고 그러잖아. 오늘도 엄마가 화낸 게 아닌데 화냈다고 엉엉 울다가 잠들었어. 그래서 엄마도 마음이 안 좋은데 어떡하지, 동현아?” 동현이가 잠시 생각하더니, 지난여름 방학 때 할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을 꺼냈다. 서울에서 출발해 삼천포에서 닿자마자 우리는 어머님 아버님을 모시고 남해로 가고 있었다. 그 좁은 차 안에서 두 아이는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 장난을 치다가 티격태격 다퉜다. 동생이 오빠의 백기를 요구했다. 아무리 지기 싫어도 동생이 울어버리면 결국 오빠가 양보하는 것으로 상황은 끝이 났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게 동현이 마음에 억울함을 남길 거 같아서 걱정이 됐다. 동생 몰래 동현이만 따로 불러서 네가 항상 양보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양보 같은 건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아, 그런데 울고 있는 동생한테 양보하지 않아도 된다니, 동현이가 그 말을 엄마의 진심이라고 생각할까, 아이가 내 숨은 뜻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하는 게 정말 옳은 걸까, 싶은 염려가 남고는 했다. 그날 할아버지의 말씀은 이런 거였다. “그만하면 승아도 착하다. 봐줘라. 승아가 나중에 열다섯 살이 되거들랑 그때까지도 말을 안 들으면 동현이 네가 딱 패서라도 고쳐주면 된다.” 나는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아버님 말씀 안에 내가 찾던 답이 들어 있었다. 진짜 때리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건 동현이도 알 수 있었을 거다. 그럼에도 그래도 된다는 말씀은 동현이에게 양보하더라도 억울하지 않게 동생의 고집을 참아줄 수 있는 아량을 넓혀주는 말이 되었다. 동현이가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엄마, 열다섯 살 까지는 그냥 승아 봐주자. 그리고 그때 가서도 그러면 혼을 내줘야지” 하면서 동현이는 웃었다. 고집을 참아주지 못하는 건 나뿐이었구나. 지혜로운 해답을 찾아 두고서도 말이다. 그러고 보면 동현이는 요즘 유난히 동생에게 양보를 잘한다. 승아가 떼를 쓰니 대신 자기가 엄마 말을 두 배로 더 잘 듣겠다 하고. 아고, 우리 동현이가 커버렸어. 동생도 오빠처럼 어느 순간 철이 들겠지. 동현이가 자라는 게 기특하면서도 아쉬운 것처럼, 승아의 고집이 사라지기라도 하는 날엔, 나는 승아의 고집이 그리워서 서운해질 것이 분명하다. #2 그런 밤이 있다. 유난히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승아가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 한 사람씩 문장을 이어 말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승아가 시작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당연히 승아 공주. 배가 아픈 승아와 약을 구하러 가는 아빠, 약이 맛없다며 거부하는 고집불통 승아, 맛있는 약을 만들라 명을 내리는 왕(아빠)... 처음엔 전혀 모를 전개에 흥분되고 설레었건만, 빤히 보이는 곳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더니 결국 꼬마 요리사가 등장했다. 그 순간, 우리 셋은 폭죽처럼 빵 터지고 말았다. 알지 알아. 우리가 함께 읽었던 그 이야기잖아..... 이야기가 슬그머니 다른 책에서 보았던 이야기와 짬뽕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그게 왜 그토록  웃겼을까! 깔깔대던 우리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꼬마 요리사가 식혜 맛이 나는 약을 개발해줘서 승아 공주의 병이 싹 나았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우리가 함께 나눈 시간들 - 함께 읽었던 책들과 고집쟁이 동생을 둔 우리의 고충과 아이들이 너무 그리워하는 할미의 식혜 같은 모든 것 - 이 우리의 문장 속에 다 녹아 있었다. 생의 끝에서 단 한 번의 순간만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어쩌면 난 이 순간을 고르지 않을까 생각했다.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우리가 함께 만든 이야기에는 우리가 들어 있어서 우리 맘에 쏙 들었다.

고집쟁이면 어때. 이렇게 쿵짝이 잘 맞을 때도 있는 걸. 훈육 같은 거 뭐하러 하려 했을까. 아이들과의 관계가 하루 종일 힘들다가도 어떤 한순간 깊은 만족감이 차오르기도 하는 걸. 낮의 고민은 날려버린다. 엄마로서 반복해온 반성과 후회도 함께. 그 순간, 꽁꽁 숨겨뒀던 내 어린 마음이 반짝하고 떠올랐다. 마치 비밀의 열쇠처럼.... 겉으론 철든 아이처럼 굴면서 속으론 엄마에게 어린양 부리고 싶던 내가 보였다. 내가 아무리 떼쓰고 억지 부리고 고집을 피워도 한없이 다 받아주는 엄마. 나는 그런 엄마를 바라고 꿈꿨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나를 잘 키우려고 엄하고 엄격했던 엄마의 모습을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연결 짓지 못했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엄마의 사랑 방식을 깨달은 나처럼 아이들이 나중에서야 내 사랑을 깨닫게 하고 싶지는 않다. 서로가 지금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안에 살고 싶다. 어린이의 마음을 좀 더 깊이 헤아려 보았어야 했다. 내가 목소리의 온도를 1도만 낮춰도 (제대로 훈육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엄마는 승아를 슬프게 하구. 엄마 미워!”를 연발하며 눈물을 뚝뚝 떨구는 아이의 진짜 속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어떤 순간에도 너를 사랑하고 너에게만은 한결같이 다정하고 언제든 너의 편이 되어달라는 것.  그 솔직함에 마음이 놓인다. 갑자기 ‘똥고집’이 막 사랑스러워지려고 한다. ‘버릇(있음)’ 보다 ‘고집’이 살아가는 데에도 더 쓸모 있을 테다. 이제는 네가 억지를 부리며 생떼를 써도 안아달라는 말로, 지금 더 사랑해달라는 말로 들을게. 내일은 고집쟁이 동생 덕에 조금 철이 들어버린 큰 어린이한테도 슬쩍 말해주어야지. 엄마한테는 떼쓰고 화내고 어린양 부려도 괜찮다고. 엄마는 그래도 사랑하니까. 엄마는 떼쟁이 동현이가 더 좋다고. 아이들이 엄마한테 떼쓰지 않게 되는 날엔, 안아주지도 안아달라고도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럼 난 너무 슬플 테지. 아이들이 더 오래오래 떼쟁이로 남아주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3



엄마의 말씀처럼, 똥고집도 다 쓸 데가 있겠지.

떼쟁이들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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