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탑골공원’에 모이는 요즘 젊은이들
유튜브에 실시간으로 스트리밍되는 90년대 음악 방송을 보며 ‘온라인 탑골공원’에 모이는 요즘 젊은이들. 유튜브에서 옛날을 소환하는 것이 아니다. 한옥에서 드립 커피와 스테이크를 즐기고, 동네 슈퍼 같은 가게에서 티라미수를 먹는다. 가상 현실을 넘나들고, 조만간 자동차가 날아다닐지 모르는 판국에 왜 옛날 것들이 소환되는 것인지.
온라인 탑골공원에 모이다
엄정화의 ‘포이즌’이 흘러나오자 유튜브 채팅창에는 ‘((’, ‘))’가 줄줄이 달린다. 다 함께 흥에 겨워 엉덩이를 실룩거리는 모양이다. 엄정화의 무대가 끝나자 S.E.S., 핑클, god 등 원조 아이돌들의 레전드 무대가 이어진다. 채팅창에는 ‘2002년에 고1이었던 사람 손 들어보세요’, ‘군대 가기 전에 들었던 노래였어요.’ 같은 댓글이 달리며 추억을 소환한다. 옛날 가수들에게 ‘탑골 제니’, ‘탑골 선미’ 등의 애칭을 붙여주며 그때 그 시절을 함께 즐기기도 한다. '탑골지디'로 발굴된 양준일은 그 당시보다 더 큰 인기를 끌고있으니 말 다했지.
네티즌들 사이에 ‘온라인 탑골공원’으로 입소문을 탄 ’SBS 인기가요’는 처음 스트리밍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접속자 수가 두 자릿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실시간으로 접속하는 사람만 2만 2,000명을 넘어설 정도로 인기이다. 그때의 추억이 없는 1020 세대들도 몰려온다. 갑자기 SBS 인기 가요가 역주행하자 KBS도 ‘어게인 가요톱10’을 개설했다. 심지어 마지막 방송까지 MC로 활약한 손범수 MC에 김완선, 김원준, 현진영, 박미경 등 옛날 가수가 출연하는 가요톱10 공연을 춘천에서 열기도 했다.
음악뿐 만이 아니다. ○○상회, △△당 같은 옛날식 이름을 사용하는 식당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내부 인테리어, 그릇까지도 옛날 것 일색이다. 심지어 ‘다방’도 유행한다. 1970~1980년대의 촌스럽고 예스러운 분위기를 일부러 재현한다. 추억팔이가 오히려 트렌디한 것이 되었다.
옛날 문화에 요즘 감성 한 스푼, 뉴트로 New+Retro
물론 과거에도 옛날 문화가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레트로 Retro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레트로는 ‘뉴트로 New+Retro’라는 불린다. ‘뉴’가 붙은 이유는 그때의 레트로와는 좀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레트로가 과거의 것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면, 지금의 레트로는 복고에 요즘 감각을 더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낸다. 그래서 뉴트로는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지난날의 향수에 호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선함’, ‘색다름’을 찾는 2030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은 7080년대 문화를 미디어로만 접해봤을 뿐, 직접 보거나 듣거나 사용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를 현실에서 경험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새로움이요, 색다름으로 다가간다. 그들에게는 델몬트 오렌지 주스 병이 옛날 주스 병 중 하나가 아닌 새로운 물병 스타일이다. 비록 엄마, 아빠에게 좋은 물병 다 놔두고 옛날에는 줘도 안 가졌을 저 주스병을 비싼 돈 주고 사서 쓰냐고 핀잔을 들을지언정.
찾아내고 싶은 복고 감성들
그 덕분에 쓸모를 잃고 사라져가던 물건들이 오히려 요즘 핫한 물건이 되었다. 쟁반에 다리를 붙인 것 같은 양철상, 다이얼을 돌리던 브라운관 TV, 로고가 큼직하게 새겨진 우유 냉장고 같은 것들 말이다. 인스타그램에는 #옛날컵 #로고컵 #코리안빈티지 해시태그가 넘쳐난다. 심지어 서주우유, 크라운 등 옛날 상표가 찍힌 80~90년대 로고 컵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을지로, 익선동, 동묘에는 젊은이들이 몰린다. 익선동의 낡고 오래된 한옥 골목에는 1920년대 제과점을 모티브로 한 디저트 카페 ‘동백 양과점’, 옛날 스타일로 돈가스와 함박 스테이크를 내는 ‘경양식 1920’, 한옥의 멋을 살린 프렌치 레스토랑 ‘빠리가옥’ 등 옛날 스타일의 식당과 카페가 곳곳에 자리 잡았다.
을지로는 ‘힙지로’라 불리며 핫플레이스로 부상했다. 좁은 인쇄소 골목에 있는 허름한 건물 속에 낡은 계단을 올라가면 갑자기 와인 바가 등장하고,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에 카페와 빵집이 있다. 지도로 보아도 어디인지 모르는 골목길에 있는 데다가 간판도 제대로 없어 눈앞에 두고 놓치기 일쑤지만 오히려 요즘 사람들은 이러한 불편함을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동묘 구제시장은 TV에서도 여러 차례 등장했을 만큼 뉴트로 패션의 성지라 불리는 곳이다. 그 속에서 중년들과 젊은이들이 뒤섞여 옷 무덤을 뒤적인다. 공장에서 일률적으로 대량생산되는 기성품과는 다른, 하나 밖의 없는 나만의 옷을 찾기 위해서이다. 무지개색의 화려한 하와이안 셔츠, 가수 소방차가 입었을 법한 작업복, 체인이 주렁주렁 달린 카고 팬츠가 반긴다. 그리고 그곳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새로운 패션을 창조해낸다. 실제로 영국의 한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는 동묘 시장의 패션을 보고 영감을 얻어 갔다고 자신의 SNS에 올리기도 했다. ”캐주얼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감한 믹스 매치 정신”이라고 극찬하면서 말이다.
남들과 다름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방법
그렇다. 뉴트로는 그 시대를 직접 겪은 중장년층을 타고 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때를 겪어보지 않은 2030 세대를 통해 퍼진다. 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던 그들이 미래가 아닌 과거에서 유레카를 외쳤다. 그리고 그것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힙'한 감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원색적인 컬러, 튼튼한 한글 서체 등을 사용하면서 말이다. 배달의 민족은 이름만 들어도 뉴트로 감성 물씬 풍기는 ‘을지로체’를 개발해 무료로 배포했다. 작지만 오래된 인쇄소, 음식점, 술집의 한글 간판들을 모티프로 삼아 제작했다. 뉴트로 정의대로 옛 것에 요즘 감성을 한 스푼 담아 새로운 것을 세련되게 창조해낸 것이다. 이를 보는 사람들은 그 모자람이 주는 충족감, 불완전함에 오히려 매력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2030 세대는 이를 SNS에 자랑한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이들에게는 오히려 아날로그가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라 그 흔한 디지털 경험 속에 아날로그 경험이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 자개장으로 장식된 카페를 가서 자개장 무늬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거나, 한옥으로 된 레스토랑에서 학교 앞 분식점에서나 봤던 초록색 점박이 플라스틱 접시에 음식을 담아줄 때마다 사진을 찍어 SNS에 공유한다. 그리고 자신이 좋은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음을 자랑한다. 그들에게 아날로그 제품은 디지털 시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특별함이다.
그리고 옛것이 주는 따뜻함
디지털 시대를 사는 지금 세대들은 아날로그 감성에서 지금은 느끼기 어려운 따뜻함을 느낀다. 그래서 새것, 화려하고 튀는 것, 비싸고 고급스러운 것이 아닌 낡고 흠집 난 것, 손때 묻은 것을 일부러 더 찾는다. 클릭만 해도 음악이 흘러나오는 시대에 진짜 음악을 듣기 위해 LP판을 맞추고, 당장 확인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필름 카메라에 세상을 담는다. 너무 딱 떨어지는 것보다 좀 모자라도, 좀 기다려야 해도 그것이 주는 여유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담은 여유를 통해 정신적 위로를 얻는다. 현대사회가 등한시하고는 인간미에 대한 갈증을 아날로그 감성으로 채우는 것이다.
참고문헌
김난도 외. 트렌드 코리아 2019. 미래의 창.
미디어오늘. X세대 감성 저격! 유튜브에 등장한 ‘온라인 탑골공원’. 2019. 09. 08.
서울신문. “탑골 제니” 열광하는 3040… 동접자 2만 돌파 ‘온라인 탑골공원’. 2019. 08. 30.
매일경제. 뉴트로 서체-을지로체의 탄생. 2019. 10. 17.
우체국과 사람들. 퀸의 부활, 세대를 초월하는 콘텐츠의 등장. 2019. 01
방위사업청 사보 '청아람 98호'에 실린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