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잉절미 8월 2주차
한동안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우리는 모두가 골고루 이야기할 수 있도록 다양한 룰을 마련하는 중에 있다. 그러던 중 이번 모임은 간만에 셋이서 하게 되었다. 3은 의미있는 숫자다. 한 명이선 대화를 할 수 없고, 두 명이선 개인적인 만남이 되지만, 세 명부터 공동체가 된다. 물론 많은 사람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책을 읽으며 하고팠던 말을 정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또 그동안 온전히 나누지 못한 삶의 다양한 고민까지 나눌 수 있어 좋았다 - 세상에서 가장 작은 공동체 안에서!
나는 이번에 채사장의 <열한계단>을 가져갔다. (참고로, 네번째 계단을 읽고 있는 중.) 잉절미에서 JB와 Zinc가 너무 좋았던 책이라고 이야기해서, 나도 그 날로 이 책을 사 초반부를 후루룩 읽었더랬다. 그런데 나는 처음에 좀 실망스러웠다. 내가 이 책 전에 읽던 책이 기독교 변증서였는데, 그 책은 챕터별로 하나의 명제를 선언하고 증명하는 식으로 주장을 쌓아가는데, 그 깊이가 꽤 만족스러웠다(온전히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오랜만에 수학의 증명과 비슷한 글을 읽으니 재밌었고(나는 대학교에서 수리과학을 전공하였다). 이런 논증뿜뿜 글을 읽고 있던 내게 열한 계단의 논리적 전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징검다리를 차근 차근 걷다가, 몇 개 돌이 분명 빠져있는데 이미 그 다음 징검다리로 건너간 듯한(어떻게 간 거야?!)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채사장이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고, 자기 생각과 인생의 여정을 정리하기 위해 썼기 때문에, 탄탄한 논리 전개를 기대한 내게 실망스러웠던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내게도 이 책은 좋은 책이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여러가지 생각을 빼곡히 적어둔 책이라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자꾸 생각해보게 하기 때문이다(한가지 주제만을 이야기하는 자기계발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기쁨이다!). 특히, 채사장이 기독교와 불교를 동시에 수용하겠다는 점이 신선했다. 그는 기독교에서 신으로부터의 구원의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안도했지만, 그 길은 인간 스스로 개척하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아쉬워했다. 그러다 불교를 통해 인간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며 자신은 이 두 길을 다 인정하겠다고 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불교의 가르침은 기독교와는 공존할 수 없는 개념이다. 기독교인인 나는 그래서 한번도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처음으로 생각해보았다. 나는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에 이르는 길은 없다고 믿지만, 만약 그 길이 있다고 해도, 신과 함께 하는 길을 택할 것인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에 대한 질문이라 쉽게 답할 수 없었다. 한 일주일동안을 마음 한구석에 이 물음을 품고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결론은 이것이다: 비록 인간 스스로 구원에 이르는 길이 더 진취적인 느낌이라 멋져 보이지만, 나는 그래도 하나님과 함께 걷는 길을 택하겠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길은 하나님과 또 그를 믿는 사람들과 교제하며 걷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에겐 홀로 걷는 길보다, 서로 사랑하며 걷는 길이 훨씬 행복하기 때문이다. 나는 셋 이상이 좋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는 식상하지만. 독서모임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남 이야기도 들어야 하는 곳' 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문자로 모임의 감상을 적고 있자면, 서로의 이야기를 듣곤 하는 분위기를 살리기가 쉽지 않아서 항상 불만이다. 쓸만한 글이 안되니 만족스럽지 않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누군가 쓴다면 나도 쓸 생각이다. 뭣이라도 하는 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좋을 테니...
열한계단을 읽은 소피의 감상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에 대한 관심이 종교적인 접근으로 보인다. 그래서 다른 측면에서는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기독교인에게는 종교적인 관점의 독서가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겠으나 (혹은 다른 방식의 읽기가 큰 의미를 가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책에 따라 관점을 달리 하는 것도 독서의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는 채사장은 그리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다. '기독교 혹은 불교' 파트는 열한 계단의 작은 단계의 불과하다. 팟캐스트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사자의 서' 니 '크리슈나무르티' 니 하는 주제들에 대해 말하니 종교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 눈에 채사장은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다.'구원'과 '삶의 의미'는 다르다.
내가 읽은 책은 '전복과 반전의 순간'이라는 음악평론가 강헌의 대중음악사 책이다. 찾아보니 꽤 유명한 분인 것 같으나 알고서 고른 것은 아니고, 알라딘을 서핑하다 호평만 그득한 것을 보고 어디 한번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과연 평이 좋을만하다. 역사책이라는 것이 자칫 지루하기 쉬운데 하나의 관점으로 사건과 사건을 엮어 나가며 마치 겪은 일인 양 눈에 보이도록 이야기한다.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것도 아니고 문장이 아름답거나 재미를 위해 지어낸 허구도 아닌데, 과연'꾼'이라고 할 만하다. 조금 걸리는 점이 있다면 어딘가 모르게 아재의 느낌이 나는 점이지만, 선명한 관점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한다. 오히려 아재의 향기가 책의 재미를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자신 있게 추천할만한 책이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내가 듣는 이 음악'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마 즐거운 한 주를 보낼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