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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마사띠 Oct 22. 2019

다시 집으로

리시케시에서의 한 달을 마치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깍두기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리시케시에서 델리까지, 최소 6-7시간 차를 타야하는 여정이 만만치 않게 느껴져서 단단히 마음을 무장하고.


10시. 택시기사가 오기로 한 시간이어서 서둘러 아침을 먹고 체크아웃을 했다. 마무리를 하고 있는데 프런트에서 전화가 왔다. 밝은 목소리의 택시기사였다.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리시케시에서 델리까지는 택시비가 보통 5-6천 루피정도 드는데, SH씨네 가족과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기사분을 소개받아 4천 루피에 저렴하게 갈 수 있었다.


택시에 짐을 싣고 자 이제 델리로 출발!

간밤에 잠을 잘 잔 깍두기는 계속 쫑알쫑알 즐거워했다. 한시간이 채 못되서 택시기사는 은행 들릴 일이 있다며 잠시 차를 세웠다. 내려서 그를 기다리며 바깥공기를 좀 쐬었다.


자 집에가자~~
택시기사 기다리며 나무아래서 햇빛쬐기. 까매진 우리.

두어시간 달렸을까 점심을 먹고 가자며 휴게소같은 곳에 차를 세우는 그였다. 살짝 멀미 기운이

있었던 깍두기를 데리고 화장실도 가고 선물가게도 구경하고 기분 좋아지라고 아이스크림도 사줬다.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갈길이 멀기에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서 쟁였다. 우리나라와 사뭇 다른 서브웨이 메뉴 중에서 가장 입맛에 맞을만한 걸로 골랐다.


네 시간, 다섯 시간, 델리에 가까워질수록 교통체증이 심했다. 간밤에 숙면이 문제였을까, 휴게소에서 먹은 아이스크림이 문제였을까 차에서 잠들지 못하는 깍두기가 멀미를 하기 시작했다. 무릎에 앉히고 창문을 열고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그녀가 멀미를 잊을 수 있도록 도왔다. 두시간 남았는데 십분 남았다고 거짓부렁을 열 번 정도 해가면서 7시간만에 델리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아....


공항에 내리자 깍두기의 컨디션은 살아났으나 나는

푹절은 파김치 상태였다. 비행기가 대한항공이라는 사실이 구세주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낮에 휴게소에서 사두었던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이고 남은 돈을 탈탈 털어 면세점 쇼핑을 했다. 깍두기는 선물 고르기에 눈이 멀어 멀미했다는 사실을 싹 잊은 듯했다.


서브웨이 샌드위치로 애매한 끼니해결
대한항공 타니 벌써 집에온 기분! 집으로 가자~~~~
만화볼 생각에 신이난 깍두기

이번에는 깍두기 대신 내가 멀미를 했다. 비행기 멀미에 괴로워서 소화제와 타이레놀을 차례로 먹었다. 저녁으로 나온 대한항공 비빔밥 냄새조차 견디기 어려웠지만 깍두기에게 간신히 먹이고 잠을 청했다.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잦아든 멀미. 옆에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만화보고 게임하는 깍두기가 있었다. 역시나 강적이다.


한참을 더 놀다가 누워서 자자하니 순순히 눕는 그녀. 꽤나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금새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리고서는 착륙까지 쭈욱 내리 잤다는....효녀깍둑.

돌아오는 비행 시간이 갈 때보다 한 시간 반정도 빨라서 비행 자체가 그리 길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뻗으신 분
쿨쿨잔다
집으로 ^^
인천공항! 아빠의 꽃다발 선물에 행복한 깍두기

엘사옷 입고 화려하게 귀국하신 분. ㅎㅎ

사실 신나게 입고 버리려고 들고간 옷이었는데 엄마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리시케시에서의 일년을 계획하고 돌아왔는데, 그건 나의 계획이고 바램일뿐, 깍두기가 정말 원하는 것은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진심은 보통 잠들기 전 비몽사몽 대화시간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직은 새로운 도전과 경험보다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안정적인 하루하루가 더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깍두기는 다시 유치원에 등원했고

나와 늘 비슷한 오후 일과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친구를 초대하거나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저녁밥 만드는 것을 돕는다.

인도 다시 갈까? 물으면 “엄마 인도는 똥이 너무 많아서 싫어.”라고 대답하며 꺄르르 웃곤 한다. 똥은 아직 그녀에게 너무나 웃기는 것이어서 그런 똥이 지천에 넘쳐났던 인도는 깍두기에게 생각만해도 웃기는 나라로 남은 것 같다.


우리 새로운 곳에 가볼까? 물으면 한참을 생각하다가 “엄마 내가 인도도 갔던거 잊었어?”라고 되물으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내가 깍두기를 키우지만 깍두기 역시 나를 키우는 것 같다. 한달간의 여행 끝에 부쩍 마음이 자란 아이의 모습을 본다. 나는 영의 기운이 충만하다는 갠지스가 흐르던 그 땅에서 내 밑바닥과 자주 만났고 너무 이상적인 엄마는 본의아니게 그만두게 되었다.


인도를 다녀온 후 나의 하루도 같다. 요가를 하고 밥을 지어먹고 아이의 등하원을 함께한다. 끝난 여행은 일상에 다른 의미를 가져다준다. 같지만 다르다는 것. 스스로에게 남몰래 씨익한번 웃어주는 기분으로.


유치원에서 한달만에 만난 친구들
버스타고 하원길
한달동안 헤어졌던 장난감들이여
작은할아버지표 환영인사
장난꾸러기 깍두기와 가끔은 더 장난꾸러기이신 작은할아버지 ㅋㅋ
그림 스승님의 손으로 다시 태어난 깍두기 in 인도

그리고 요즘 집에서 자주 목격하는 모습은 바로 이것!


세상 진지


 

그녀는 놀이를 하다가 뜬금없이 만트라를 부르기도 하고 한달 내내 보아온 요가 아사나 동작이나 명상 자세를 제법 멋지게 흉내 내곤 한다. 요가 조기교육인가 싶어서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여섯살 깍두기와 함께한 인도여행은 끝났지만 우리의 여행은 어떤 식으로든 계속되고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삶은 풀어야 할 숙제라기보다 음미해야 할 신비라는 것. 떠나거나 머물거나 어느 쪽이든 신비로운 여행일 수 있다는 것. 함께여서 더 풍요로운 시간들이 지나고 있으며 우리는 매 순간을 만끽해야 할 축복 속에 있다는 것.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강과

변하지 않는 모든 것들 앞에

두 손 모아.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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