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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마사띠 Nov 18. 2020

양평 꽃순이네집

2020년 11월 13일-14일

오랜만에 끄적여본다. 언제부터였을까 내 안으로 파고드는 시간들. 그래야만 했고 그러고 싶었다. 자연스레 남은 줄었고 침묵의 시간은 늘어났다. 침묵의 시간이 어느정도 차오르자  말 너머의 말들이 들려왔다. 누군가의 글 안에 다 담기지 못한 이야기들이 듣고싶어졌고, 사진 희미하게 비치는 찍은 이의 시선, 그 눈과 마주보고 싶어졌다.  오래 슬펐던 것 같다. 허나 슬픔의 끝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내 속내를 누군가 훤히 보고있는 것만 같아서 선뜻 말할 수 없었다. 말을 꺼내어놓는데에 시간이 걸리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내 안에 굳건히 자리를 틀고앉은 허세와 오만은  너 지금 무얼하느냐고 매섭게 질책하곤 했다. 안으로 파고드는 시간이었다. 아팠고 어두웠고 아주 가끔씩 찬란해지곤 했다. 자주 울고 종종 웃었다. 양쪽 다 괜찮아지기까지 꽤 많은 날들이 필요했다.


기록이란 것은 남기는데에 의미가 있다는 걸 페이스북이 알려줬다. 지난 기록들을 허락도 없이 보여주는데 난데없이 심장폭격을 당하기 일쑤였다. 반갑고 말캉한 기억들. 쓰지 않았다면 사라졌을 것들.


양평을 다녀왔다. 아니 따라갔다왔다.

그것도 우르르르 다녀왔다.

여행 후 각자의 맘 속에 남는 풍경이 얼마나 같고 또 다른지를 이번에도 페이스북이 알려줬다. 같이 다녀온 친구들(남녀노소촌수 따지지말고 일단 친구라 하자)의 기록을 흐믓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사실 내 마음에 각인된 장면들을 나열해 보고싶어져서 이 글을 쓰고싶었다. 


양평.

들꽃같은 그녀와 그녀의 딸이 사는 집.

부엌의 전기포트는 아이들이 마실 보리차를 내내 끓여대느라 바빴는데 너무 일이 고됐는지 고장이 나버리고 말았다. 58년 개띠이신 나의 삼촌은 바닥에 철푸덕 앉아 연장을 들고 고칠태세를 하셨다. 이에 관심있는 꼬마사람이 한명 있었는데 꽃순이 윤주였다.

기계라면 질색인데 하물며 고장난 기계는 쳐다도 안보는 내게 이 광경은 참으로 신기하고도 따수웠다. 모든 것을 직접 고치고 되게만드는 허비도 신기하고 고장난 기계에 호기심을 갖는 아이의 눈망울도 신기하고 그 의 콜라보가 자아내는 뜨뜨미지근한 광경은 나로하여금 저절로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게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처음 만난 사람들이 뒤섞여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려나 내심 궁금했으나, 묘하게 따뜻하고 정겨울 뿐이었다. 그리고 내 삼촌 허비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모두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그날 저녁 식탁. 우리들의 뒷담화에는 석가모니조차 까임을 당했으나 한 젊은 영혼을 힘껏 일으켜 세우려는 인생 선배의 사랑이 담겨있었음을 그는 아시고 계실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은 텅 빈 들녘처럼 그 곳에 앉아계셨다. 대부분 들었고 가끔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예외없이 따스했다. 대화와 위로는  말이 아닌 것들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녀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스스로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손길이 혹은 마음이 필요한 자리마다 그녀는 이미 거기에 있었다. 생각의 시간도 결정의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그녀는 이미 거기에 있었다. 누구라도 혼자두지 않았고 어떤 것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자리 앞에 저절로 경외심이 일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늘 잔잔한 기쁨과 감동을 주는 존재. 들꽃은 정말 들꽃같았다.


그러니 그런 것들.

조용히 앞마당에 나가 누군가를 위해 커피를 내려주거나

노는척하며 낙엽으로 뒤덮인 마당을 쓸거나

아이들과 온몸으로 놀아주는 고강도 노동을 자청하거나

바리바리 싸와서 누군가를 먹이거나

괜시리 두살배기를 안고 돌아다니거나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작고 큰 행위 속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담겨있었다.


친해지기도 너무 쉽고 멀어지기도 너무 쉬운 세상 속에 살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깊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드물기에 진실로 귀하다.


양평.

잘 쉬고 배도 마음도 꽉 채워온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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