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오후에 '건강 걷기' 운동 수업을 한다. 학교 주위 산책길을 느긋하게 걸어가는, 운동이라기보다 산책에 가까운 활동이다. 학교 현관으로 가서 '건강 걷기' 운동을 신청한 아이들이 모두 왔는지 확인했다. 6학년들과 7, 8학년 여학생들은 일찌감치 나와 있었고 7학년 남학생들은 수업종이 울릴 때 황급히 뛰어나왔다. 수업 종이 울린지 한참이 지나서야 8학년 남학생들이 느릿느릿 걸어나왔다. 수업에 늦었는데도 그들은 아무 문제 없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한없이 느긋했다. 화가 치밀었지만 너무한다 싶을 만큼 많이 늦은 것은 아니었고 운동 시간은 교과 수업과 달리 교사도 학생도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는 시간이기도 했기에 별다른 잔소리를 하지 않고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9월의 오후 햇살은 아직 따가웠고 습도도 높은 편이어서 조금 걷자마자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한여름 때만큼 숨이 막히도록 후텁지근하지는 않았다. 전날 비가 내린 후 맑게 개인 가을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고 바람에도 선선한 기운이 감돌았다. 우리 학교는 읍내에서도 한참 떨어진 시골에 위치해 있어 주변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파스텔 톤의 주홍색, 푸른색, 밤색으로 칠해진 전원 주택들이 학교 주위에 옹기 종기 모여 있고 학교 길 옆으로 아담한 나무들이 줄 지어 서 있다. 조금 더 걸어나가면 곳곳마다 이름모를 꽃들이 앙증맞게 피어 있고 시원하게 펼쳐진 논에서 벼 이삭들이 바람에 출렁이고 있다. 코스모스들이 가득 피어난 들판 옆으로 졸졸 흐르는 시냇물도 보인다.
아이들이 깔깔대며 웃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명랑하게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 사이로 풀벌레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온다. 걸으면서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서서히 내쉰다. 발바닥으로 땅의 단단한 감촉을 느껴본다. 바쁘게 일을 처리하고 수업 중에 철없이 장난치던 아이들과 씨름하며 분주하게 보내던 오전 일과 동안 복잡하게 엉크러졌던 감정들이 서서히 풀어졌고 찌뿌둥했던 몸이 사르르 풀리면서 상쾌한 활기가 차올랐다.
걷다보면 내게 적합한 속도를 알 수 있다. 목적지만 바라보고 조급하게 걸으면 풍경을 음미할 여유를 잃어버린다. 터벅터벅 힘없이 느리게 걸으면 침체감만 가중된다. 내 몸에 맞는 속도로 걸으면 내딛는 발걸음에서 경쾌한 리듬감이 느껴지고 온몸의 감각이 생생히 깨어난다. 문득 내 삶의 속도는 어떤지 궁금해진다. 심신이 지칠 정도로 빠를까. 아니면 무력감이 찾아올 만큼 더딜까. 일상에서 나는 적절한 속도로 살고 있는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걷기 운동의 종료지점인 학교 현관에 도착했다.
나와 함께 현관에 도착한 아이들은 먼저 학교 안으로 들여보내고 아직 오지 않은 아이들을 기다렸다. 6학년과 7, 8학년 여학생들이 이어서 도착하고 조금 후에 7학년 남학생들이 도착했다. 그러나 8학년 남학생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저번주에도 8학년 남학생들이 나에게 말을 하지 않고 놀러 가버려서 어디를 가든 먼저 나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지도를 했건만 오늘도 말 없이 사라져버렸다.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8학년 남학생들을 찾아 내려가는데 학교 카페 문을 열고 8학년 남학생 중 두 아이가 나온다. 여유롭고 느긋하게.
"너희. 어디에 있었어?"
"카페에 있었는데요."
잘못한 게 없다는 듯 태연히 말하는 모습에 내 얼굴이 확 굳어졌다.
"친구가 카페 화장실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 말을 믿어야 하나. 혼나기 싫어서 둘러대는 말일 수도 있다. 우선 아이들의 말을 더 들어보기로 했다.
"저희가 걷는 속도가 느리기도 했구요. 도착하니 수업이 끝날 시간이어서 카페에 갔어요. 친구 한 명이 화장실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근처에 사진 촬영 수업을 듣는 친구들이 사진을 찍고 있어서 같이 사진을 찍고 있었어요."
어이가 없었다. 다른 학생들과 달리 8학년 남학생들은 걷기 운동을 1교시 더 하기로 되어 있어서 수업이 끝날려면 한참 멀었다. 그런데도 수업이 끝난 줄 알았다니. 이게 변명이라고 하는 말인가.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수업이 정말 끝났는지, 그만 가도 되는지 선생님에게 물어봐야 하는 게 아닌가. 급하게 화장실을 가야 했다면 친구를 통해서 화장실에 갔다고 내게 알려야 하는게 아닌가. 더욱이 운동 수업 중에 잠시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싶었다면 반드시 내게 허락을 받고 했어야 할 일이다. 아이들이 내 허락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판단해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한 일들을, 별일 아니라는 듯이 통보하는 모습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똑바로 서라."
내 목소리에 분노가 잔뜩 서렸다. 그제서야 긴장한 남학생들이 똑바로 섰다.
"내가 화가 난 이유는 너희들이 내 허락도 받지 않고 멋대로 판단해서 행동했기 때문이야. 급하게 화장실을 가고 싶다면 가야지. 그래도 친구를 보내서 화장실에 간다고 선생님에게 말을 해야 하는게 아니냐. 수업이 끝난 줄 알았다면 선생님에게 와서 수업이 정말 끝났는지 확인하고 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야지. 그리고 사진을 찍으러 가고 싶다면 당연히 내게 물어봐야 하는 게 아니냐? 내 수업 시간이니 말이다."
아이들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운동 수업은 야외로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너희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내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해. 내 수업 시간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 책임이기 때문이야. 너희가 말도 없이 가버렸다가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어떻게 대처할 수 있겠니."
말을 하면 할 수록 화가 치밀었다.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아주 혼쭐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학년 남학생들을 데리고 다시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일부러 경사가 급하고 땡볕도 내리쪼이는 길만 골라서 빠르게 걸어갔다. 뒤에서 아이들이 헉헉거리며 걷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호흡이 가쁘고 땀이 비오듯 흘렀다. 보통은 아이들에게 조금 힘든 기색이 보이면 잠시 멈추고 주위 풍경도 감상하게 했지만, 화가 잔뜩 나 있던 나는 쉬는 시간을 주지 않고 오르막길만 골라서 계속 걸어갔다. 마지막 코스로는 여자 기숙사 옆에 있는 '천국의 계단'을 택했다. 그 코스는 자연석으로 만든 계단인데 경사도 급하고 길이도 제법 길어서 단숨에 올라오면 숨이 턱까지 차오르기에, 헬스 운동 기구 이름을 본따서 '천국의 계단'이라 불리운다. 나는 숨을 헐떡이는 아이들을 이끌고 '천국의 계단'을 단숨에 걸어 올라갔다. 학교에 도착하자 나도 아이들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비오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다시 아이들에게 물었다.
"대답을 잘 못하면 걷기 운동을 다시 시작하겠다. 너희가 수업 중에 지켜야 할 게 뭐냐?"
아이들은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시간입니다."
"약속입니다."
"선생님 말씀입니다."
혼이 나서 그런지 대답을 잘한다. 나는 말했다.
"너희는 그 세 가지를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혼이 난 거야. 다음에는 절대 그러지 마라."
그렇게 아이들에게 다짐을 받은 후 교실로 들여보냈다.
교무실로 돌아와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엄하게 지도한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일었다. 교과 시간보다 규율이 느슨한 운동 시간이기도 했고 수업 때보다는 긴장이 풀어진 아이들이 흔히 범할 수 있는 잘못이기도 했다. 말로 잘 타이른 뒤에 가볍게 걷기 운동을 하고 수업을 마쳤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하지만 지난 운동 수업 시간에도 아이들이 내게 말하지 않고 멋대로 가버려서 그러면 안 된다고 분명 부드럽게 타일렀다. 그럼에도 같은 잘못을 또 반복했기에 이제는 말로만 지도해서는 소용이 없고 따끔하게 혼을 내야 할 상황이었다. 그렇게 생각해보지만 씁쓸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이렇게 교사로서 철없는 아이들을 지도하다보면 마음 속에 여러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쓸려 나간다. 분노가 일어났다가 가라앉고 다시 격한 분노가 거세게 밀려 왔다가 쓸려 나간 자리에 후회가 밀어닥친다. 그 파도를 연신 뒤집어 쓰다보면 녹초가 된다.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면서 지도하면 후회가 더 진하게 남는다. 그래서 다짐해본다. 감정이 격해졌을 때 내린 판단이 옳았다고 해도 결국 감정적으로 판단한 게 아닌가 하여 오랫동안 찜찜하다. 아이의 어떤 행동으로 내 감정이 파도처럼 일어나면 그 파도가 잠잠해지길 기다린 후에 어떤 지도를 할지 판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