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고양이의 차이
영국 링컨대학 연구진이 개와 고양이를 함께 키우는 가정 총 748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고양이가 개를 적대시한다'라고 대답한 반려인은 56.5%로 절반이 넘었지만, '개가 고양이를 적대시한다'는 응답은 18%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 연구 결과를 본 국민일보 박OO 기자는 '개와 고양이가 앙숙이 된 이유는 고양이 성격 탓'이라는 기사를 작성해 올렸다. 마감에 시달리던 박 기자는 그 옆에서 포근한 이불에 돌돌 말려 새근거리며 자고 있는 자신의 고양이를 보며 이 기사를 쓴 것이 분명하다. 내가 못 자고 못 먹을 때, 옆에서 누가 잘 자고 잘 먹는 것만큼 밉살맞은 게 없으니까.
나는 개와 고양이가 서로 살갑게 지내지 못하는 이유를 어느 한쪽 '탓'에 있다고 성급히 결론 내리는 일이 과연 옳은지 의문이 생겼다.(게다가 '앙숙'이라니...) 개, 고양이와 각각 10년 이상 같이 살아봤던 나로서는 어느 쪽 편도 들지 못한다. 그 둘 사이엔 좀처럼 넘기 어려운 '소통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개는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흔든다. 좋으면 좋을수록 더 빠르고 격렬하게 흔들다가 결국 엉덩이까지 씰룩 인다. 고양이가 개처럼 꼬리를 세차게 흔드는 건,
"내가 곧 네 놈의 숨통을 끊어놓겠어!"
라는 최후의 경고를 상대방에게 보낼 때다. 그렇기 때문에 개가 고양이를 향해 (딴에는)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뛰어오면, 고양이는 패닉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입까지 크게 벌리고 '헥헥'거리며 달려온다면... 고양이 눈에 그 생명체는 '날 죽이려고 달려드는 적'으로 보인다. 고양이는 '헥헥'거리지도 않으며, 상대를 위협할 때와 하품할 때 빼곤 입을 크게 벌리는 일이 별로 없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개를 본 고양이가 깜짝 놀라 털을 잔뜩 세우고 미친 듯이 도망치기 시작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집단생활을 중시하는 개는 '친구'(개한테 고양이는 일단 친구다)가 앞서 뛰어가는 걸 보면 '너도 빨리 뛰어봐! 나랑 같이 놀자!'로 인식하기 때문에 흥이 하늘 끝까지 솟아 고양이를 쫓기 시작한다. 쫓고 쫓기는 달음박질에 온 집안이 풍비박산 나기 일보 직전, 고양이가 냉장고 위 같은 높은 곳으로 안전하게 피신을 한 뒤에야 개와 고양이 각자의 열렬한 달리기가 멈춘다.
신나게 뛰어놀다가 흐름이 끊긴 개는 해맑은 얼굴로 고양이를 올라다 보며 '왜 그래~ 더 놀자~ 나랑 놀자~'면서 발라당 누워 배를 보이고 눕는다. (꼬리는 여전히 세차게 흔들고 있다) 개의 이런 복종 행동은 의도와 달리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야 만다. 고양이는 치열한 싸움 중 최후의 일격을 가해야 할 때 배를 보이며 눕는다. 이 자세야 말로,
"내가 곧 네 놈의 숨통을 끊어놓겠어!"
라는 뜻이다. 고양이는 낮은 자세로 적의 급소인 목 안쪽을 노리는 동시에, 뒷발을 위로 강하게 차면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의도로 배를 보이며 눕는다. (호의적인 상대에게 배를 보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사인이다)
개는 자신이 복종 행동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냉장고 위에서 도통 내려올 생각이 없는 친구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염없이 기다린다. 안타깝게도, 개가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는 이상 고양이는 냉장고 위에서 내려 올 생각이 없다.
이런 소통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오해 때문에 고양이는 개에게 위협을 받는다고 느낄 수밖에 없고, 개를 향해 적대적인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단순히 결과적인 응답률만 추출해서 '고양이 탓'으로 규정하는 건, 고양이랑 사이좋게 놀고 싶은 개도 원치 않을 것 같다.
냉장고 위로 올라간 고양이를 기다리다 지쳐 잠시 인터넷 뉴스를 뒤적이던 개는 박OO 기자의 글에 이렇게 댓글을 달지도 모른다.
'고양이 탓 아니다! 고양이, 좋아한다, 나는! 내 친구 탓 하지멍!'
어느 쪽의 '탓'이 아니다. 개와 고양이가 서로 다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