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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솜 Jul 24. 2019

내 혈액형이 왜뭐왜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혈액형은 딱 네 가지였습니다. A, B, AB, O형이 그것이죠. 그러나 지난 9월, 영국 로열컬리지 연구진이 수년간의 임상실험을 통해 새로운 혈액형인 'ABO'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희귀 혈액형은 전 세계 인구의 1%를 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는데요. ABO형은 A, B, AB, O형의 성격 특징을 모두 갖고 있어, 혈액형별 성격유형 맹신자들에게 큰 혼란을 주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만약 이런 뉴스가 실제로 나온다면, 전 세계에 1%뿐이라는 ABO형은 바로 '나'일 것 같다. 아빠가 O형, 엄마가 AB형인 가족력을 보더라도 확률이 높은 데다 실제로 난 모든 혈액형의 성격 특징을 조금씩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실행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남들이 다 그렇다고 할 때 다소 뻔뻔하게 '아님'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남을 웃기는 게 좋고 승부욕도 강하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내가 다른 외계에서 온 존재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에 깊이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난 혈액형으로 개인의 성격을 분류하는 걸 좋아하지도 신뢰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혈액형에 따른 성격유형을 좋아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한다. '저 인간이 왜 저러나' 싶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도 혈액형별 성격이라는 네 가지 카테고리 안에 대입해 보면 왠지 '알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아, 걔 X형이었어? 어쩐지..."


마음 편한 게 최고라는 인생관이라면 더 할 말이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런 '단편적인 인간 이해 방법'이 과연 옳은 것인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은 장점이나 단점이 될 수 없다는 유명한 말도 있잖은가?


물론, 오늘 이런 주제로 글을 쓰는 이유가 1년 전 이삿날에 있었던 일을 아직도 마음에 담고 있는 건 절대로 아니다. 그날 이삿짐센터에서 나온 청년 때문이 결코 아니란 뜻이다. 


그날 나는 포장이사임에도 불구하고 미리 짐을 다 싸놓은 것은 물론 박스마다 이름표를 달아놓은 후, 짐이 나가야 할 순서대로 현관에서부터 베란다까지 좍 줄을 세워놨었다. 그 광경(..)을 본 청년이 날 가리키며 


"A형 이시죠? A형 맞네에~"


라고 놀리 듯이 말하고 '하하하하하' 호탕하게 웃었기로서니, 그까짓 일을 아직까지 마음에 담았다가 이렇게 글로 쓰다니 가당찮다. 단지 이제 슬슬 글감도 떨어져 가고 이사한 지 1년째가 되니 생각 난 김에 그냥 써보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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