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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블루 Apr 13. 2021

'악동' 메켄로, 무기는 위트

권위에 맞서는 한 가지 방법, 위트

나와 비슷한 세대(1970대 초반~80년대 초반)이면서 스포츠 뉴스를 좀 봤던 이라면 존 메켄로라는 이름을 들으면 대번에 '악동'이라는 표현을 뱉을 가능성이 크다.


메켄로는 독일에서 태어난 아일랜드계 미국인이다. 엄격한 장교 출신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나 펑크록(I saw myself as part of punk 라고 말하기도)을 좋아했고, 권위에 눌리지 않았다.


윔블던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흰 옷을 입고, 여왕이 없는 로얄 박스에 인사하고, 잘못된 판정에도 '권위에 복종하는' 뜻으로 항의하지 않는 분위기를 싫어했다. 그래서 엄파이어(심판)과 갈등이 잦았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1981년에 나왔다. 심판이 경기 전 "(난 잉글랜드 사람이 아니라) 스코틀랜드 사람이니, 둘 사이 아무 문제 없겠지?"라고 묻자. "난 아일랜드 사람"이라고 응수했다.

같은 해 비외른 보리에게 설욕하며 우승을 차지한 뒤에는 전통인 폐회 만찬에 참석하지 않았다. 너무 피곤하다는 이유를 댔다. 그래서 주최 측에서도 전통을 뒤집었다. 챔피언에게 주는 올 잉글랜드 명예 멤버십을 수여하지 않았다. 사상 최초로!


메켄로는 아이랜드계지만 '아일랜드 분위기가 많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다고 했다. 더블린에서 한 시간 반이나 운전해서 가서 처음으로 만난 친척은 그에게 "난 보리를 더 좋아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그래도 아일랜드와 잉글랜드(혹은 대영제국) 사이에 있는 엄청난 역사(잉글랜드의 엄청난 학정과 그로 인한 아일랜드 대기근(100만명 사망, 100만명 해외 이주)를 알기에 "난 아일랜드 사람"이라는 말에 많은 걸 느끼게 된다.


역사가 주는 엄청난 위화감과 위압감과 대회 권위가 부르는 침묵에 저 정도 반항적인 위트로 받아칠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래도 잉글랜드와 메켄로는 조금 화해한 것 같다. 메켄로는 BBC 해설위원을 했다.


배우 윤여정 씨가 영국 아카데미상(BAFTA) 여우조연상을 "고상한 체하는 영국인"에게 인정 받아서 기쁘다고 말한 게 완벽하진 않아도 메켄로와 비슷한 맥락이라는 생각도 든다. 


권위와 편견으로 차별과 무거움을 준다면, 상대적 약자는 위트를 내세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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