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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Aug 20. 2024

감시가 필요한 재택러, 희망을 보다.

따로 또 같이, 감도 높게 북적대며 일하기. 코사이어티 스낵라운지

나는 몇 년째 집이자 작업실에서 일하는 재택러다. 재택을 시작하고 얼마간의 일과를 기록해 보면, 


- 기상하자마자 거실에 나와 차를 내리고 향을 사린다.

- 명상을 하고 아침을 챙겨 먹거나 공복 유산소를 다녀온다.
- 샤워를 하고 바깥 옷으로 갈아입는다.
 시간에 쫓기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규칙은 존재한다.

- 구글어시스턴트의 출근시간이라는 음성 안내가 흘러나오면 보란 듯이 예닐곱 걸음 남짓 떨어진? 옆 방,
  작업실
로 출근한다. 


뇌에게 신호를 주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이 장치가 유효하냐?'


컨디션이 괜찮을 때, 보고가 닥치지 않을 땐 유효하다. 집중력이 흩어져도 아무래도 좋은 때가 있으니, 그저 그런 산만함을 즐기는 날도 있다. 문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긴급상황일 때 생긴다. 나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거나, 명확한 중심 개념이 잡히지 않을 때 평소보다 과도한 양의 정보를 한꺼번에 뇌에 "때려 넣는" 처방을 한다. 

모든 아이디어와 솔루션은 절대량의 정보가 채워졌을 때 융합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기에 더 이상 막연히 '그분'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안일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정보를 과식해도 해결되지 않을 때는 결국 익숙한 공간에서 떠나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기꺼이 자발적으로 '감시'를 받기 위해 이동한다. 자신의 의지로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으나, 가장 효과적인 극약처방은 많은 '감시의 눈'이 존재하는 카페 혹은 트인 공간에 나를 던져 놓는 것이다. 폐점시간, 적당한 소음, 카페인 수혈 등이 가끔은 일을 나아가게 하는데에 큰 도움을 준다. 물론 더 급박할 땐 BPM이 높은 노동요를 듣기도 한다. 


오늘은 급한 마감도 보고도 없지만, to do list에서 하기 싫어 계속 미루거나 진득하게 앉아 시간을 써야 하는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바깥나들이를 나섰다. 이런 일들을 챙기면서 잠시 설레기도 한 이유는 성수의 코사이어티에서 새로 론칭한 스낵라운지를 경험한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오늘을 위해 일을 미뤘는지 몰라)




공간에 들어와 맘에 드는 자리를 찾으면 그 자리 앞에 카드를 올리면 끝이다. 이제 업무 돌입!



우선 밀린 일은 두 시간 남짓 되지 않아 모두 완료했다. 나는 이렇게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인간인가. 


감도 높게 정돈된 공간과 적당한 소음,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한 다양한 장치들이 맘에 든다. 물론 군것질도 줄이고 커피도 끊은 나는 집어 먹을 걸 고민하다 콤부차 한 잔을 타 왔다. 말린 채소칩도 있고 다양한 선택을 위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무엇보다 맘에 들었던 것은 층고가 높다는 것인데, 믿거나 말거나 층고가 높아야 창의력이 증진된다고 했던가. 그 높은 층고 너머로 시원하게 보이는 푸릇한 자연이 종종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데에 꽤 큰 즐거움이 되었다. 


다락으로 올라가면 좀 더 편한 소파자리, 저 창 밖으로 보이는 자연이 꽤 좋았다.


처음 오픈 때 전시를 즐기러만 방문했던 공간이 방구석 재택러에게 작은 희망으로 다시 다가오니 또 재밌고 고맙다. 어디스벅이 구석자리가 많더라... 궁리해 스벅을 찾아 음료를 연거푸 시키고 그마저도 눈치가 보여 샌드위치도 시키고 백색소음을 얻는 대신 옷과 소지품 깊숙이 원두 냄새를 묻혀 어질어질 집으로 돌아오던 나에게 18,000원이라는 1일 이용권 금액은 비교적 합리적이기도 하다. 


다음 방문 때는 동료들과 함께 즐겨봐도 좋겠다. 재밌는 일로 재밌는 공간에서 떠들고 환기하는 일이 중요한 사람들에게 즐거운 나들이가 될지도 :) 


나는 사이드프로젝트로 파트너와 새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는데, 멀리에 있는 그에게도 이 공간을 보여주고 싶다. 또 칸막이 가득한 삭막한 사무실에 갇혀 있는 클라이언트 팀장님들도 떠오른다. 이렇게 데리고 오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생각나는 걸 보니 좋았던 모양. 


문득 몇 년 전 강릉으로 떠났던 워케이션을 떠올렸다. 강릉으로 떠났을 땐, 워크 데스크 바깥으로 바다가 보인 탓에, 또 강릉에 너무 맛집이 많았던 탓에 이게 여행인지 워케이션인지 주객이 전도되는 경험을 했었고 그 이후로는 이런 공간이나 프로그램에 막연하게 회의적이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도 간단한 나들이로 환기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앞으로 더 다양해질 근무형태에 맞게 사람들이 모이는 새로운 방식이 계속해서 생기는 것은 적어도 리모트 워커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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