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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처럼 사는 일

by JuneK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은 365일을 조금 넘는다.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은 29.53일.

여기에 12를 곱하면 약 354일.

그래서 양력과 음력 사이에는 매년 11일 정도의 차이가 생긴다.


이 11일의 차이는 점차 누적되다가

약 19년이 지나면 다시 비슷한 날짜에서 만난다.

이를 메톤 주기라고 부른다.

(이 원리를 발견한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의 이름을 땄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19년에 한 번,

각자의 음력과 양력 생일이 정확히 겹치는 날이 찾아온다.


나는 가족들과는 음력으로, 친구들과는 양력으로 생일을 챙겨 왔다.

어릴 땐 케이크에 초를 두 번 부는 일이 그저 신났고,

음력 생일을 기억해 달라는 건 친구들에겐 다소 번거로운 일이었겠다 싶다.


예전의 나는 생일 주간을 만들었다.

파워 E답게 이 모임, 저 모임을 옮겨 다니며

각각 다른 저녁 메뉴를 고르고, 케이크도 여러 번 자르고,

짧은 편지를 주고받곤 했다.

기억하는 걸 좋아했고, 기념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언제부턴가, 생일을 기념한다는 행위에도 무게가 생겼다.

되려 점점 생일 없이 지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를 챙기기에 앞서, 나를 낳아 준 누군가를 먼저 떠올리는 날.

그러다 보니, 나에게 소중한 단 한 사람만 잊지 않고 기억해 준다면

그 외에는 다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 음력 양력도 같은 일이 오히려 반가운 일이다.


나는 단 한 사람이 중요해질수록

그 존재에 너무 큰 힘을 실었다.

그 무게는 그만큼 나를 기쁘게도 했고,

쉽게 힘들게도 했다.


이러나저러나 그저 지나가는 하루이려니 하지만,

그 둘이 다시 겹치려면 또 19년을 기다려야 하니,

그때는 아마 더 의미를 두지 않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글 한 편쯤 남길 정도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본다.


5월에 태어나서일까. 나는 작약을 사랑한다.

연둣빛 봉오리로 조용히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속을 다 드러내며 활짝 피는 꽃.

그 드라마틱한 전개를 보고 있으면

주체할 수 없이 벅차오르며 설레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 주저 없음이 무서울 정도다.


정체를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펼쳐낸다는 게

뭐든 잘 숨기지 못하는 나를 닮았고,

곧 질 일은 생각하지 못하고 마음껏 펼쳐내는 모양이 무모하고 거침없다.


나를 오래 지켜본 몇몇은

내가 작약을 유난히 좋아한다는 걸 안다.


올해, 생일 하루 전 그 꽃이 도착했다.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다는 마음이 얄미우면서도,

작약은 여전히 아름답게 피어나는 모습이

참, 복잡했다.


보낸 이의 마음은 알 수 없었지만,

꽃은 아름다웠다.
그 여지없이 정체를 숨기지 않고 활짝 피어버리는 그 모습은

안쓰럽도록 선명하다.


올해의 작약은 유난히 늦게 피었다.

내 마음도 그랬다.

아침과 저녁의 얼굴이 확연히 다른 작약처럼,

나 역시 매일매일이 예측할 수 없이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가 작약 보듯 조심스럽게

나를 바라봐주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작약처럼 사는 일도, 알고 보면 꽤 큰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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