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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냥 Aug 04. 2023

마리 드 프랑스의 이야기, 12세기 수녀원장의 매트릭스

로런 그로프 '매트릭스'

태어나보니 여자아이였는데, 모태신앙이라며 뭔가 스스로 판단할 힘을 가지기도 전에 기독교를 주입받았다. 모태신앙이란 말은 얼마나 문제적인가. 신앙이 모태에서 갖춰지는 건 불가능하다. 모태에 있을 때부터 특정 신앙을 강요하겠다는 부모의 의도가 강렬이 드러날 뿐. 여기까지는 뭐 그렇다치자. 부모가 태어나게 했으니 그 정도는 강요할 수 있지. 어차피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 자기 판단 다 할 거고. 문제는 그 종교의 성격에 있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같은 노골적인 슬로건을 목청껏 외쳐 대는 사람이 있다면 가만히 모른 척하면 된다. 빤스목사나 부동산 알박기하는 목사는 같이 욕하면 된다. 개신교의 하고 많은 문제들도 마찬가지다. 고민은 내 안에서 시작되었는데, 평화와 사랑의 신이 자꾸 내가 여성임을 죄 많음 더러움 사악함 열등함으로 포장하고 그렇게 생각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다. 여자를 아담의 뼈로 만들어? 선악과 따먹자고 꼬셔? 그래서 출산을 고통을 얻어? 그래서 죄 많고 더럽고 사악하고 열등해? 비과학적인 건 둘째치고 작성자의 욕망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어 가까이하기 싫다.  기원전 남자 사람들이 모여 쓰고 편집한 성경이 1점 1획도 안 틀린다는 그 기괴한 확신은 뭐며, 밥 먹고 똥 싸는 인간인 주제에 신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기상천외한 에고 인플레이션은 놀랍기만 하다. 그러다 곧 그저 허탈해진다. 이런 인간 냄새, 남자 욕망이 지독하게 떡칠된 신앙은 아무 감흥이 없다. 신앙은 내게 고통을 견디는 묵상과 자아성찰의 도구일 뿐이다.


12세기, 여성으로 태어나고 보니 이미 강간에 의해 자신을 강제임신당한 어머니가 있다. 큰 키와 기골이 장대한 외모, 결혼하긴 글렀고, 사연 많은 아동이 되어 살다가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강제로 수녀원에 보내진다. 수녀원을  수녀가 되어야 할 운명인 마리 이야기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저자 로런 그로프의 등에 업혀 20년 넘게 발화되기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책으로 당도한 이야기. 리는 흙보다 뼈로 만들어진 사람이 더 개선된 거 아닌가 싶다며 성서에 적힌 남성형 명사를 지워버린다.


마리는 고해신부가 됨으로써 신과 더 가까워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 때문에 실망한다. 이렇게 하면서 소명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랐기에... 그녀는 그들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슬픔이 마리를 너무 무겁게 내리눌러 잠을 이룰 수 없을 때 마리는 종종 필사실로 내려가 라틴어로 된 미사전서와 시편을 여성형 단어들로 바꾼다. 여자들만 듣고 말할 글인데 안 될 게 뭐 있는가? 그녀는 그렇게 바꾸면서 혼자 웃는다. 남성형 단어에 줄을 그어버리고 여성형으로 대체하는 것은 사악하게 느껴진다. 재미있다. 242쪽.


크크크 마리의 실망이 이해된다. 그리고 나도 재미있다. 출산 능력도 없는 남자들이 모여 만든 거칠고 비과학적인 세상은 재미없을 뿐 아니라 비인간적이다. 의미 있는 말을 하는 남성이 없는 곳, 복잡한 자궁의 레이어들처럼 미로로 쌓인 매트릭스에서, 그 겹겹의 여성서사 속으로 마리의 죽음까지 함께 했다. 더할 나위 없는 악몽이자 저주인 기후위기 여름판을 3일 정도 버틸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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