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멍멍이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냥 Aug 09. 2023

대가 없이 주고받는 일의 소중함

루이스 하이드 '선물'

늘 가던 산책길이 막혔다. 튼튼한 지지대가 올라가고 그 위로 뾰쪽한 가시가 박힌 철망을 또 두르고 안 쪽으로는 군 시설에나 쓸 법한 철조망이 또 쳐 있다. 그냥 동네 산책길에서 일어난 일이다. 오고 가던 사람들은 테러리스트도 아니고 그냥 쓰레빠 끌고 나온 동네 주민들이다. 막힌 산책길 곳곳에 있는 현수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곳은 사유지이므로 무단 침범 시 법에 따라 처벌됩니다'  사유지? 무단침법? 얼결에 오랫동안 그 산책로를 이용했던 사람들은 철조망 밖으로 밀려났고 무단침범하기 않기 위해 산책길을 잃었다.


루이스 하이드의 '선물'은 선물로 주어진 자연에 대해 얘기한다. 다행히 목성이나 토성처럼 가스형 행성이 아니어서,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발바닥 최외각 전자와 맞댄 땅의 전자가 서로 밀어내 땅 위에 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땅은 소유하는 것일 수 없었다. 그건 지구표면의 일부이고, 공기나 햇살처럼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말들이 허무해졌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땅주인은 자기 땅이라며 울타리를 치고 그 땅을 오랫동안 밟아온 사람들의 산책을 무단침입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나무들도 그 안에 갇혔다.


산책길을 잃는 사람들은 철조망 밖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길을 찾아내고 낭떠러지 쪽에는 밧줄도 가져다 맸다. 반려견과 같이 산책을 다니는 나는 그 길 가기가 너무 불편했다. 무엇보다 노골적으로 개가 싫다는 사람들 피해 가기가 어려웠다. 마주 오는 사람이 있으면 오던 길을 되돌아가다 산책을 포기했다. 최초에 이 땅엔 땅주인 따윈 없었어!!!를 속으로만 외치다 분노가 솟구쳤다. 지자체에서는 산책길 폐쇄 현수막만 덜렁 걸어놓았다.


루이스 하이디의 <<선물>>은 추천사를 표지 앞에 함께 실었다. 자신감 혹은 호소? 산책길 빼앗김으로 생긴 분노 때문인지 얀 마텔의 말에 눈이 번쩍 띄었다. ' 이 책을 고 빌먹을 '돈'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모든 것이 계산되고 가격이 매겨질 때 부의 자유로운 이동은 중단된다는 것이다. 부가 거대한 무더기로 쌓일지는 몰라도 부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방글라데시 전쟁 이후 기부로 들어온 수천 톤의 쌀이 창고 안에서 썩어간 까닭도, 시장만이 유일하게 알려진 배급양식이나 보니 가난한 사람은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85쪽


시작-산업 시스템은 전례가 없는 방식으로 다른 어떤 곳에서도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희소성을 제도화한다. 이 시스템에서 생산과 분배는 가격의 움직임을 통해 조정되고, 모든 생계는 소유하는 것과 소비하는 것에 의존하며, 물질적 수단의 불충분함이 모든 경제활동의 명시적이면서 계산 가능한 출발점이 된다. 86쪽


루이스 하이디는 선물의 주고받음을 에고의 확장으로까지 이어간다. 정리할 필요도 없이, 그 이야기 하나하나가 호혜적이고, 선물의 증식은 곧 물질적이면서도 사회적이고 영적인 것으로 이어진다. 선물의 주고받음을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상상력 갇힌 물건의 오고 감 정도로 생각해서는 가까이 가기 어려운 생각이다. 이 상품의 오고 감이 싫어서 정 '안 주고 안 받기'에 익숙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뭔가 선물을 받으면 갚아야 한다는 마음이 더 강했고, 그 선물에 담긴 사람의 의도를 먼저 의심하기도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은 무언가 주어진 것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러나 우리는 35억  전 시아노 박테리아가 만들어준 산소부터 시작해 햇살과 나무, 지구가 준 자연의 덕으로, 그 선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선물의 주고받음과 그 증식은 물질적이면서도 영적인 것일 수 있다. 내 입 맛에 맞춰진 신선한 김치 박스나 내 취향을 아는 친구의 책 추천 같은. <<선물>> 이 책에는 그 사례가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진다. 책이 650페이지를 넘어가니 얼마나 더 많은 선물이야기가 이어질지 모른다. 그중엔 예술을 통해 받는 선물도 포함된다. '우리는 예술가의 창작이라는 대행을 통해 우리의 존재라는 천부적 자산을 알아보게 되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의 존재를 선사받는다고도 볼 수 있다.' (30쪽)



매거진의 이전글 '모두 엎드려 시아노 박테리아를 경배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