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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냥 Oct 18. 2023

터키에서 전하는 안부인사

네슬슨? 이이임.

멜하바. 네슬슨? 이이임. 테시큘레에데림. 센 네슬슨?이 말을 하루에도 여러 번 하게 됩니다. 처음 만나는 터키인들하고도 잘 지내나요? 네, 잘 지내요. 고마워요. 당신은요?하고 안부를 주고받죠.


이스탄불의 쩍벌녀, 바로 접니다.



저는 지금 콘야라는 도시에 있습니다. 잘랄루딘 미의 묘가 있는 곳이고, 수피즘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죠. 세마 의식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언젠가 저 의식을 보러 가겠구나 했던 마음이 실현되었습니다. 수피 의식을 치르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몇 가지 꿈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예레바탄 사라이에서 나만의 메두사를 영접하는 일, 성소피아 성당의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기둥에 기대어 서보는 일, 세마의식을 하고 있는 수행자의 얼굴을 지켜보는 일 등이 있었습니다.

저만의 메두사도 잘 영접했습니다. 두 눈을 오래 마주했으나 두려워 얼어붙기는커녕 반가움만 넘쳤습니다. 두려움이 아예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잘 지내고 잘 먹고 미친 듯이 잘 놀고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넘치고 사람들이 정겨운 나라입니다. 한국에선 비싸서 잘 못 먹던 검은 올리브 매일 실컷 먹을 수 있어 신나고, 진한 터키 커피에 반해서 커피 마실 생각에 아침 일어나는 일이 수월해졌습니다. 여기서도 도서관과 시장과 묘지를 찾아다니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에 열심입니다.

무함마드를 뱀으로부터 지켰다는 고양이 이야기 때문인지 터키 사람들은 길고양이들을 함께 돌봅니다. 가끔 저렇게 제 가방을 뒤지고 제 스카프를 카펫 삼기도 해요.


여기 사람들만큼은 아니지만 무단횡단에 익숙해지고 길거리 고양이들과 개들에게 가끔 밥을 나누는 일도 즐겁습니다. 너무 많은 흡연자들이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워서 마스크를 다시 쓰기 시작한 일 빼고는 하루하루가 흥미롭습니다. 진부하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로 에너지를 다 소모하고 있습니다. 아, 얼마 전에는 제가 '2023년 무슬림공산주의자 유심사기사건'이라 명명한 일이 있었습니다. 돈 손해를 봤고 마음의 상처도 받았지만 이것 또한 재미난 이야기가 되었는데, 이 얘기는 나중에 자세히 할게요. 여행자가 되는 일은 다른 마음을 갖게 되는 일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너무 심각한 사건만 아니라면 무슨 일이 생기든 재미난 일로 만들어 기록할 수 있습니다. 괜찮아, 이따가 글로 쓰면 돼,라고 마음먹으면 근사한 복수를 한 것 같아 괜히 뿌듯해지기까지 합니다.


요새 가장 집중하는 건 '이층에서 본 거리'를 흥얼거리며 숙소가 있는 이층에서 거리를 보는 일입니다. 사실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감기에 걸려 한국에서 가져간 감기약 다 털어먹고 여기 현지약까지 사서 먹고 있는데 빨리 회복하기 위해 3일째 두문불출하고 있습니다. 전등 6개 중 3개는 들어오지 않는 이 낡은 여인숙 분위기의 호텔에 정들고 있습니다. 덕분에 미친 듯이 노느라 잊고 있었던 안부인사도 전하고, 여기 약국 문화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약국에 가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증세만 얘기하면 약을 줍니다. 특히 콘야는 거쳐왔던 도시 이스탄불과 괴레메와는 많이 다른 곳이어서 더 특별한 경험도 하고 있습니다. 남자 여자끼리는 가족이 아닌 이상 악수도 안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이층에서 본 풍경



이스탄불에 온 다음에는 동유럽이나 그리스로 갈 예정이었습니다. 터키 여행을 오래 할 생각은 없었어요. 늘 그랬듯 대충 일정을 잡고 편도 비행기만 끊고 한국을 떠났죠. 그런데 이스탄불에서 지내다 이곳을 더 여행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신기하고 재미있고 더 알고 싶은 곳이에요. 괴레메에선 버섯바위에서 산다는 요정들의 절규를 들었고, 왜 그랜드캐년에는 없는 벌룬이 여기선 왜 이리 호황인가 따위를 식민성과 연관시켜 고민하는 저 자신에 질리기도 했지만, 거기서도 열라 자연이, 시간이, 사람이 남긴 흔적과 역사를 보러 다녔어요. 그러다 덜컥 아프니 장기여행자의 신분을 망각하고 너무 미친 듯이 돌아다녔나 싶네요.


터키 여행 참 좋습니다. 엄청난 그리스 로마 유적들, 오스만 제국의 문명, 생생한 공화국의 역사에 매일 놀랍니다. 사람들은 얼마나 새로운지요. 무엇보다 인종차별이 없고 유목민으로 시작해 정착한 맥락 때문인지 다양성이 넘쳐납니다. 정이 많고 친절하고 역동적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한반도 남한 출신의 아시아 여자가 3주 좀 넘게 경험한 아주 개인적인 터키일 뿐입니다. 나라가 넓다 보니 지역마다 문화가 다르고, 이슬람 근본주의와 세속주의가 격하게 대립하고 있고, 인플레이션 문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외부인인 저의 눈에조차 매우 심각하게 보이며, 난민이 일으키고 있는 문제들과 이로 인한 갈등이 커지고 있고, 아내폭력으로 죽어가는 여자들이 많다는 통계도 무시할 수 없겠죠. 그래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마음과 조건이 맞을 때 꼭 터키 여행을 해보시길 권해드리고 싶기도 합니다.


최근 가자지구를 둘러싼 전쟁분위기 고조로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아직 기존과 다르게 르키예는 중립에 있다 합니다.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있기도 했지만 정권의 친미적 성향이나 중동 아랍 정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겠죠.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국가인 남한 출신으로서 핵전쟁 위협이 세계언론에 실릴 때마다 외국 친구들로부터 아주 위험한 나라에 살고 있는 불쌍한 국민 취급을 받곤 했는데, 실제 폭탄이 오가고 전쟁 때문에 죽는 아이들과 여자들, 노인들을 보며 만감이 교차합니다. 영국이 저지른 교활한 짓부터 종교를 앞세워 전쟁을 일으키는 수컷들의 무자비함에 분노와 두려움을 오가고 있습니다. 이곳은 주말에 팔레스타인 지지시위가 있었던 것 빼고는 아직까지는 큰 사건은 없습니다. 제 안전을 걱정해 주시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최대한 안전하도록 늘 신경 쓰고 있습니다만 더 노력하겠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겨울이 끝나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만나서 더 많은 이야기 전할게요. 그곳에서도 강건하시길. 좀 더한다면 행복을 추구하는 일에 큰 무리가 없으시길.


마지막으로 달력 사진 하나. 이스탄불의 흔한 야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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