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나를 기록하며.
<아무리 대충 살려고 해도 안 되는 사람을 위한 멘탈 공유문>
나는 내가 참 어렵다.
누군들 본인이 쉽겠냐만 어릴 때부터 나는 유난히 내 자신이 어려웠다.
왜 이렇게 맘에 드는 게 없는지 모르겠고 직접 한 게 아니라면 뭐 이렇게 다 성에 안 차는지도 모르겠고 남이 하는 집안일은 불편하고 내가 아닌 누군가가 대충 사는 모습도 짜증이 나는, 참 이상한 성격의 사람.
이런 나는 내 스스로에게 적응이라는 것을 하기 위하여 뭐든 다 직접 해서 내 맘에 들게 만들었고 어지간한 집안일은 내가 처리 했고 누군가가 대충 사는 모습을 목격하기 전에 뛰쳐나가 무언가를 늘 하고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까지 했나 싶기도 하다. 왜 그랬을까? 그렇다고 엄청나게 후회된다는 건 또 아니다. 멘탈이 좀 망가졌을 뿐 내 자신을 위한 커리어나 다부진 평판을 얻게 되었으니, 무엇이 되었든 얻는 게 하나 있으면 잃는 게 하나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나은 판단 이니까.
올해에도 그랬다. 나는 정말 내 역할을 다하고 싶지 않았다. 끝까지 반대했던 사람도 나였다. 그랬었는데 어느새 보니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있는 나를 뒤늦게 발견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할 수 없는 이 일은 그 누구도 쉬이 할 수 없는 경험 이었던 건 사실이다. 돈을 주고도 얻기 어려운 인생 교훈을 배우기도 했다. 에어컨과 히터가 번갈아가며 시원하고 따뜻한 공기를 만들어주는 아늑한 사무 공간을 떠나, 길바닥에 날 내던져 생전 처음 본 분들께 명함을 돌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열심히 했던 이유는 절대 바꿀 수도 없는 이 성격 때문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억울하기도 하다. 내 성격은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나의 통제 범위 밖이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라도 해볼 기회가 있으면 또 모르겠는데 주변에 나 정도의 병적인 인간이 없어서 외로울 때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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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이 지점까지 적었던 게 2020년 7월의 기록이었다.
2024년 6월이 된 지금, 무슨 생각으로 여길 돌아왔는지 모르겠는데, 여튼 오늘 브런치를 열었고 이 글을 다시 읽었다. 우습게도 여전히, 그리고 어쩌다 보니 또 열심히 살고 있다. 약 4년 전과 다른 게 있다면 내 몸이 미국 어딘가에 공부하는 남편이라는 존재와 함께 놓여져 있다는 것과 이 당시 꿈꾸던 대학원을 다니며 나도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 이 밖의 나머지는 여전히 똑같다.
"열심"이라는 개념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겐 여전히 나름의 "열심"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못하겠는 이상한 기준이 있고, 여기서도 아직 이 정도의 병적인 인간을 만나보진 못해서 이 글을 적을 당시와 같이, 변함없이 외로울 때가 많다. 그래도 한편으론 자아를 단련하는 삶을 살아가는 걸 중요시하는 삶의 동반자를 만나 사회적 합의를 이룬 건 삶의 큰 업적이겠다. 맞는 삶과 틀린 삶은 없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대충 살려고 해도 안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건, 여전히 내게 큰 짐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미국에서의 나는 무엇을 얼마나 더 내려놓을 수 있을까? 이 곳에 무슨 기록을 비밀스럽게 더 쏟아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