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글쓰기에 재미를 느꼈던 기억은 별로 없다. 당시 친구 4명과 과외로 '글짓기' 수업을 했었는데, 그 때 글쓰는 게 꽤 재밌었나보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작가'를 꿈으로 적지 않았다. 내가 꿈꾸기에는 너무 큰, 원대한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 겉다.
그럼에도 책을 찾아 읽었다. 그냥 읽는 게 아니라 그 글을 보며 부러워했다. 고등학생 때는 문학을 엄청나게 탐독했다. 외국문학보다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삶에 뿌리를 둔 한국문학을 읽었다. 젊은 작가들의 단편도 엄청나게 좋아했고, 이상문학상 옛날 책까지 다 찾아 읽었다. 공부를 회피하기 위해서라는 의도도 있었지만, 책 읽는 순간만큼은 입시를 잊고 또 다른 세상에 가 있는 기분이 들었다. 팍팍한 삶에 유일한 위로였달까.
고등학생 때 글을 쓰긴 했다. 그런데 내가 그 때 쓰던 글들은, 나를 알아가기 위한 글들이 아니었다. 수시를 대비하기 위한 '논술'이었다. 있어 보이는 듯한, 뭔가를 분명하게 안다는 전제 하에 그럴듯한 주장을 하는 글을 쓰는 게 나는 영 불편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게 정말 맞는 지도 잘 모르겠는데, 그걸 마치 다 안 다는 것처럼 주장한다는 점이 싫었음에도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학원에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런 글을 연습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수능이나 수시가 반영되지 않는 대학을 가서 영상 비평을 전공했다. 또 글을 써야했다. '나'의 이야기보다는 영화라는 텍스트와 엄청난 이론서들에 압도당한 채 4년을 보냈던 것 같다. 행복한 글쓰기가 아니라 의무적인 글쓰기. 비평은 좋았지만, 여전히 어깨엔 힘이 들어있었던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나서는 또 다른 글쓰기가 찾아왔다. 언론사 취직을 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논술'과 '작문'을 또 써야했다. 다른 사람들이 써내는 작문을 보면 솔직한 모습보다는, 뭔가 기교를 부리거나 시험관에게 눈에 띄기 위한 글들이 많이 보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담담히 잘 써낸 글들도 많았다. 나는 그렇지 못 했기에 역시나 좌절했던 기억이 난다. 논술도, 작문도 원하는 글쓰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시험 통과용인데, 스킬을 잘 연마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싶지만 다시 그러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요 몇년 동안은 일상에서 통찰을 담고 쓴 에세이나 사회학 쪽의 책이 좋았다. 읽을 때마다 공감하고, 밑줄 긋고 행복했다. 내가 어떤 글을 좋아하는지는 조금 파악했지만,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면서도 막상 내가 원하는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다. 해야만 하는 글쓰기에 여전히 압도당해서였을까.
바꿔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해에는 자신의 삶에 근거해 글을 쓰는, 은유 작가의 글쓰기 수업을 두 달 간 들었다. 다른 수강생들의 글도 보고 나의 글도 써냈다. 대학 입시를 위해, 취업을 위해 하는 글쓰기가 아닌 '글쓰기 수업'은 처음이었다. 그 편안하고도 솔직한 분위기와 글들이 새롭고도 좋았다. 그때 나는 내 삶에 근거한 글을 써서 공유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 생각을 보여주는 것에 두려워한다는 걸 깨달았다. ‘일기에 쓸 걸 왜 이런데 써’라며 공감받지 못할까봐. 스스로 그런 생각에서 많이 벗어나야한다.
잘 쓰려면 많이 써야한다. 그러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브런치 계정만 만들어두곤 글은 없었다. 자책하다가 드디어 이번 3월 김민섭 작가를 멘토로 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을 신청했다.<대리사회>를 통해 김민섭 작가의 글을 처음 봤다. 매 페이지마다 엄청나게 공감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읽은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 자신이 처한 시스템의 부조리한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지점이 참 좋았다. 회사에서 겪은 스트레스, 분노들을 혼자서 끄적여 볼 때면 나는 그런 태도를 견지하기가 참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하는 곳에서 매일 글을 쓴다. 기자로서, 기사라는 글을. 근데 그 기사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나는 프로그램을 보고 의미를 짚어내는 리뷰나, 다른 기자들과는 다르게 나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인터뷰들이 너무 좋았다. 그런 기사를 쓸 땐 보람과 행복이 가득하다.
그런데 새로운 상사는 내게 그런 기사를 쓸 틈은 전혀 주지 않은 채 마치 사회부 기자처럼 취재하는 일들만 잔뜩 넘긴다. 입사한 지 1년 10개월이 지나 마주한 새로운 상사는, 이전까지의 상사들과는 180도 다르다.적응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5개월을 버텨본 지금. 그러기 어렵다는 걸 이제야 다시 깨닫고 있다. 내가 쓰는 글에 대해 칭찬은 정말 단 한 번도 없고 비난만 쏟아내는 그 상사를 마주하며.... '회사를 그만두면 너는 내가 절대 안 본다. 내가 너보다 더 좋은 글 쓰고 더 행복해질거다. 그렇게 살지마'라는 생각이 든다.*
3월에는 독립출판물글쓰기를 신청해서 듣고 있다. 그 수업에서 '솔직한 이야기는 지루할 틈이 없다'는 이야기가 와닿았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시간에 글도 써보고, 쓴 글을 낭독하며 나눠보는 경험은 참으로 새롭고 좋다. 그들이 쓴 솔직한 이야기들은 역시나 너무 재밌다.
나는 그동안 솔직한 이야기의 그 경계,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것과 혼자만의 일기에 머무는 것. 그 경계를 잘 알아야할텐데라는 강박이 심했다.
일단은 매일쓰기를 잘 해봐야겠다. 5일엔, 첫번째 글로 '글 쓰는 사람'을 올렸다. 매일매일 꾸준히 쓴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이번주는 매일 야근이었다. 그래도 퇴근하고 집에 와서 자기 전 30분이라도 투자해서 늘 썼다. 아직 일기같은 글 같지만, 일단 써야한다는 생각에 썼다. 매일 원고지 5매의 글을 쓴다는 게 이렇게 어렵다는 걸 일주일 동안 깨달았고, 30일 동안 해낸다면 뿌듯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계속 써야겠다.
김민섭 작가님의 댓글
: 안녕하세요 보라님, 글로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읽으면서 참 정갈하게 글을 쓰신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글쓰기를 손에서 놓을 기회가 없으셨군요. :) 저도 돌아보면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글쓰기가 있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언제나 글을 쓰고 읽어야 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내가 왜 논문만 쓰고 읽고 있지...’하는 막연한 아쉬움이 있었고, 그것이 <지방시>나 <대리사회> 같은 ‘나의 글’을 쓰는 데로 이어지지 않았나 합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저는 ‘논문’이라는 글만 10년 가까이 읽고 써 왔어요. 정갈하게 글을 쓰는 연습만 아주 오래 해 온 셈이에요. 그리고 지금 저의 이야기를 쓰려고 하니까 무언가 해방된 것처럼 즐겁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데, ‘타인’을 상상하는 것이에요. 나의 이야기일수록 타인을 의식하며 써야 하는 것이, 감정이 격해지고 의식의 흐름 대로 글이 나아가기 쉬워요. 지금 쓰신 글처럼 한 발 떨어져서 나를 관조하고 담담하게 서술하시면 더욱 힘이 있는 글이 될 것입니다.
2018. 03.12.월요일의 메모
: 으앗! 김민섭 작가님이 댓글을 달아줌 ㅠㅠ 마음이 따뜻해졌다 팍팍한 일터에서… 글이 정갈하대! :) 오늘도 매일쓰기 잘 해보자. 독립출판글쓰기도 해보고. 읽어주고 공감받으면서 힘을 얻었다.
*현재 - 최대한 분노를 자제한 글인데, 그래도 화가 느껴진다...!ㅎㅎ
2024년 6월 6일 현재의 코멘트
: '글을 쓰고 싶어서'라는 이 글은2018년에, 그동안 어떤 글을 써왔는지를 적은 글이다. 살아가면서 이렇게 정리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때에 이렇게 쭉 정리를 해봤었구나. 시간이 좀 흐른 뒤에 다시 읽어봐도, 내가 쓴 글이지만, 재미있다. 이 글에 이어서 이후에 2019년부터 지금까지... 또 어떤 글들을 써왔는지도 적어도 좋을 것 같다. 글을 쓰고 싶어서 2.
그리고 계속 보이는 단어가 '압도'. 나의 이야기를 쓰기엔 마음의 저항이 컸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랬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도 책을 읽을 때든, 글을 쓸 때든 크게 압도당하지 않고 일단은 읽어보고 써보면 좋겠다. 굳이 어려운 책을 읽어야 멋지고 삶을 잘 살아내는 게 아니니까. 자신이 읽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그렇게 소통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나는 좋아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