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서율 Mar 12. 2024

파묘

두 번 보고 안 쓸 수 없는 감상평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나와서 뭔지는 몰라도 후련한 감이 있었다. 그동안 안 보려고 노력했던 스포들을 찾아봐도 되겠구나! 싶은 마음과, 생각보다 길지 않았던 러닝타임. 너무 많은 리뷰를 찾아봐서 지금에 쓰는 이 감상평이 내 생각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는 마음이지만, 한 글자 적고 싶었다. 한 번 봤을 때랑, 두 번 이 영화를 봤을 때, 보이고 느껴지는 게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영화를 봤을 때는 '이건 뭐지. 오컬트를 빙자한 항일 영화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원래도 무속 신앙에 관심이 많은 나여서 (아주 오래전에 극장에서 본 '영매'라는 다큐멘터리를 매우 좋아한다) 굿하는 장면이다 장례 모시는 거, 산소탈 이런 소재가 다 너무 좋았달까 (혼 부르기 장면, 도깨비굿 하는 장면도)  이제는 기억 저편에 남은 관혼상제에 관한 이야기 - 죽음은 늘 삶과 맞닿아 있으며, 순환하고 인간사에 늘 등장하는 것이어서 나는 이런 소재를 좋아한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그 사이의 시공간이 약간은 존재한다는 것도 - 가끔 이런 걸 좋아하는 내가 더 무섭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중에 찾아보고 알게 된 사실인데 영화 속에 등장하는 비명 소리나 울음소리, 단발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형상 등은 무속인의 입장에서 보이고 들리는 것들을 잘 표현했다고 하더라. 두 번째 영화를 봤을 때는 이 부분을 더 신경 써서 보고 들으려고 했었다. 새롭고 유일무이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서.


영화 네 번째 챕터 시작하면서 '경로를 이탈합니다'라고 나온 후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로 영화가 진행된다. 거기서부터는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이야기라서 끝까지 몰입이 되었다. 동 이야기나 음양사 이야기도 더 들어보고 싶었는데 - 이건 실제로 일본에서 찍은 부분이 있다던데 후에 편집되었다고 들었다 - 일제 강점기 때 쇠말뚝으로 우리나라의 정기를 끊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아니었으니까.. 그것이 허구이든 사실이든, 진실처럼 촤라락 펼치는 영화감독님의 힘에 감탄하며 보았다. 남산 아래에다가 조선 신궁을 만들었었다는 건 몰랐던 사실이었다. 지금 양국의 관계가 어떻든, 그 36년 동안 참으로 교활하게 한민족의 문화를 그들 것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부단히도 해온 게 욱일승천하의 일본이었다는 건.. 일본 노래, 영화, 문화, 언어 속에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향유하는 나에게도 치를 떠는 일로 다가온다. 잠깐 이야기가 새지만 대학교 다닐 때 우리 대학교로 언어 연수를 온 일본인 학생들에게 방과 후 활동을 통역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전쟁 기념관에서 위안부의 존재와 흔적을 처음 발견한 아이들 - 그중에 특히 재일 교포였던 아이- 는 몰랐던 역사 앞에서 엉엉 울며 자신의 충격을 표현했었다. 그리고 그걸 보는 나 또한 이런 사실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는 일본의 사실에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로 이 영화를 봤을 때는 군더더기가 없고, 장면 전환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서 음양을 표현하는 것, 오컬트 영화에 어울리는 음산함. 심지어는 영화에 나오는 개와 닭까지도 연기를 잘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135분이라는 러닝 타임은 두 번째 봤을 때도, 길다는 생각이 안 들게 재미있었다. 다만 두 번째 보고 나니 단순히 이 영화는, 민속 신앙, 조상, 첩장 이런 이야기뿐 아니라 우리가 잊어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게 느껴졌다. 반일 사상 이런 거 떠나서 우리에게 있었던 사실 가운데 지금 우리가 잊어버리고 사는 건 얼마나 되는지, 일본 음악이나 문화랑 별개로 역사상으로 있었던 일들을 잊으면 안 된다 싶었다. 내가 사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일본의 전시 만행을 기억하고 있어서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고, 조상이나 귀신  이야기 관련해서는 나름의 안목(?)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 아닐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인도네시아에서 많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들었다. 나의 싱가포르 친구와 두 번째로 이 영화를 봤을 때 그녀는 이 나라에도 이장/파묘 문화가 있다고 했다. 땅을 사서 산소를 쓰면 재개발이나 기타의 이유로 15년 후에는 나라에 귀속시켜야 해서, 풍수사랑 이장/파묘 상품을 패키지로 판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사후 세계나 조상의 묘가 편해야 자손이 편안하다고 믿지 않는 정서는 전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정령, 음양사의 이야기는 워낙 그동안 일본 만화나 영화의 소재로 많이 등장했던 것이지만 새삼 오니의 형태로 발현되니까, 그동안 너무 미화되었던 이미지는 아니었나 싶었다. 실제로 이를 역사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면 정말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인데, 여하튼, 여우나 까마귀가 일본 문화에서는 길하다는 사실도 한국 정서랑은 맞지 않는 것이니.. 한국과 일본은 같으면서도 너무 다른 나라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일본 귀신은 한이나 이유 없이도 닥치는 대로 주변에 다가오는 사람들을 죽이고, 한국 귀신은 한을 풀려고 그 사정을 따져 복수한다는 것도..  '주온' 같은 영화랑 '파묘'를 비교해 보면 정말 그러하다. 그러나 한일 감정을 떠나 서로의 문화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것부터가 서로에 대한 예우인 거 같기는 한데, 아무래도 이 영화는 일본인 친구와 보기는 좀 껄끄럽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영화 통틀어 제일 소름 돋았던 장면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니에게서 무속인 화림을 지켜누는 할머니가 소복 입고 쪽지고 등장하신 장면. 그분의 등장 자체가 민족의 정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조상이 지켜주신다는 정서가 느껴져서 좋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 할머니가 위험에서 지켜주신다는 말 나도 살면서 느껴본 적이 있어서. 그래서 오니가 '아노 쿠소 바바..' 하면서 혀를 끌끌 차고, 섣불리 화림을 공격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선까지도 정치나 역사 적인 것에 이용되지 말고, 그저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해석되길 바라는 영화이기도 하고, 조상을 기억하는 영화이기도 하고, 화림을 연기한 김고은이라는 배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이기도 했다. 세 번째는 아마도, 보러 가기는 힘들 것 같지만, 혼 부르기 장면으로 되돌아가면 '관에서 엄청 험한 게' 나왔다고 표현하는 화림이 있는데.. 아주 오래전 절에서 하는 의식에 갔다가 비슷한 기운이 내 옆을 스치고 나가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그 한기는 인간의 세상에서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잘 알고 싶지는 않지만 궁금하기는 한 망자의 세계. 그것에 관해 잘 풀어준 한풀이 굿 같은 한 편의 영화였다. 덤으로는 독립 운동가분들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낡은 티켓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