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서율 May 12. 2024

현실과 이상의 괴리

민희진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내 덕력은 약.. 26년 정도 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돌판(아이돌들의 판)에서 팬덤 문화를 알게 되고 하이브 소속의 어느 그룹을 좋아하게 된 건 최근 2년 정도였다. 덕후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하는 말이 있다. 한 번도 덕질 안 해본 이는 있어도, 한 번만 덕질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시대가 돌고, 유행이 변하고, 아티스트도 진화하지만, 덕후들은 대상을 바꿔가며 팬덤에 열정을 쏟는다. 열정. 그게 내 안에 얼마나 들어 있는지 알면, (어떤 계기든 간에) 나라는 존재 자체의 포텐이 어디까지 터지는지 목도하고 놀라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기 마련이다. 물론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여럿 있었고, 가장 긍정적이고 생산적으로 터진 건 일본어를 배워 그걸로 돈을 벌 수 있는 수단까지 되었다는 것이지만.


덕질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일을 하고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살면서 점점 메말라 가는 내 열정 게이지를 보며 환멸을 느끼는 요즘의 스트레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민희진이라는 사람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마치 나도 그녀처럼 뭐 하나에 완전히 열정을 불사르는 일을 할 수 있었다면. 나는 참 행복했을 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한국의 개저씨 문화, 일하고서도 성과를 빼앗기는 것, 사내 정치 등등이 싫어서 외국에 나와 굳이 외국계 회사만 찾아 일하는 내가 봐도, 열정 많은 한 인간으로서 환멸 많이 느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참 동안 그 영상을 찾고 또 찾아보았다. 동정과 함께 부러움도 일었다. 위에서 언급한 이유로. 나는 내가 하는 일에서 10년을 있었지만, 그 일에 내 심장을 던지지는 않았다.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며, 내가 가진 스킬의 몇 가지만 쓰면서 받을 수 있는 돈의 최대치를 받으려 했을 뿐이다. 그러기에 맨땅부터 헤딩한 것도 사실이다.


왜 항상 잘하는 일을 업으로 두고 좋아하는 건 이상으로 남겨두어야 했을까?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젊은 나이에 덕질을 하며 해외를 돌 때, 그 열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했다면. 그 곁에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알려주는 멘토가 있었다면, 나는 좀 더 포텐 터지는 인간이 되었을까? 공부로 성공해 보고 싶었던 나는 유학이 엎어지면서 해외로 취업한 케이스이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참 곰처럼 살았던 것 같다. 좀 더 여우처럼 기민하게 살았으면 지금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민희진과 돌판에서의 대립각을 보면서 때 아닌 감과 투사를 하고 있었기에, 지난 일주일 참 다이내믹했다. 동시에 나의 회사 일도, 개인적으로 내 생일도, 이 주간에 뜻하지 못한 곳에서 받은 축하와 애정이 느껴지는 말들 모두가 내가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게 했다. 어린 나는 너무 빨리 어른이 되려 했지만, 어른의 가면을 쓰고 살면서도 아이의 마음을 버리지는 못했던 게 내 현실과 이상의 괴리였던 것 같다. 나 혼자 투명하다고 투명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님을 뼈저리게 깨달은 해외 생활 15년 차. 감사한 마음과 함께 지금 이 회사는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혹은 다녀야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몇 글자 남겨본다.


부디 내년에는 내가 좀 더 자아실현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찾게 되길, 내 열정을 생산적인 것으로 풀어낼 수 있길, 비슷하게 투명한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파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