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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난요가 Apr 02. 2024

지리산 고차수

한국전통녹차


겨울의 끝자락, 움츠렸던 마음 안으로 화엄사 목탁 소리가 울려 들어오고 걸음을 옮긴 곳에서는 노란 산수유 꽃이 따뜻하게 파고드는 구례의 春.

봄을 몰고 온 산수유 풍경에 지리산 제다인들의 마음도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연둣빛 이파리들이 가슴을 설레게 하는 茶의 계절이 돌아왔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나면 지리산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야생 차나무 산지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바람소리 같기도 하고 새소리 같기도 하고 눈 밟는 소리 같기도 하다. 

이 모든 소리를 담은, 비를 머금은 깊은 뿌리에서부터 봄기운이 올라오는 소리다.


찻잎이 막 올라오면 가장 어린 그 잎을 따서 덖는다. 첫물차다. 보통은 첫물차의 맛을 최고로 치는데  첫물차의 맛을 좌우하는 성분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어린잎은 탄닌의 함량이 낮고 감칠맛과 단맛에 기여하는 테아닌 Theanine 함량이 높다.


구례 지리산 자락의 찻잎으로 덖은 첫물차는 어떨까.


바위틈, 대나무 밭 사이, 오래된 소나무와 어울려 함께 자라고 있는 구례의 야생 차나무.


지리산의 야생찻잎은 보는 것만으로도 그 에너지를 받아 힘이 난다. 가지런한 차밭에서 열 맞춰 자라는 차나무와는 아주 다르다. 깊게 뿌리내린 차나무가 끌어올린 성분은 어리지만 않은 찻잎에 가득하다. 암반 틈의 차나무 수령은, 1200년까지도 보고 있다.

이 야생차가 가지고 있는 기운이 아홉 번의 덖음을 통해 거듭난다. 야생 특유의 깊고 진한 풍미는 구증구포의 법제로 최대한 끌어올려진다.


지리산 고차수 첫물차가 감미롭고 매끄러우며 풍미가 좋은 이유다.

볕이 머물렀다간 촉촉한 차밭의 흙은 숲 속 생명들이 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 낸 보고이다. 이 흙내음이 일 년 내내 머릿속을 나다닌다. 나다니다가 다른 여러 기억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우리가 땅을 밝고 공기를 마시고 계절을 경험하고, 지나온 삶 속에서 흘려보냈던 것들이 고차수 작설차를 만나면 기억의 타래가 풀려 그날의 경험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 할머니 손을 잡고 오르던 소나무 숲, 엄마의 품, 비릿한 바다,  달콤 쌉싸름한 기억..


고차수 첫물차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막 덖어 낸 첫물 햇차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맛과 풍미는 물론이고, 어느 순간 어느 날의 기억이 코끝에서 입안 가득 퍼지고는 곧 온몸으로 다가오는 경험. 아마도 지리산의 기운과 찻잎에 기울인 수많은 신심과 공력이 닿고 닿아서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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