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난요가 Nov 29. 2019

예고된 살인

한 사람이 그저 자본의 도구로 이용되었다는 사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누군가가 남긴 숙제는 다시 우리가 풀어야 한다. 죽지 못해 견디며 살아내는 이들이 그들을 죽게 만든 시꺼먼 힘에 다시 맞서야 한다. 그래서 화가 나기도 했다. 그를 사지로 몰아넣은 상황과 사람들, 견디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그에게.


하지만 무엇보다 그를 죽음까지 몰고 간 근본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누구의 잘못인가?  그는 그의 인생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사람이다. 그런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스스로 자기 목에 칼을 채우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한, 죽음을 택하지 않고서는 숨을 쉬어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나.


지금 이 순간에도 힘들어서 자살을 결심하고 목숨을 내던지는 모두에게 같은 이유는 있다.  한 사람이 그저 자본에 의한 도구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이다. 그의 정의감, 그녀의 공감 능력이나 인간애, 그의 꿈이나 희망을 향한 노력들, 아니 존재 만으로도 소중한 그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고작 권력, 지위, 외모, 학벌, 재력 따위의 것들이었다. 그 사회의 잣대가 엉망이라는 것을 그들이 알았다 하더라도 자본의 잣대로 재단해대는 생각과 말과 행동들은 엉키고 엉켜 그의 숨통을 조여댔을 것이다.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라던데 자살률이 높은 것도 소속 조건에 들어가는가? 자살률이 높다는 통계는 갑작스러운 일도 아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연예인 죽음으로 이슈화가 되고 있긴 하지만 생활고로 힘들게 하루를 버티타 목숨을 내어놓거나, 건설 현장이나 공장에서도 많은 노동자들이 점검되지 않은 위험한 환경에서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삶에서 추락한다.  또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만 없었지 언제고 터질지 모를 위험한 현장임을 알고도 나를 밀어 넣을 수밖에 없었던 예고된 살인이며 자살이나 마찬가지다.


신문에 기고한 작가의 말대로 매일 노동현장에서는 소중한 목숨들이 스러져가고 있으나 책임을 지는 윗분들은 없다.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가난하고 힘없는 노동자의 목숨이라서인가?


많은 이들이 물질적으로 심리적으로 위험한 환경에 처해 있음에도 보살펴주는 장치가 마련되어있지 않다. 아니, 자본의 시장은 서로를 챙겨줄 여유마저 없애버렸다. 경쟁 대상과 도구로만 바라보는 현실에서는  삶의 끈을 놓기 직전에도 붙잡을 무엇이 없다.  예고된 죽음이 언제고  일어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개인의 마음이 아무리 단단해도 무너지는 것은 순간임을 많이 봐왔다. 그리고 보이는 행복한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주변의 사람들을 한번 더 바라봐 주는 것뿐이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하늘도 발아래 두고 싶어 하는 정치인들과 자본가들에게는 고통에 허우적 대는 민중은 안중에도 없으니 우리끼리라도 서로를 좀 보듬고 토닥여야 하지 않을까.


누구의 별것 아닌 행동들이 힘이 되어주는 날이 내게도 많았음을 상기시켜본다. 그리고 힘들다고 말하는 용기를 내기가 힘들지만 얼마나 중요한지도 안다. 힘들다고 나를 찾아와 준 친구에게 한없이 고마움을 느꼈었고 오히려 내가 더 힘을 낼 수 있었으니까. 사소하고 식상하지만 내가 건넨 한마디 말이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어보는, 그런 우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웃 오브 아프리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