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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난요가 Dec 10. 2019

씨앗처럼 용감해질 것

씨앗이 껍질을 뚫고 세상으로 나오듯,

나무에 대해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본격적으로 책을 보기 시작한 지 두어 달이다. 조금씩 익숙한 용어들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아직 낯설기만 하다.  새로운 상황에 도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기존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서 생긴 익숙하지 않은 불편함도 있지만 알 수 없는 미래와 그보다 더 어려운 인간관계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다.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해야 할 일들이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앞이 컴컴했다. 안일하고 싶지 않았고 안주하고 싶지 않아서 시도하고 선택한 일인데 또다시 지치고 힘들어하는 상황에 정면 돌파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실수를 반복할까 봐 불안하다.


불안을 다독이는 방법으로 종종 하는 '산속 캠핑'으로 마음을 다잡아 보고 싶었지만 그도 여의치 않아 장거리 버스를 타기로 했다. 무작정 버스표를 끊고 터미널 근처의 서점에서 급하게 고른 책을 들고 버스에 올랐다. 우종영 나무의사의 '나는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라는 책이다. 책 한 권을 들고 오른  버스 안의 10번 좌석은 나만의 공간이다. 그 작은 공간에서 느끼는 안도감 따위도 내게는 위로가 된다. 의자를 조금 뒤로 젖히고 외투를 벗어 덮고는 10여 분간 자리에 적응을 하고 책을 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모두 읽고 내려오는 길에도 몇몇 부분을 다시 펼쳐 보게 했다.


씨앗처럼 용감해질 것
씨앗 안에는 오래도록 씨앗으로 존재하려는 현재 지향성과 껍질을 벗고 나무로 자라려는 미래의 용기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것은 좋은 환경이 올 때까지 기다리려는 힘과 언제든지 싹을 틔우려는 상반된 힘이 씨앗 안에서 갈등하고 타협한다는 증거다. 긴 기다림 끝에 싹을 틔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씨앗은 결국 나무가 되지 못하고 그냥 생을 마감한다. 한 예로 자작나무의 경우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도 씨앗에서 싹이 트는 발아율은 고작 10퍼센트 남짓이다. 두렵지만 용기를 내 껍질을 뚫고 나오는 씨앗만이 성목으로 자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싹을 틔우려는 씨앗의 기적은 그저 맹목적인 기다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용기 있게 하늘을 향해 첫발을 내딛지 못하면 기다림은 결국 아무련 결실을 맺지 못한다.(중략)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끈기 있게 기다리는 자세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기다림 그 자체만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작은 씨앗이 캄캄한 흙을 뚫고 세상 밖으로 머리를 내밀듯, 우선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 나아가려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새로운 시작은 두렵고 떨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살아보니 틀린 길은 없다. 시도한 일이 혹시 실패한다 해도 경험은 남아서 다른 일을 함에 있어 분명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조금은 무언가를 해 볼 여지가 있다면, 씨앗이 껍질을 뚫고 세상으로 나오듯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거목도 그 처음은 손톱보다도 작은 씨앗이었음을 잊지 말기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그 무엇에 대한 시작과 시도는 설레지만 그 설렘은 또 다른 불안의 일부다. 짐작하기 어려운 새로운 관계들은 의심스러운 질문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그런 스스로를 지치게 한다. 나처럼 새로운 시작을 많이 시도해 본 사람도 헤어지는 것만큼이나 시작은 어렵다.  그래서 어떤 씨앗은 컴컴한 땅속을 뚫고 나오는 데 수백 년이 걸리기도 한다는 우종영 나무의사의 글귀가 여운으로 남는다. 


살아보니 틀린 길은 없다.

시도한 일이 혹시 실패한다 해도 경험은 남아서 다른 일을 함에 있어 분명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조금은 무언가를 해 볼 여지가 있다면, 

씨앗이 껍질을 뚫고 세상으로 나오듯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사실 인간의 삶과 새싹을 비교하기에는 너무 낭만적일 수 있다. 돈으로 돌아가는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내느라 새싹이 나오는 계절을 잊고 살기도 하거니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마음도 모르겠어서 당황할 때가 많은 우리니까.  손으로 튕기면 떨어져 나갈 듯한 연한 이파리가 대지위에 머무르고 있는 뜻을 알리 만무하다.  새싹이 땅 위로 자신을 드러내기까지 닥쳐 겪었던 수많은 상황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시작하기까지의 용기 내기가 쉽지 않다는 공통의 분모가 있긴 하지만 사람에게는 욕망이라는 -어떤 때에는 어마어마한- 감정이 그것을 부추기는 자본의 화려함에 취해 땅을 뚫고 올라온 새싹들을 짓밟기도 하니까. 


인간이 베어버리고 뽑아버리면 그만인 한낱 풀이고 나무지만 땅속 씨앗에서 시작해서 땅 위아래에 우직하게 뿌리내려 숲을 이루고 숲 속의 다양한 삶들과 어울려 살고 있는 나무, 그래서 더욱 나무의 본성을 다시 상기시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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