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난요가 Apr 16. 2019

독한 년

아니, 겁쟁이

독한 년,
독한 년이라는 말이 듣기 좋을 때가 있다. 나이가 차니 더 그렇다. 사람에 치이고 일에 매달려 살아도 '독한 년'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묘 하게 기분이 좋더라. 싸구려 위로조차도 받기 힘든 때에도 이 말을 들으면 1초 즈음 웃을 수 있었다. 구겨진 자존심의 한 모서리가 독한 년이라는 소리에 펴지기라도 하듯.

흔히들 말하는 '사랑'이라는 (나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감정 때문에도 독한 년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했던 때가 있었다.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아리고  심장이 저려왔지만 그를 밀쳐 냈다. 그를  향하 던 마음을 일부러 구겨버렸 던 나는 독한 여자인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상상 만으로도 울음이 났지만 그 인연에 검은 천을 덮어버렸던 나는 정말 독한 여자인가.
 
도대체 다가올 시간들이 그를 바라보고 는 당장보다 얼마나 더 중요하다고 말도 안 되는 아픔까지 감수해 가며 좋아하는 사람과의 만남도 스스로 지속시킬 수 없었다는 말인가.

독한 년이 되고 싶었겠지만 아니었다. 진짜 독한 년은 인연이 악연이 될지라도 당장의 그와 함께 하기 위해 용기를 냈을 것이다. 나처럼 허울만 독한 척, 속이 곪아가도 아물기만 기다리는 겁쟁이에게는 애초에 자격조차 없었을 지도.
 
훗날 아무렇지 않게 마주치는 날이 올까 봐,
그런 허무한 날이 다시 인연이 될까 봐,

이렇게 추체 하기조차 힘들 만큼 울렁거리는 그에 대한 감정이,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가슴에서 머리 끝까지 떨리는 이 느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날이 올까 봐,

두려웠던 나는 실은 겁쟁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씨앗처럼 용감해질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