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미 없는 생각 정리와 함께 ]
그간 브런치를 소홀히한 걸 반성합니다. 나름의 검증을 거쳐 생기는 운영자의 자격인데 말이죠. 그래도 음악은 항상 듣고 있었습니다. 음반은 매일 새로 나오는 걸 한 개 이상 꼭 챙겨 들었고요. 개인 인스타그램(@huedsoul)에 공유하면서요. 과거 음악에만 집착하고 새로운 걸 등한시하는 애호가를 자주 봤는데, 그 모습이 좋게 보이진 않았거든요. 항상 그게 마음속에 자리 잡아 기척하는 바람에 매우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쩌면 음악으로만 꾹 눌러 담을 수 있었던 어린 시절 예민했던 감수성이 세월을 겪으며 여러 자극과 조우하거나 직접 부딪혀 더는 수용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또는 어떤 분야에서든 더 알아가고 깊어질수록, 사고의 루틴이 생기고 점점 굳어지기 때문에 아집과 독선을 경계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경험이 많아질수록 수용 폭도 넓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이니 희한합니다. 마치 모두가 좋아하는 깔끔하고 대중적인 패셔니스타가 어느 순간 빈티지에 매혹되어 범인에게는 마냥 볼썽사납게 비치는 차림으로 돌변해 ‘그들만의 리그’로 들어서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게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후 드러나는 사고와 태도의 차이가 극명한 반응을 끌어내는 건 확실합니다. 선민의식과 현시욕이 만나 스스로 모순을 만들어내는 마니아를 여럿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들과 함께하다가 괜한 경쟁에 뜻하지 않게 휘말려 곤욕을 치르는 때도 있었습니다.
이미 저도 음악에서만큼은 다이아몬드처럼 견고한 감정과 사고의 루틴이 있다는 걸 압니다. 다행히도 새 음반을 향한 호기심은 아직 사그라지지 않아서 매일 찾아 들으면서도 그게 어떤 형식인가 하는 잣대를 늘 조건반사처럼 들이대고 있었지요. 어느 순간 인식의 해방을 바라면서 온전히는 아니더라도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낍니다. 그러면서 다시 새 음반을 찾는 즐거움이 커지고, 따라붙는 잣대의 높이가 점차 낮아지는 걸 알아차립니다.
그간의 생각을 풀어보니 참 허망하네요. 어찌 변할지 모르는 얄팍한 속내를 드러내는 것만큼 무의미한 게 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일상에서 만난 음악을 개인적인 서사에 맞춰 브런치에 늘어놓고자 합니다. 즉, 그간 찾아 들었던 새 앨범을 공유하는 내용입니다. 거기서 소수이건 다수이건, 유대감을 느끼는 이들과 함께 꾸준히 이 즐거움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앞서 브런치에 올려두었던 형식의 글도 함께 섞어가며 말이죠. 나열된 음반에 관한 각자의 소감이 댓글로 달리면 더 즐겁겠지요. 이번엔 취향을 기준으로 두고 기억에 남은 앨범들로 채우겠지만, 앞으로는 주간이나 격주 단위로 들었던 앨범을 전부 올려보도록 노력할게요.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들은 2021년 새 앨범 중에 기억에 남는 게 꽤 많아서 연례 결산하는 마음으로 추렸습니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건 그린티 펭(Greentea Peng), 솔트(Sault), 토니 캔엄(Tony Cannam), 로라 음불라(Laura Mvula), 르 플렉스(Le Flex), 조엘 컬페퍼(Joel Culpepper), 셀레스트(Celeste) 등 영국 음악인들의 약진입니다. 어느샌가 '소울이 있는(Soulful)' 분위기를 본토라 할 수 있는 미국보다 더 깊게 드러냅니다. 과거엔 '미국식 음악'이던 게 인제 '영국식'이라고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럼, 아래 그간 들었던 2021년 새 앨범 중 몇 개를 추려봅니다.
먼저, 옛 느낌을 고스란히 담은 복고 지향적 음반들이 있습니다. 아론 프레이져(Aaron Frazer)와 그가 드러머로 활동 중인 밴드 '뒤랑 존스와 인디케이션즈(Durand Jones & The Indications)', 제브 로이 니콜스(Jeb Loy Nichols), 델본 라마 오르간 트리오(Delvon Lamarr Organ Trio), 토니 캔엄이 인상적이더군요. 달곰한 음계에 부드러운 팔세로토 노래하는 팀이 있는가 하면 과거 부커 티 존스(Booker T Jones)의 음악처럼 역동적인 재즈훵크(Jazz-Funk)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특히 아론 프레이저의 〈Bad News〉는 인종 차별, 바이러스, 환경 문제 등 이 시대에 인류가 직면한 위기에 관심을 두자는 노랫말로 깊은 울림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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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Aaron Frazer 『Introducing...』
[Album] Durand Jones & The Indications 『Private Space』
[Album] Jeb Loy Nichols 『Jeb Loy』
[Album] Delvon Lamarr Organ Trio 『I Told You So』
[Song] Tony Cannam 〈Fire Knows Only To Burn, Pts. 1 & 2〉 of 『The Re-Set Trilogy, Pt. 1』
과거 특정 형식을 현대적인 느낌으로 재해석한 음반도 있습니다. '80년대 전자 음악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로라 음불라와 르 플렉스가 있고, '90년대 얼반(Urban) 음악이 바탕이 된 밴제스(VanJess)도 빠질 수 없습니다. 로라 음불라는 지난 앨범들과 비교하면 매우 색다른 모습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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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Laura Mvula 〈What Matters〉 of 『Pink Noise』
[Album] Le Flex 『Pay Close Attention』
[Song] VanJess 〈Love & Hope〉 of 『Homegrown』
여러 형식을 한데 묶어 하나의 일관된 소리로 재구성한 음반도 있습니다. 가빈 튜렉(Gavin Turek), 조엘 컬페퍼, 솔트, 셀레스트, 올리비에르 생루이스(Olivier St.Louis)의 앨범이 그렇습니다. 디즈니 영화 〈소울〉(Soul, 2020) 사운드트랙 수록곡 〈It's All Right〉으로 국내에 익숙한 영국의 셀레스트는 평단에서 '제2의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라고 불린다는군요. 솔트는 앨범 『Untitle (Rise)』를 작년 최고의 음반으로 꼽았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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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Gavin Turek 〈All Of The Noise〉 of 『Madame Gold』
[Album] Joel Culpepper 『Sgt Culpepper』
[Album] Sault 『NINE』
[Song] Celeste 〈Tell Me Something I Don't Know〉 of 『Not Your Muse』
[Album] Olivier St.Louis 『Matters Of The Heartless』
2019년 최고의 앨범으로 꼽았던 브리타니 하워드(Brittany Howard)의 『Jamie』를 아직도 기억하는데, 각 트랙을 다른 이의 감각으로 재구성한 옴니버스식 음반을 내놓아서 반가웠습니다. 역시 원작과 비교하며 듣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베니 싱즈는 늘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기에 평소 그의 음악을 즐겨듣고 좋아했다면 기대한 만큼의 즐거움을 만끽할 듯합니다. 닉 하킴(Nick Hakim)은 '브루클린(Brooklyn)'이라는 복잡한 터에서 초연한 듯 되똑하니 서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음악인입니다. 이번 합작 앨범에서도 특유의 우울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본인만의 확실한 아우라를 뿜어냅니다. 스스로 사이키델릭 알엔비(Psychedelic R&B)라고 말하는 그린티 펭은 에리카 바두(Erykah Badu)를 떠올리게 합니다. 오랜만에 '네오 소울(Neo Soul)'이라는 형식을 입 밖으로 꺼내도 무안하지 않을 음반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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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Brittany Howard 『Jamie Reimagined』
[Song] Benny Sings 〈Nobody's Fault〉 of 『Music』
[Album] Nick Hakim & Roy Nathanson 『Small Things』
[Song] Greentea Peng feat. Simmy & Kid Cruise 〈Free My People〉 of 『Man Made』
[Song] PinkSweat$ 〈Beautiful Life〉 of 『Pink Pl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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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x] Ver. 1
[Mix] Ver. 2
[Mix] Ver. 3
[Mix] Ver. 4
[Mix] Ver.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