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노트북을 보다가 우연히 2년 전 막내아들의 유치원 졸업 학예회 사진을 발견했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2년 전 겨울로 날아간다.
'엄마, 아빠 연습을 아주 열심히 했어요. 제 춤 보러 오세요" 삐뚤빼뚤한 빨간색 글자가 냉장고 벽면에
자석으로 고정되어 있다. 막내아들이 가져온 가나 유치원 예술제 초청장에 적힌 글이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코칭해 준것인지 알았으나 녀석에게 물어보니
"제가 직접 썼는데요"라고 당당하게 대꾸한다. 정색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행사 당일 아내는 병원 근무로 공연장에 오지 못했다.
늦게 집에 도착한 첫째와 둘째를 차에 태우고 부랴부랴 막내에게로 갔다.
이미 꽃과 선물 꾸러미를 든 아이와 부모들이 한가득 자리를 메웠다.
사회자 옆에 서있던 유치원 원장님이 인사말씀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정쩡한 시커먼 남자 셋 사이에 아내의 빈자리가 보였다. 하지만 막내가 저 무대 뒤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봄꽃의 꽃망울이 서서히 움트기 시작했다.
첫 번째 무대는 울긋불긋 색동옷을 입고 나온 아이들의 외국 민속공연이다.
사전 안내에도 불구하고 몇몇 부모들은 핸드폰을 가지고 무대 앞까지 진을 친다.
구부정하게 부동자세를 한 채로 핸드폰을 무대로 돌렸다. 사진과 동영상 버튼을 계속 누르고 중지하기를 반복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아빠다. 한 장면이라도 놓칠세라 핸드폰을 든 팔과 눈에 힘이 들어간다.
그렇게 후다닥 몇 개의 공연이 지나가고 한껏 멋을 부린 꼬마 아가씨와 꼬마 청년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자세를 가다듬자 가수 싸이의 '연예인'이라는 댄스음악이 무대를 울린다. 여자아이들의 분홍색 옷과 블랙과 하얀색으로 교차된 남자아이들의 옷 물결이 합쳐지면서 행사장은 환호의 도가니다.
음악에 맞춰 팔을 휘두르고 무릎을 굽혔다가 공중으로 뛰어오르기를 반복하면서
녀석은 그 순간에 빠져들었다. 온전히 몰입을 하고 있는 아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더니 눈 주위가 뜨거워지고 미지근한 액체가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내가 왜 이러지?'
'저 녀석 언제 저렇게 커버린 거지?'
시끄러운 음악이 아니었다면 오늘 주책바가지는 피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같은 유치원을 다녔던 첫째와 둘째 아이의 무대도 떠오른다.
첫째는 멍하니 관객석을 무표정으로 바라봤었고 둘째는 무서웠던 것인지 서럽게 울어버렸다.
이제는 조금씩 커가는 아이들 모습과 그걸 지켜보는 내 모습이 살며시 포개진다.
음악이 후반부로 갈 즈음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고 올라온다. 또 다른 가슴 한편에선 뭔가가 뭉클해지더니 이내 옥수수가 팝콘으로 터지기 시작한다. 음악과 몸이 하나가 되어서 무아지경에 빠진 듯 꾸밈없이
행복한 표정에 나도 모르게 달콤 씁쓸함이 베어 나온다.
무엇보다 녀석은 현재의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 순간은 그 어떤 걱정도 불안도 없는 오직 음악과 녀석만 있는 듯 보였다. 그 자체로 한편의 그림이다.
자신을 표현하는 몰입의 순간 내가 음악이 되고 음악이 내가 되는 순간이 바로 예술이지 않을까?
생생한 막내아들의 표정과 몸짓이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 같다.
막내의 춤은 마치 우리 삶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는 매일 일상의 무게를 버텨낸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말한다.
“고통의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삶을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삶을 받아들이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춤을 추듯이 살아야 한다.”
가볍게 산다는 것은 삶의 어둠과 무게에서 거리 두기를 하되 유머로 포장할 줄 아는 것이다.
아이들은 사소한 장난에서 웃음을 발견하고 어느 순간에도 자기감정과 상황에 충실할 줄 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다.
'녀석은 이미 진리를 깨우친 걸까?'
'오늘 우리도 어디 삶의 중력을 극복하고 한껏 여유를 부려 볼까나?'
어느 날 아내는 말했다. "넌 이제부터 김현수가 아니라 김웬수여"
삶은 가벼움과 무거움을 동시에 껴안는 일이다. 우울을 안고 웃을 줄 아는 여유를 부리는 일이어야 한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라는 유행가 가사도 있지 않는가?
공연이 끝나고 나오는 밤하늘에서는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다.
"오늘 정담이 고생했으니까 맛있는 거 먹자 뭐 먹을래?"
"치킨이요"
또 치킨이란다. 오늘은 현자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