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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초 Sep 11. 2018

캐나다에서의 한 달

  

첫 날. 첫 아침. 꽉 찬 하루. 일주일. 한 달.

여행을 하듯, 정말 오랜만에 시간의 흐름을 하루하루 세어보는 날들이었다.  

이제 꽉 찬 한 달이 지났고, 우리가 도착했던 여름의 한 중간을 지나 가을이 찾아왔다.


# 한 달간 무엇을 했나 


1. 쇼핑을 했다

거의 매일매일 마트(수퍼스토어, 세이프웨이, 한인마트), 중고샵(구세군, MCC), 코스트코, 이케아 등등을 배회하며 무언가를 샀다. 이 한 문장에 담긴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일단 가기가 쉽지 않다. 차가 없는 이에게는 두 발이 있으되 없는 것과 매한가지이며, 무언가를 사기 위해서는 누군가 베푸는 호의와 도움의 찬스에 의지해야 함을 의미한다. 캐나다에 막 도착했던 무렵에는 이것으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물건 하나를 결정하기 위해 여러 옵션을 저울질하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이러한 쇼핑 환경이란 얼마나 가혹한지! 천만다행으로, 처음 머물던 홈스테이에서 지금 집으로 이사온 후에는 큰 마트 두 곳이 버스로 가깝고 걸어서도 가능한 거리(30분)에 있어 많이 편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없는 것 투성이다. 좋은 소식은 8월 초에 한국에서 부치고 온 (무려 180kg에 달하는) 짐이 태평양을 건너 마침내 토론토에 입항을 했고, 이제 UPS를 통해 곧 위니펙 우리 집으로 배송될 예정이라는 점이다. 그러면 마침내 이불도 생기고, 베개도 생기고, 냄비도 생기겠지!!! 그리고 긴 바지도!!!!   


우리의 첫 안식처, 홈스테이


2. 이사를 했다

홈스테이를 떠나, 캠퍼스 기숙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정말 평화롭고 아름다운, 특히 도서관에서의 풍경이 너무나도 멋진 곳이다. 이사온 첫날 밤, 남편은 침대맡 창문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캠퍼스의 불 켜진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아, 우리가 정말 이곳에 왔네.

몇년 전 어느 밤, 이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언젠가 이곳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까, 막연한 바람을 이야기하던 남편에게 "그래, 한 번 가보자."고 말했었다. 그 날 이후로 캐나다 위니펙이라는 곳에서의 삶을 상상해보곤 했지만, 인터넷을 뒤져 찾아내는 정보로는 이곳에서의 삶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남편은 소원했던 공부를 할 수 있고, 나 역시 나대로의 삶을 찾아가리라 막연히 기대해볼 뿐이었다.

바로 그곳에, 지금 우리가 앉아있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대학 캠퍼스로 이사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진 상상하지 못했다. 여행지가 아닌 집 앞에, 이렇게 아름드리 나무가 있고, 새 소리에 잠을 깨고, 토끼가 그리고 심지어 사슴이 뛰어다니는 그런 풍경을.


3. 놀았다

공원에 놀러갔고, 동물원에 갔고, 위니펙 최대의 축제인 "folklorama"를 즐겼고, "Corn and Apple"이라는 그야말로 이국적인 타이틀의 축제를 구경하러 캐나다와 미국 국경마을을 방문했고, 갤러리와 박물관을 다녔고, 학교에서 (학생에게) 제공해주는 웰커밍 디너, 공원에서의 디너, 디저트 초대 등에 (가족도 환영한다 하여) 빠짐없이 얼굴을 내밀었고, 친구를 사귀었고, 실컷 늦잠을 잤다. 그리고 아주 간간히, 한국에서 마무리하지 못하고 온 일을 했다. 그야말로 캐나다와의 허니문 기간이었달까.  


## Welcoming, helping Community


우리는 캐나다에서의 정착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왔다. 무엇보다 우리가 거주할 위니펙의 추운 기후가 나와는 잘 맞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북극곰을 볼 수 있는, 아기곰 푸의 고향이라니 말 다했지). 아직 매서운 겨울 맛을 보지 않아서 장담은 못하겠지만, 이곳의 여름은 몹시도 아름답다. 눈부시다. 여유롭다. 활기차다. 내가 기대하고 예상한 것보다 백만 배 더 좋다. 그러면서 점점 2년 후를 생각해보게 된다.


캐나다, 혹은 위니펙에서의 삶을 상상해보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 토론토 공항에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어느 곳을 가든 뉴커머를 환영하고 기꺼이 돕는 사람들을 만났다. 모든 관공서가 어마어마하게 친절하고(심지어 이민성 직원조차), 버스기사도 항상 인사를 하고, 남편을 통해 만나게 되는 학교 행정실 직원, 교수, 교수의 아내, 친구, 친구의 친구, 친구의 친구의 가족, 친구의 친구의 가족의 친구들(!)까지 하나같이 놀라울 만큼 환대의 연속이었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자연스럽게 배어있는, 함께 어우려져 살아가는 문화를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이민자들의 나라답게, 아직 캐나다에 기여한 게 아무것도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캐나다에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건강 보험의 혜택을 누릴 수 있고(미국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 남편이 공부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work-permit을 주며, 캐나다 생활과 적응에 필요한 모든 정보, 직업 훈련, 영어 공부를 무료로 제공해준다. 위니펙에는 이민자들과 뉴커머들의 적응을 돕는 여러 정부기관, NGO, 센터들이 있고, 놀랄만큼 양질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나중에 캐나다에서의 생활이 오래 지나고 나면 익숙해져서 무덤덤해질지도 모르겠다. 원래 당연한 것처럼. 그러지 않기 위해서 적어놓는다. 이곳에 처음 도착해서 낯선 것 투성이었던 지난 한 달, 나에게 캐나다는 "돕는 공동체" 그 자체였다. 덕분에 막막하지 않았고, 외롭지 않았다.

인터내셔널 학생들을 위한 웰컴 디너 + 친구의 친구의 가족들에게 초대받은 저녁. '환대'라는 단어를 온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들


### 허니문이 끝나고 


남편은 학기를 시작했고, 나는 일상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마니토바 주정부(마니토바 스타트)에서 이민자들에게 제공하는 정착 서비스를 신청했고, 지난 화요일부터 과정이 시작됐다. 오전에는 캐나다의 헬스케어 시스템, 법, 노동 환경, 하우징 등을 알려주는 Entry Program을 듣고, 오후에는 직업 찾기에 초점이 맞춰진 Career Service를 받는다. 엔트리 프로그램에서는 다양한 정보가 소낙비처럼 쏟아지긴 해도 열심히 듣기만 하면 되니 부담스럽진 않은데, 커리어 과정은 만만치가 않다. 이력서, 커버레터 쓰는 법이나 인터뷰 스킬 등 단순한 테크닉을 배울 거라 예상했는데, 그보다 훠어어얼씬 넓고 깊은 주제를 다룬다. 캐나다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내 나라에서 해왔던 일을 여기서도 계속 할 수 있을까? 계속 하고 싶은가?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한다면, 어떤 일을 해보고 싶은가?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내 인생의 Goal을 무엇으로 세팅할 것인가? 이런 것들. 생각해보면 정말 중요한 문제이고, 이것이야말로 이민생활의 핵심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니토바 스타트의 커리어 서비스는 몹시 훌륭하다. 체계적이고, 퀄리티도 뛰어나다. 다양한 질문과 테스트, 리서치를 통해서 나의 현재 관심사, 기술, 능력, 경력, 가치 등을 파악하고 장기적 목표를 설정한 뒤, 그 과정에서의 직업 서칭 방법, 마스터 이력서와 타겟 이력서 쓰기, 인터뷰 기술 등등을 다룬다. 이 말인즉슨 정보량이 어마어마하며 과제도 무척 많고, 압박감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ㅠ 또한 이게 핵심일 수 있는데, 지금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 내가 계속 고민해왔던 부분들이기 때문에 그 고민의 연속선 상에서 생각이 많아지고, 과제 진도가 잘 안 나가서 스트레스를 꽤 받고 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꽉 차게 영어 강의를 듣고(한국 사람은 1도 없는 환경),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면 완전히 뻗어서 과제는 저 멀리....


한국을 떠나기 전에는 일의 분야에 대해서는 가볍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착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었으니까. 정보가 워낙 없기도 했고, 파트 타임으로 적당히 생활비 정도만 벌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캐나다는 직업 차별도 없고, 인건비도 높은 나라니까 몇 달간은 카페 같은 데서 알바를 해도 되지 않을까? 그러다 잡을 구할 수 있으면 좋고. 뭐 어딜 가든 먹고야 살겠지. 딱 이 정도의 생각이었다. 남편이야 유학이라는 확실한 베네핏(?)이 있지만, 한국에서의 생활, 직업 다 버리고 이렇게 덜컥 온 나를 보고 사람들은 대단하다고들 하는데, 내 삶은 늘 이렇게 단순하고 용감한(지르는) 선택들로 이루어져 왔으니까. 그런데 불과 한 달이라는 짦은 기간이지만 캐나다에서의 삶이 점점 더 마음에 들면서 커리어에 대한 욕심, 필요가 생기기 시작한 거다. 그러면서 갑자기 압박감과 두려움이 확...


'조급해하지 말고, 모든 것을 새로 배우는 마음으로'. 처음에 가졌던 생각을 다시 되새긴다. Volunteering으로 캐나다 근무경험을 얻고, 조금씩 익숙해지자. 이렇게 생각하던 참에,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기관에서, 내가 관심있는 분야의 봉사자를 찾고 있어서 이력서를 들고 다녀왔다(커리어 서비스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던지!). 내일쯤 답을 받을 것 같다. 물론 돈을 받는 일은 아니니까 잡도 알아봐야지. 전문분야에서의 풀 타임이 영 버겁다면 당분간은 파트 타임이나 캐주얼 잡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도 괜찮았던 캐나다 허니문 기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노동의 의무나 삶에 대한 고민이 여기라고 가볍지만은 않겠으나, 여튼 이렇게 첫 발을 디뎠고 돕는 커뮤니티 안에서 잘 정착해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Volunteering 지원한 곳 :)


오마이. 글 쓰느라 시간이 훅 갔네.

내일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산더미인데 오늘도 망..ㅠ  

그날의 기록은 그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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